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은 두 번째로

by 빗소리

어렸을 때 점심시간이 생각난다. 아이들과 함께 도시락을 먹다 보면 그 아이들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곤 했다. 좋아하는 음식을 제일 먼저 먹는 아이, 마지막까지 꾹 참았다가 아껴 먹는 아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은 어떤 성향인지 궁금해진다. 나는 전자였다. 배불러지면 맛있는 음식의 맛을 담뿍 느끼지 못하는 게 싫었다. 한참 배고플 때 맛있는 음식을 가장 먼저 먹으면 더 꿀맛 같이 느껴졌다.


일을 대하는 태도 또한 사람의 성향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사실 나는 일 또한 좋아하는 일을 먼저 하는 성격이다. 문제는 좋아하는 일을 먼저 하다 보면 그 뒤에 해야 할 그저 그런 일들을 할 때 조금 더 괴롭다는 점이다. 좋아하는 일이 남아있으면 일말의 희망이라도 가지며 일을 할 텐데, 그저 견뎌야 하는 시간이 힘들게 느껴진다.


육퇴를 하고 설거지와 여러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씻은 뒤 비로소 내 시간을 가질 때까지의 여정이 참 힘들다. 육퇴 후 모든 에너지가 방전된 상태이기에 더욱 그렇다. 아이가 어릴 때는 대책 없이 그저 육퇴 후 누워 있었다. 좋아하는 일인 독서와 글쓰기를 먼저 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늦은 밤까지 설거지를 했다. 그런 날들이 늘어나다 보니 꽤 괴로웠다.


요즘은 아이가 잠들면 벌떡 일어나 군인처럼 잔뜩 각을 잡은 채 속전속결로 해치우려 노력한다. 설거지 몇 분! 쓰레기 버리기 몇 분! 샤워 몇 분! 이런 식으로 후다다닥 최대한 빨리 해치우고, 좋아하는 일을 할 시간을 확보하려 노력한다.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는 이 방법이 훨씬 더 좋은 것 같다. 물론 귀찮아지면 다시 늘어지는 생활로 돌아가긴 하지만 말이다.


이런 사소한 일 외에도 직장을 택할 때도 사람의 성향이 드러난다. 독서와 글쓰기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 고3 때 국문과를 가길 희망했는데, 부모님에 의해 꿈이 꺾였다. 그렇다고 부모님의 의지를 거스르면서까지 내 꿈을 밀어붙이기에는 어린 마음에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다른 길로 흘러 작가가 아닌 다른 직업을 갖게 되었다. 작가에 대한 미련은 늘 가슴에 사직서처럼 담아둔 채로.


휴직을 하고 나니 내가 글쓰기를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더 알게 되었다. 여유 있게 혼자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내 마음의 뿌연 부유물이 가라앉고 좀 더 맑게 보였다. 아직도 내 마음은 글쓰기에 대한 미련이 많이 남아 있었다. 이런 내 이야기를 친구에게 털어놓으니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좋아하는 것은 두 번째인 게 좋아."


이유인즉슨 좋아하는 것이 밥벌이가 되다 보면 그저 좋은 순수한 감정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좋아했던 일이 때론 괴로운 일이 되기도 하고, 벗어나고 싶은 일이 되기도 한단다. 친구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런 면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좋아하는 일에 과감히 도전하여 작가가 되는 분들도 있다. 솔직히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분들이 더 존경스러워졌다. 좋아하는 일로 인해 생겨나는 괴로운 일들도 모두 껴안고 감당하며 그 길을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잠시 상상해보았는데, 아무래도 나는 분명 꽤 힘들어할 것 같다.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일을 가장 먼저 하고 싶어 하는 성향을 가진 나이지만, 때론 좋아하는 일이 두 번째인 것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하기 싫은 일, 그저 그런 일을 먼저 해낸 뒤에 비로소 좋아하는 일을 만나는 일의 매력을 점점 느껴가고 있다.


이제 글쓰기는 나의 두 번째 일. 때론 두 번째로 남는 것이 더 아름답고 애잔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삶을 통해 배운다. 삶을 살아갈 때에 두 번째가 되는 일 또한 종종 겪을 것이다. 첫째로 태어나 처음을 독자치한 적이 많은 나이지만, 두 번째가 주는 소중한 것들을 끌어안으며, 두 번째가 주는 여유와 행복을 발견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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