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이 말했다.
장마가 한창이던 어느 날, 우두커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며칠째 쉼 없이 쏟아지는 빗줄기와 몰아치는 바람은 마치 제 마음속 어지러운 생각들을 대변하는 듯했습니다. 그 순간, 문득 손에 들린 빗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이, 너 지금 나보고 있니? 왜 그렇게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고 있던 거야? 네 마음, 지금 빗줄기처럼 산만하고 엉망진창인 건 아니겠지?"
갑작스러운 빗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손에 든 빗을 떨어뜨릴 뻔했습니다. 빗은 손 안에서 가볍게 떨리는 듯하더니 다시 말을 걸어왔습니다.
"잘 들어봐. 네 머리카락도 처음부터 엉키는 건 아니지? 시간이 지나고, 바람이 불고, 움직이다 보면 자연스레 엉키게 되는 거야. 마음도 마찬가지야.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다 보면 자연스레 흐트러질 수밖에 없어. 바람은 매일 불고 머리는 매일 헝클어져. 중요한 건, 그렇게 흐트러졌을 때 다시 잘 빗어내는 것이지."
빗의 말에 잠시 멍해졌습니다. 맞습니다. 제 마음이 혼란스러웠던 것은 어쩌면 제가 스스로 정돈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쌓여가는 걱정, 불안, 후회들이 마치 엉킨 머리처럼 꼬여만 갔던 거죠.
"사람들은 마음이 헝클어질 때 머리카락도 헝클어져. 심하면 쥐어뜯기도 하고. 네가 머리카락을 빗어주지 않고 엉키게 둔 것처럼 마음도 정돈하지 않고 내버려 뒀던 거 아닐까? 나를 봐. 나는 왜 엉켰는지 따지지 않고 그저 엉키면 풀어줄 뿐이야. 그리고 다시 더 가지런히 정돈해 줄 뿐이고."
빗은 마치 꾸짖는 듯하면서도 따뜻한 위로를 건네 듯 말했습니다.
빗의 입을 막으려는 건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손이 올라갔습니다. 이내 헝클어진 머리를 빗으며 그제야 깨달아졌습니다. 완벽하게 정돈된 삶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늘 크고 작은 일들 속에서 마음이 흐트러지고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좌절하고 주저앉을 필요는 없습니다. 빗이 엉킨 머리카락을 하나하나 풀어내듯, 우리도 우리의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얽힌 생각들을 풀어내며, 다시금 가지런히 정돈하면 그만인 것입니다.
몇 번 빗질을 하고 거울 앞으로 가니 머리는 금세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나직한 빗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무슨 일이 있다고 너무 힘 빠지지도 걱정도 하지 마. 네 머리카락을 매일 빗어주듯, 네 마음도 매일 정성껏 빗어내면 돼. 흐트러진 마음은 결국 잘 빗어내면 그만이야. 어때, 이제 네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졌니?"
빗의 말이 끝나자, 창밖의 빗줄기도 점차 가늘어지고 있었습니다. 먹구름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며 무지개가 떠올랐습니다. 어느덧 제 마음속 먹구름도 걷히고,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빗은 단지 머리카락을 빗는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흐트러진 마음을 정돈하고, 다시 시작할 용기를 주는 지혜였습니다.
앞으로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빗을 들어 머리카락을 빗듯 제 마음을 잘 빗어주며 말할 것입니다.
"괜찮아. 흐트러진 마음도 결국 잘 빗어내면 그만이야."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다음은 어떤 만물과의 대화를 들려드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