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내 엄마라서, 남편이 내 남편이라 고마워요
엄마께서 호두에게 유아 변기를 사주고 싶어 하셨다. 비가 많이 왔지만, 궂은 날씨를 뚫고 장난감 백화점에 가서 사 왔다. 그 뒤 이런저런 일정을 가진 뒤 집에 도착해서 변기를 조립했다. 하나씩 꺼내다 불량인 부분을 발견했다. 순간 피로감이 몰려왔다. 지친 상태인데, 다시 바꾸러 멀리 다녀와야 한다니 생각만으로도 이미 피곤해졌다.
"내가 얼른 다녀올게!"
모두가 피곤한 상황이라 누군가의 양보가 필요했다. 얼른 상황을 해결해야 각자 마음이 무거워지지 않을 것 같아 먼저 말을 꺼냈다. 나와 성격이 똑같으신 엄마께서 혼자 가면 외로우니 호두를 데리고 함께 가자 하셨다.
귀찮은 마음을 억누르고 조립하다 만 변기를 들고 다시 장난감 백화점으로 갔다. 왜 하필 내가 고른 제품이 불량이었을까. 왔다 갔다 소모되는 체력과 비용이 아깝기도 했다. 언짢은 기분이 들긴 했지만, 차 안에서 노래 들으며 춤추는 호두와 그걸 바라보고 웃는 엄마가 있어 한결 나았다.
사장님께서는 미안한 마음과 다시 불량품이 나오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 그 자리에서 모두 조립하고 가는 게 좋겠다 하셨다. 유아 변기 조립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시간이 걸리는 귀찮은 일이기에 감사한 제안이었다. 프로 조립러이신 사장님이 빠르게 조립해주셔서 금방 끝이 났다. 장난감 구경의 맛을 안 호두는 하루에 두 번이나 장난감 백화점에 오다니 웬 떡이냐 싶어 더 신이 난 듯했다.
호두의 춤을 보며 집에 도착했는데, 남편이 내가 없는 사이 집안일을 해놓았다. 내가 얼른 자진해서 가긴 했지만, 혼자 남은 게 영 미안했나 보다. 변기 교환 사건은 그렇게 빠르게 마무리되고, 우리 가족은 호두의 재롱을 보며 함께 먹고, 함께 남은 저녁의 여가를 보냈다.
하루를 정리하며, 새삼 우리 가족의 이런 성격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엄마는 삶의 관점을 긍정에 두시는 분이다. 불평불만하기보다는 빠르게 눈 앞에 있는 일을 해결하신다. 희생정신이 강하셔서 문제가 벌어질 때도 늘 본인이 선두에 서신다. 난 엄마의 그런 면이 참 자랑스럽다. 감사하게도 나 또한 그런 엄마의 모습을 많이 닮았다.
엄마의 육아가 내게 상처를 입힌 적도 있었다. 엄마도 인간이기에 부족한 면이 있으셨고, 20대 초반이라는 어린 나이에 아무것도 모르고 나를 기르시느라 시행착오도 많았다. 그 과정에서 내가 겪은 슬픔과 불안감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가끔 나를 힘들게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엄마는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이다. 착하고 성실하며 사랑이 많은 사람이다. 엄마의 방식은 서툴렀더라도 엄마의 기본 성정이 내게 잘 전달이 되었다. 엄마, 아빠의 좋은 면을 많이 닮은 나는 그 점으로 인해 살아가며 좋은 일도 많았음을 고백한다.
남편은 말이 없는 사람이다. 감정의 폭이 크지 않고, 온건한 성격이다. 대부분의 일을 약간 거리를 두고 관찰하며,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으로 바라보기에 크게 분노하는 일이 없다. 연애할 때 가장 놀라웠던 건 그가 운전 중 생기는 여러 불미스러운 일에 감정적으로 잘 흔들리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는 늘 적당한 속도로 운전했고, 양보를 잘했으며, 방어 운전을 기본으로 삼았다. 사람을 볼 때 운전하는 모습을 잘 보라던 엄마의 조언으로 나는 남편에 대해 더 호감을 느꼈었다. 잔잔한 물결 같은 남편과 살기에 폭풍우 몰아치는 마음을 가진 내가 그나마 온건하게 하루하루를 산다는 생각이 든다.
변기 교환 사건은 매우 사소한 일이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미루고, 책임을 돌리다 보면 불평불만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럴 수도 있지, 내가 할게! 우리 가족의 그런 마음이 나는 참 좋다. 일은 어떻게든 해결된다. 하지만 일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사람의 감정은 더 좋아질 수도 나빠질 수도 있다. 나는 오늘 일의 해결 과정에서 가족에 대한 감사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세상에 태어나 만난 사람이 우리 엄마라서, 세상의 절반이 남자인데 그 많은 남자 중에 남편이 내 남편이라서 감사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