우주 먼지 사람
요즘은 글이 자꾸 쓰고 싶어진다.
파도처럼 몇 번이고 울렁이는 감정을 붙잡고, 책에서도 보이지 않는 어둠 안에서 손을 더듬거린다.
그러다 어둠에 눈이 익어 밝아질 때쯤 노트북 앞에 앉아 키보드를 타닥타닥 두드린다.
불안은 왜 생길까. 많은 심리학 서적은 인간을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 정의한다. 적당한 불안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더 나은 선택을 돕는 동력이 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 이성적인 문장들이 거친 불안의 파도 속에 있는 이들에게 언제나 따뜻한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책이 말하는 것은 '정상적인 범주' 안의 불안일 것이다. 나는 그 문장들을 몇 번이고 되새기며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불안이 해일처럼 밀려오는 순간, "생각을 바꿔 봐"라거나 "너무 걱정하지 마" 같은 조언들은 허공으로 흩어지는 먼지처럼 무력했다. 머리는 "이건 별일 아냐, 곧 지나갈 거야"라고 속삭이지만, 요동치는 마음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어떤 이들은 불안이 실체 없는 마음의 그림자일 뿐이라고 말한다. 나 역시 그 말을 믿어보려 수천 번 다짐했다. '이것은 내가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라고. 그러나 마음은 생각처럼 통제되는 기계가 아니었다. 불안을 다스리는 일은 예상보다 훨씬 처절하고 고독한 싸움이다. 사소한 흔들림에도 일상은 금세 균열이 가고, 때로는 약의 힘을 빌려 겨우 하루를 버틴다. 불안을 완전히 잠재울 방법이 영영 없을 것만 같아 막막해질 때면, 몸과 마음은 무거운 물속으로 가라앉듯 무기력해진다. 그럴 때 나는 중심을 잃고 길 위에 멈춰 선 아이처럼 망연자실해진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불안을 '성격'과 연결 지어 설명한다. 성격의 어원인 그리스어 '페르소나(persona)'는 배우가 쓰던 가면을 뜻한다. 우리가 세상에 보여주는 모습과 내면의 결이 합쳐져 한 개인의 독특하고 안정된 체계를 이룬다는 것이다. 타고난 기질이라는 유전적 배경 위에 유년 시절의 경험과 환경이라는 물감이 덧칠해지며 마음의 무늬가 완성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불안은 잠시 스쳐 가는 소나기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삶의 바탕색이 되기도 한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마음을 빙산에 비유했다. 수면 위로 드러난 의식보다 수면 아래 잠긴 거대한 무의식이 우리를 움직인다는 '정신결정론'이다. 그는 인간의 마음이 본능적인 욕구(이드), 도덕적 양심(초자아), 그리고 그 사이에서 현실을 조율하는 자아(에고)의 역동적인 싸움터라고 보았다. 이 팽팽한 균형이 무너질 때 우리는 불안을 느낀다.
이때 우리 마음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방어기제'라는 방패를 들어 올린다. 억압, 합리화, 부정 같은 방식들이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며 고통을 지연시킨다. 이렇게 보면 불안은 단순한 병증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으려는 마음의 치열한 생존 신호이자 성장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통증이다. 누구나 각자의 방패를 들고 나름의 방식으로 삶을 견뎌내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질문의 방향을 틀어보려 한다. "어떻게 하면 이 불안을 도려낼 수 있을까?"가 아니라, "사라지지 않는 이 불안과 어떻게 나란히 걸어갈 수 있을까?"라고.
불안은 아마 평생 내 곁을 떠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완전히 무너뜨리지는 못할 것이다. 길을 잃은 아이처럼 멍하니 서 있는 그 고요한 시간조차, 어쩌면 내 마음이 스스로를 다시 찾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르는 꼭 필요한 멈춤일지도 모르니까. 멈춰 앉는다. 생각한다. 그럼에도 다시 일어나 걷는다.
요즘은 멈췄던 글이 자꾸 쓰고 싶어진다. 파도처럼 몇 번이고 울렁이는 감정을 붙잡고, 책에서도 보이지 않는 어둠 안에서 손을 더듬거린다. 그러다 어둠에 눈이 익어 밝아질 때쯤 노트북 앞에 앉아 키보드를 타닥타닥 두드린다. 비뚤어진 마음을 정직하게 타이핑해 본다. 나만 보는 메아리 노트라도 괜찮다. 뭐 어떠랴, 누군가를 죽이는 '데스노트'는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이 글은 누군가를 살리는 기록에 가까우니 말이다.
참고문헌
대한신경정신의학회(2005). 신경정신과학, 서울 : 하나의학사
김정욱(2003). 방어기제 성숙도 연구, 한국심리학회지 : 상담 및 심리치료
https://brunch.co.kr/@bitnala/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