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엔 사자가 있다. 사자가 뭔지 아시는 분? 사춘기 자녀의 줄임말이란다. 어흥. 무슨 말만 해도 어흥 어흥 거린다. 어흥만 거리면 다행. 사자는 수풀 사이에 숨어 웅크리고 있다가 먹잇감이 레이더에 포착이 되면 그때 어김없이 나타나 으르렁 거린단다. 그 먹잇감은 무엇일까? 약자. 동생 혹은 엄마가 된다. 친구같이 좋은 엄마가 되려고 오은영 박사님의 책이란 책은 통달하며 인내하고, 올바르게 훈육하며, 사랑으로 키우려 노력했는데 이건 뭐, 먹잇감이라니. 상냥할 땐 또 아주 상냥하고, 하지만 조금만 심사가 뒤틀어지면 사자로 돌변해 먹잇감을 찾아 으르렁 거린다. 좀처럼 종 잡을 수 없는 아이의 널뛰는 기분에 아무리 사춘기라지만 엄마도 지친다.
그분은 떠날 분이다.
언젠가 떠날 분이다.
그분이 가시고 싶으실 때
그때 떠나게 해 드려라. _김붕년교수님
'책상 위에 중구난방으로 쌓여있는 문제집들 사이로 빈 컵라면, 사탕, 초콜릿 껍질들이 나뒹구는데 도대체 뭘 알아서 한다는 말이야?'
상상 속에서는 벌써 몇 번은 싹 다 쓸어 창 밖에 내던지고 싶지만, 현실은 잠이 많아지고, 게을러지고, 차갑고, 까칠해진 너를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다.
전두엽은 뇌의 모든 영역 중 가장 마지막으로 성장하며, 발달 속도가 상당히 느리다. 사춘기의 뇌는 상대의 감정을 인식하고 판단할 때 전두엽 대신 편도체가 활성화되기 때문에 감정적 반응을 하고 적대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그래, 머리로는 백 번 천 번 이해했다. 근데 내 자식한테만 적용이 잘 안 된다는 것이 큰 문제다.
세상 착한 모범생 우리 큰딸이었는데,
"우리 딸은 사랑을 많이 받아서 사춘기도 소리 소문 없이 잘 지나갈 거야" "내 딸은 사춘기 따윈 없을 거야."라고 오만방자했던 내 모습을 떠올리면 절로 숙연해진다.
'갱년기가 이기냐 사춘기가 이기냐'라는 말이 나올 만큼 무시무시한 호르몬을 대비해 나름 사춘기 책들과 유튜브 강의들을 섭렵했다. 수많은 이론들로 대비를 한다고 했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가혹했다. 아이의 차가운 태도에 나는 상처받고 뒤돌아 훌쩍거리기 일쑤였다.
'내 마음이 아이를 떠나보낼 준비가 안 됐다.'
너무 사랑해서, 너무 소중해서 단단하게 내 안에 아이를 묶어 두었던 것 같다. 아이의 내면은 점점 커가는데 내가 아이를 분리시키지 못하고 마음속에 꽁꽁 묶어 두었으니, 아이는 답답해하고, 나는 불안해서 종종거리는 최악의 굴레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도 성장한다.'
너의 느리게 성장하는 전두엽과 함께 나도내면이 성장하는 어른이 된다. 내가 너고, 네가 나였던 지독한 사랑을 떠나보내고, 나는 나고 너는 너인 자애롭고 독립적인 사랑. 너의 일상이 많이 궁금한 엄마는솔직히 적당한 거리가 아직도 어렵지만, 엄마의 일상에 집중해 열심히 살다 보면 넌 멋지게 성장해 있을 거라 믿는다.
오늘도 학교에서 사자가 되어 돌아온 너를 측은하게 바라본다.
'쟤는 또 왜 저럴까.'라는 한숨 대신에 학업 스트레스, 치열한 친구 관계, 밀려오는 수행, 온갖 규칙들로 가득한 학교 안에서 잘 버텨줘서 고맙다는 마음으로 변한다. 잠시 안쓰러운 마음까지 들어 코 끝이 찡해진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네가 좋아하는 고기반찬을 만들면서 입은 닫고 귀는 열어 두는 것.
"우리 예쁜 딸, 너는 엄마보다 큰 사람이어서 지금의 모자이크 된 시간들을 아름다운 수채화로 만들 거라고 믿어. 엄마는 네가 돌아보면 보이는 곳, 그 어디선가 세 발짝 뒤에 서있을 테니, 도움이 필요할 때는 돌아보렴."
길을 잃었다는 말은 세상에 없어. 우리는 길을 잃은 게 아니라 새로운 길에 서 있을 뿐이야. _너에게 들려주는 단단한 말 김종원 작가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