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수업료

by 빗소리

예전에 한 선배님과 함께 출장길에 동행한 적이 있다. 우리 엄마와 나이가 비슷하실 정도로 나이 차가 꽤 나는 선배님이었다. 평소 대화할 일이 별로 없어서 그분에 대해서 잘 몰랐는데, 살아오신 경험이 많다보니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배울 점이 많아 좋았다. 그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인생의 가치 있는 일은 모두 그에 합당한 수업료가 있는 것 같아. 나는 옷을 잘 입고 싶었는데, 어디 가르쳐주는 수업이 있나. 그저 열심히 옷을 사고 실패하며 경험으로 배우는 수밖에. 그렇게 숱하게 수업료 치루고 나니 그래도 지금은 어느 정도 나에게 어울리는 옷을 알게 되었어."


그렇게 힘주셔서 한 이야기도 아니었고, 가볍게 지나가며 하셨던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7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 함께 많은 이야기를 했고, 어쩌면 꽤나 중요한 이야기도 오갔을텐데 말이다. 잊혀지지 않는 것을 넘어 때때로 생각이 난다.


아마도 내가 살아가며 선배의 말과 내 경험이 공명하는 순간을 만났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인생은 분명 소중한 일에 해당하는 수업료를 요구하고는 했고, 나는 그런 수업료를 내야 할 때마다 속상함보다는 그래 이정도는 내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선배 말의 효력이었다.


그중 내가 가장 비싼 수업료를 치룬 것은 '집밥'이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집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과 비슷하다 생각이 든다. '집밥 같은' 대체품이 넘쳐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클릭 한 번으로 현관 문 앞에 반찬이 도착하고, 마트에 가면 즉석 요리 제품을 다양하게 살 수 있다. 엄마도 아빠처럼 바쁘게 일하는 시대 속에서 엄마를 도와주는 대체품이 참 많다. 고마운 시대이다.


나는 집밥만이 옳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다만 그저 내가 집밥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고마운 시대에 엄마 힘들지 않게 대체품을 지혜롭게 이용하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나 또한 그런 고마운 시대의 혜택이 있기에 몸이 힘들 때는 언제든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내가 집밥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랑하는 이에게 무언가 내 손으로 만들어주는 느낌을 좋아해서이다. 좋은 식재료를 골라 정성스레 만든 따끈한 음식을 함께 먹다 보면 소란스러웠던 바깥 일도 차츰 차츰 다독여지는 느낌이 든다. 하루종일 허했던 마음을 채우고, 후식으로 과일을 먹으며 소박한 행복을 맛본다.


집밥을 좋아한다 해도 집밥을 하기 위한 장벽은 크다. 집밥을 잘해내기 위해서는 여러 절차가 필요하다. 우선 식단을 짜서 식재료를 구입하기, 요리 하기, 설거지 하기이다. 세 가지 모두 만만치 않다. 그중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이 있다면 바로 식재료 구입하기이다. 구입은 참 쉬우나 이미 산 식재료를 낭비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이리 저리 해먹는다는게 생각보다 정말 어려웠다. 이것에 대해 참 할말이 많은 사람이다. 결혼 생활 9년 동안 내가 식재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해 낭비한 돈을 생각하면 그 수업료가 실로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어림 잡아도 쉽게 계산이 안될 정도로 꽤 큰 금액이다. 이렇게 먹어야지 알차게 계획했으나 실제로는 지쳐서 배달 시켜 먹은 날, 회식이 있는 날 등 변수가 많다. 그러다보니 냉장고의 식재료는 상해서 버리곤 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 걸까. 오랜 실패 끝에 나는 요즘에서야 식재료를 알차게 쓰는 능력을 조금 갖게 되었다. 비싼 수업료를 내고 많은 재료를 요리조리 쓰다보니 비로소 우리 가족에 맞는 요리법을 찾게 된게 도움이 되었다. 수업료라고 생각하며 집밥을 포기 하지 않고 꾸준히 식재료를 산 보람이 있었다.


아기를 낳으니 그간의 수업료가 더 아깝지 않다. 요리에 대한 꾸준한 집념은 아기를 낳은 뒤에 더 도움이 되었다. 부족하지만 이유식 때부터 꾸준히 몸으로 부딪히며, 수업료를 지불해가며 노력하다보니 그래도 어찌어찌 아기 밥을 해먹이고 있다. 내 밥 차리기도 참 귀찮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아기 밥을 만들어 주고 있는 내가 나도 신기하다.


요리는 살아가며 내가 가장 얻고 싶은 기술이다. 9년 동안 요리를 혼자 몸으로 배우려 노력했지만, 생각보다 요리는 쉽지 않았다. 아직도 여전히 걸음마 수준이다. 내 생각에 생활의 기술 중 요리는 꽤나 어려운 고급 기술이라 생각한다. 체력, 냉장고 속 식재료를 요리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 최대한 빠르게 해내는 손, 적당한 간을 감별해내는 입, 설거지를 귀찮아하지 않는 부지런함. 대부분 내게 없는 것이라 아직도 내가 걸음마 수준인가 보다.


어려운 걸 알면서도 여전히 요리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앞서 이야기했듯 사랑하는 이에게 대접하고 싶어서이다. 유독 힘들고 지친 날에 나를 위로해주었던 요리들을 생각해본다. 기분 좋은 배부름과 함께 나를 위한 정성에 마음도 불렀던 기억이 떠오른다. 친구와 함께 놀러갔던 제주도에서 세찬 비바람에 지쳐서 들어간 식당에서 먹었던 따끈한 당근 스프. 당근 스프를 태어나서 처음 먹어 봤었는데, 먹고 눈물이 울컥 났다. 피곤해진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 만져주던 그 스프의 느낌을 아직도 기억 한다. 누군가에게 그런 당근 스프를 베풀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꿈이 아직도 요리를 붙들게 되는 이유이다.


나는 집밥을 위해서, 혹은 요리를 위해서 앞으로도 계속 수업료를 지불할 생각이다. 비싼 수업료만큼 내가 얻을 것은 더 소중해지리라 생각한다. 눈앞에 보이는 돈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소중한 가치를 보고 싶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숨은 감사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