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감사 찾기

by 빗소리

오랜만에 쓰는 글이다. 이 글을 쓰기까지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니 많은 일이 있었다.


호두가 태어나서 가장 아픈 시기를 보냈다. 목감기로 인한 고열이었다. 다른 사람들 보기에는 작은 병일 것 같아 민망하다. 하지만 예방 접종 이외에 병원에 가는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건강했던 아이인지라 고열로 낮잠도 밤잠도 못 자는 모습이 처음이었다. 너무 몸이 아파 지속적으로 깨서 우는 아이를 계속 달래었다. 그렇게 밤을 지새우면 어김 없이 아침이 찾아오고, 또 힘든 시간이 반복되었다.


아이의 아픔을 충분히 공감하며, 함께하고 있다 생각했던 것은 내 착각이었다. 아이의 병세가 호전되며 나에게 바톤이 넘겨졌다. 막상 내가 아프기 시작하니 아이를 괴롭힌 바이러스가 얼마나 센놈이었는지를 몸으로 깨달았다. 아이에게 미안했다. 내가 아이에게 주었던 위로와 공감은 그저 껍데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처럼 나는 온전히 아플 수만은 없었다. 아프거나 말거나 내가 수족이 되어 모든 것을 도와줘야 하는 아이가 내 앞에 있었다. 고열과 콧물로 비몽사몽인 와중에 계속 아이를 돌봤다. 그러다 일이 벌어졌다.


아이의 병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려던 주차장에서 차사고가 났다. 주차장이었고, 속력을 거의 내지 않은 상태여서 아이와 내가 받은 충격은 전혀 없었으나 차는 많이 부서지는 희안한 사고였다. 수리 견적이 200만원이 넘어갔다.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 사고가 이렇게 많은 돈을 내야 할만큼의 피해를 불러왔다니 너무 속상했다. 무급휴직자로서 고작 천원, 이천원 모으자고, 알뜰살뜰 살아가던 그동안의 내가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말도 안되는 사고였고, 말도 안되는 수리비였다.


처음 사고가 났을 당시 전화를 받던 남편은 안 다쳤으면 됐고, 보험처리하면 되니 돈은 신경쓰지 말라 했다. 평소 일이 바빠 육아에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없어 남편에 대한 불만이 자주 치솟았는데, 이렇게 큰일을 겪을 때면 태연하고 대범하게 처신하는 남편이 참 부럽고 멋지다. 사고 뒷처리를 위해 아기를 맡기러 들른 시댁에서도 돈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만하면 정말 다행이라고 두분이 입을 모아 말씀해주셨다. 사고로 피폐해진 마음이 그나마 가족들의 위로로 조금은 평안을 찾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가장 아프게 한 이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내 자신이었다. 끊임 없이 자책하고, 비난하며 스스로를 괴롭혔다. 좀만 조심했으면 그렇게 큰 돈이 나갈 일이 없었잖아, 좀만 조심했으면 이렇게 우리집 경제가 갑자기 어려워지지 않을 수 있을텐데 수많은 쓸데 없는 생각들이 계속 머릿 속에 맴맴 돌았다.


며칠 뒤 친구와 사고가 난 이야기를 나누는데, 친구가 말했다.


"옆으로 지나가다 난 사고니 아기와 네가 충격이 없었네. 낮은 속도라도 앞이나 뒤로 받혔으면, 그래도 아기에게 가는 충격이 상당했을걸."


지나가는 것처럼 흘린 친구의 말이었지만, 내 맘 속 울림은 컸다. 사실 사고가 났을 당시 가장 먼저 아기를 쳐다봤는데, 사고가 난줄도 모르고 아기는 평안했다. 그만큼 아무런 충격도 없었다. 그것으로도 이미 내 감사함은 충분하다는 것을 왜 나는 이제서야 깨달은 걸까? 아기의 몸에 작은 충격이라도 가해지고, 사고 후유증으로 아이가 힘들어했다면 아마 나는 지금보다 몇 배로 더 고통스러웠을 거다. 유난히 자책을 잘하는 성격이라 더 그랬을 거다.

친구의 말로 내 마음이 완전히 바뀌었다. 사실 몸 안다쳤으면 됐다라는 말과 똑같은 의미의 말이었지만,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에 정확히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어준 것이다.


감사의 마음이 넘친다. 모든 것이 감사하다. 그동안 아프지 않고 잘 커준 아기에 대한 감사, 매일 육아와 살림으로 힘들고 지치는 일상이지만 그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알려준 시간에 대한 감사, 차는 부서졌을지라도 아기와 내 몸은 멀쩡한 것에 대한 감사. 아기와 내가 잃었던 것은 너무나 작은 것이었다. 우린 그 잃음으로 인해 더 많은 감사를 얻게 되었다.


삶이 불행의 연속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사실 행복한 일보다 불행한 일이 더 많기도 하다. 그래도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며 행복할 수 있는 것은 끝없는 불행에도 불구하고 불행 속에서 숨은 감사 찾기를 하고 있어서인지 모르겠다. 불행이 아무리 찾아와도 그 안의 숨은 감사를 계속해서 찾아낸다면 난 더 이상 불행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오늘 숨겨졌던 감사를 찾는 밤. 오늘도 어김 없이 나를 찾아왔던 여러 슬픔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잠들 수 있어 다행이다. 감사가 있다면 내일의 밤도 분명 행복할 것이다. 감사하다.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