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이기에
매년 고민하는 학부모 총회
올해도 학부모 총회에 다녀왔다. 가야 할까 말까 고민했지만, 결국 마음을 다잡고 나섰다. 이유는 단순했다. "안 가면 괜히 찜찜할 것 같아서." 그리고 역시나, 다녀오길 잘했다. 선생님의 얼굴을 직접 뵙고 인사를 나누니 안심이 되고, 교실 구석구석을 둘러보면서 우리 아이들이 머무는 공간이 한층 더 애틋하게 다가왔다.
오늘은 막내 아이의 참관 수업까지 마치고 돌아왔는데, 한결 가벼워진 마음과 함께 묘한 피로가 스며든다. 마치 길고도 소중한 여행을 마치고 익숙한 집으로 돌아온 듯한 기분이랄까.
어제 중학교 총회에서는 두 아이의 반을 모두 들러야 했기에 동선을 미리 확인했지만, 막상 움직이기 시작하니 정신없이 뛰어다녀야 했다. 형제, 자매가 있는 엄마들은 공감할 것이다. 어느 반으로 먼저 가야 할지 늘 고민이다. 강당에서의 총회를 마친 후, 각 반으로 이동해 담임 선생님과의 만남이 이어졌다. 큰아이 반에는 나를 포함해 네 명의 엄마가 참석했는데, 자연스럽게 나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폴리스' 직책을 맡게 되었다.
'폴리스 어머니'는 학교에 봉사하는 역할 중 하나인데, 학교 점심시간에 맞춰 일 년에 두 번 정도 방문하여 학교 내부를 돌며 안전과 환경을 점검하는 일이다. 복도가 너무 어둡지는 않은지, 아이들이 머무는 공간이 안전한지 직접 확인한다. 그리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위한 더 나은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선생님들과 의견을 나누는 역할도 한다. 점검을 마치고 나면, 급식실에서 아이들이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도 이렇게 지내는구나" 하고 안심하게 된다.
워킹맘인 나로서는 살짝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학교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보람이 있다. (하지만 솔직히, 내년엔 살짝 숨고 싶다.ㅎㅎ)
학부모 총회에 대해 고민하는 다른 엄마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 '꼭 가야 할까?' 망설여질 수도 있지만, 다녀오면 얻는 것이 많기에 꼭 다녀오길 조심스레 추천한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장점은 선생님과 직접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는지, 어떤 교육 철학을 가지고 계신지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
올해 우리 아이 담임 선생님께서는 학습보다도 '아이들 각자의 속도로 성장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하셨다. "어떤 아이는 글을 잘 쓰고, 어떤 아이는 친구를 사귀는 게 더 빠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결국은 각자의 속도로 다 성장해요." 이 말씀을 듣고 나니, 성적에 대한 부담보다 아이가 학교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를 더 궁금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일 년 동안의 학습 계획도 공유되었는데, 특별한 프로젝트나 행사 계획은 무엇인지 설명해 주셨다. 예를 들면, 올해는 독서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매달 한 권의 필독서를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라고 하셨다. 이런 이야기를 직접 듣고 나니, 집에서도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뿐만 아니라 교실 환경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아이의 하루를 조금 더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이와 저녁에 나눌 이야기들이 풍부해진다는 점이다. "선생님 인상이 너무 좋으시더라." "게시판에 붙어 있는 그림이 정말 멋지더라." 이런 소소한 대화들이 아이와의 관계를 한 뼘 더 가깝게 만들어준다. 마치 아이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기분이랄까.
물론 엄마들끼리 눈치를 보는 순간도 있다. 서로 아이의 성적, 학원 정보 등에 대한 은근한 기싸움(?)이 펼쳐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이었고, 처음에 느껴졌던 거리감도 어느새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보듬고 있음을 깨닫는다. 마치 낯선 숲 속을 걷다가 우연히 같은 길을 가는 동행자를 만난 기분처럼 말이다. 서로에게 적당한 선을 지키며, 그 누구보다 다정한 눈빛으로 서로를 응원하며 헤어진다.
총회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 긴장되었던 마음이 풀리고, 가슴 한편이 따뜻해지는 걸 느낀다. 마치 큰 나무 그늘 아래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쉬는 기분처럼. "아, 이래서 매번 고민하지만, 또 가게 되는구나."
작은 걸음을 내딛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아이들이 더 안전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다면, 내년에도 기꺼이 참여할 것 같다. 무엇보다 올해에도 선생님의 인상이 너무 따뜻하셔서, 바깥바람은 차갑지만 내 마음에는 봄이 오듯 온기가 내려앉았다. 겨울 끝자락에서 살짝 피어난 꽃봉오리가 피어올랐다.
마지막으로, 내가 꼭 하는 작은 행동이 하나 있다. 교실에 가면 선생님께서 내 아이의 책상 서랍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시는데, 그럴 때 나는 미리 준비해 둔 작은 메모를 하나 남겨두곤 한다.
"우리 00이 정말 잘하고 있구나. 엄마는 언제나 00 이를 응원하고 있어. 사랑해. 오늘도 파이팅!"
이렇게 포스트잇에 짧은 문장을 적어 넣어두면, 아이의 하루가 조금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싶은 소망으로. 그리고 다음 날,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와 살짝 웃으며 말한다. "엄마, 오늘 책상에서 쪽지 봤어요."
그 짧은 한 마디에 피로가 싹 녹아내리는 느낌이 든다.
내 아이가 머무는 그 자리에서, 엄마의 온기가 전해지기를 바라며, 교실 창가에 스며든 오후의 햇살처럼, 내 작은 발걸음이 아이에게 포근한 따뜻함으로 닿기를.
그렇게 나는 또다시 아이의 봄을 맞이하며 한 계절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