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이 내게 말했다.
쨍한 여름, 통통한 수박 한 덩이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인간, 너는 나의 푸른 겉껍질에 새겨진 검은 줄무늬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해? 촘촘한 줄무늬가 있는 것을 선호하니, 아니면 매끈한 녹색의 표면을 더 좋아하니?”
순간, 수박의 외형에 대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싱그러운 초록, 시원하게 뻗은 줄무늬.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처럼 겉모습은 첫인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일지도 모른다.
그때 수박은 빙긋 웃으며 속삭였다.
“너는 겉모습만으로 나를 판단하려 하는구나. 물론 나의 줄무늬는 오랜 시간 햇볕을 받으며 성장해 온 흔적이고, 매끈한 표면은 싱싱함을 자랑하는 표지일 수도 있지.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나의 속에 있어. 얼마나 붉고 달콤한 과즙으로 가득 차 있는지 그것이 바로 네가 느끼는 나의 진정한 가치지.”
수박의 말은 마치 여름철 수박을 쩍 가르는 날카로운 식칼처럼 내 마음 한가운데를 찔렀다. ‘수박 겉핥기’라는 말의 의미가 선명하게 다가왔다. 피상적인 겉모습만 보고 깊은 내용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 요즘 세상이 그렇지 않은가.
수박의 유도신문에 '수박 겉보기'만 하고 있던 나에게 수박은 물었다.
"너 혹시 타인과의 관계에서, 혹은 어떤 대상을 평가할 때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쉽게 단정 짓지는 않았어?"
'음... 그런 경우들이 있었던 거 같긴 해.'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수박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말했다.
“수박 겉핥기의 반대되는 의미를 생각해 봐. 그것은 ‘수박 속까지 제대로 맛보기’ 아니겠니? 나의 껍질을 넘어, 붉은 과육의 달콤함을 느끼고, 다 먹은 껍질은 잘 뒤집어 놓아서 상대까지 헤아리는 것. 그것이 바로 상대를 온전히 보는 방법이야.”
내가 아무 대답이 없자 수박의 시선은 나에게로 향했다.
“인간, 너라는 수박은 과연 어떤 모습이니? 너를 둘러싼 껍질은 어떤 색깔과 무늬를 가지고 있니? 사람들은 너의 겉모습을 보고 어떤 첫인상을 받을까?”
수박의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겉모습, 타인이 만들어 놓은 나에 대한 피상적인 이미지, 혹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껍데기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묻는 듯한 눈치였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야. 네 안의 차 있는 내용물이야. 나와 같아. 그래서 나를 잘 익었는지 두드려보잖아. 너는 너를 두드려봤어? 너는 어떤 꿈과 열정으로 가득 차 있어? 어떤 경험과 지혜를 품고 있으며, 어떤 특별한 재능과 매력을 숨기고 있니? 너의 진정성과 본질적인 가치는 무엇이니?”
적극적이고 시원스러운 수박에게 속 시원하게 대답해 주지는 못했지만, 꽤 좋은 포인트였다. 수박은 그런 나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건넸다.
“이제 스스로를 두드려보렴. 딱딱한 껍질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고, 너라는 수박의 속을 꽉 채운 너만의 매력과 가능성을 세상에 보여줘! 겉모습에 연연하지 말고 너를 마음껏 펼쳐내길 응원할게!”
수박과의 대화는 역시 달달한 수박을 크게 한 입을 베어 문 것같이 속까지 시원한 파동을 일으켰다. 겉모습에 갇히지 않고 내면의 진짜 가치를 탐색하고 드러내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인생은 껍질을 넘어, 나라는 존재의 달콤하고 풍부한 속살을 세상에 자신 있게 드러내야 맛이다. 마치 여름날의 시원한 수박처럼! 고맙다. 수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