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전농동에서 떡볶이 장사를 하시던 우리 엄마. 어린 마음에 떡볶이를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가게에 정수기가 없어서, 배봉산에서 미리 떠놓은 약수를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양손 가득 물통을 들고 엄마 가게로 열심히 가져다 드렸습니다. 봉투 손잡이 모양 그대로 손바닥에 자국이 남을 정도로 빨개지고 팔이 끊어질 듯 아프기도 했지만, 중간중간 잠시 내려놓고는 빠르게 걸음을 재촉했던 그때의 제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장사가 끝날 때까지 한쪽 구석에서 숙제를 하며 기다리던 그 시간들. 엄마와 함께 셔터 문을 내리고 전농동 로터리 시장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던 길, 그때마다 세장에 천 원인 부침개와 천 원어치 순대를 사서 집으로 돌아갔던 추억이 잠시 그리워집니다.
그 시절, 30년 전 할머님 사장님은 돌아가시고 세네 번 바뀌셨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지금도 인심 좋은 사장님께서 가게를 운영하고 계신 듯 보였습니다. 입구로 들어서면, 마치 90년대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비현실적인 느낌이 듭니다. 조금씩 변화는 있었지만, 옷가게와 내부 모습은 여전히 그대로였어요.
런닝맨,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그 사이에 이 가게는 가성비 좋은 부침개로 방송에도 여러 번 소개되었다고 합니다. 그 역사와 가격을 보면, 방송에서 소개될 만한 가게라는 생각이 듭니다.
7월에 방문 했던 모습
시장 안에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정겨운 모습들이 가득했습니다. 퇴근 후, 하교 길에 들러 가볍게 먹고 가거나, 포장해 가는 시장 부침개. 그런 소박한 모습들이 바쁘고 각박한 현대사회 속에서 오히려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광장시장이나, 가격을 비싸게 받는 일부 상인들 때문에 시장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도 들리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감성적인 노포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시는 사장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쉴 새 없이 부침개를 만들고 계시는 사장님. 부침개 한 장에 500원이라니, 실화입니다.
무뚝뚝해 보이시지만, 언제나 편안하게 대해 주시는 사장님 덕분에 사람들은 부담 없이 앉아서 몇 장이든 마음껏 먹고 갈 수 있었습니다.
커다란 스테인리스 대야에 반죽을 한가득 만들어 놓고, 계속 부쳐주십니다. 밀려오는 포장 주문 덕분에 저 큰 대야를 비우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습니다.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사이즈의 얇은 반죽에 부추가 들어간 부침개입니다. 이 가격에 부추가 이 정도 들어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할 따름이죠. 맛은 솔직히 아주 특별한 맛은 아니지만, 얇고 매콤한 부침개는 배가 불러도 계속 집어먹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름에 갔을 때는 그다지 맵지 않았던 것 같은데, 지난주에 갔을 땐 살짝 매콤함이 더해져서 감칠맛이 한층 더 좋았습니다.
한 장에 500원이니, 열 장을 포장해 가도 5,000원밖에 안 합니다. 고물가 시대에 맞지 않는, 정말 착한 가격입니다. 친구나 가족들과 저렴한 가격으로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이 시대의 '따뜻한 주전부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돈을 얼마나 버실지는 모르겠지만, 수입을 떠나서 하루 종일 앉아서 500원짜리 전을 부치고 계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아마도 돈보다는 부침개 역사를 이어가겠다는 사명감이 아닐까요.
옛날에 먹었던 그 맛이 아닐지라도, 앞에서 따뜻하게 바로바로 부쳐주시는 부침개를 먹을 수 있다는 것과, 정말 저렴한 가격에 아스라한 추억들을 떠올릴 수 있게 기회를 준 고마운 '500원 부침개'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