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되니 네가 싫어졌어

여자의 마음이란

by 빗소리

"노트북 좀 가져갈게."


3일 전 남편이 아침에 건넨 말이다. 회식과 야근이 잦아서 분명 늦은 시간까지 노트북을 가져오지 않을 것 같아 선뜻 주고 싶지 않았다. 육퇴 한 뒤 글 쓰는 취미로 근근이 살아가는 나의 빈약한 일상인데, 노트북이 없다면 얼마나 막막할까. 그래도 일에 필요한 것이니 어쩔 수 없이 양보했다. 주기 싫은 눈빛을 남편이 읽은 것 같아 미안했다.


남편은 저녁에 일찍 퇴근하였고, 오자마자 노트북을 내게 내밀었다. 다행이었다. 피곤해 보이는 남편은 일찍 잠들었고, 나는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리며 글을 썼다. 그러다 노트북 가방에서 삐죽이 나온 남편의 서류가 보였다. 평소 남편의 서류에 관심이 없는데, 갑자기 그냥 읽어보고 싶어 졌다. 서류의 내용은 3일 동안 가는 서울 출장에 관한 내용이었다. 투자 유치를 위해 상급자 2명을 모시고 서울에 가서 투자기관을 일일이 방문하는 계획이 적혀 있었다. 서울에서 머물면서 도는 출장이 아니라 왕복 5시간을 매일 상급자를 모시고 운전해야 하는 스케줄을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남편은 평소 말이 없다.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넘어서 중요한 이야기조차 잘하지 않아서 속이 궁금할 때가 많다. 그런 남편이니 본인의 회사와 업무에 대한 이야기도 듣기 힘들다. 본인 힘든 이야기를 내게 하는 것을 부끄러운 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저 감내하다 보면 내가 알아주겠지 하는 마음인 것 같은데, 당연히 나는 모른다. 내 힘든 일을 쭉 늘어놓을 때마다 남편이 버럭 하곤 한다. "너만 힘든 줄 알지!"


누가 봐도 참 빡빡하고 피곤한 스케줄일 텐데, 힘들단 소리도 없이 출근하고 퇴근하는 남편이 안쓰러웠다. 그러면서 부인이 소중히 생각하는 노트북을 가져간다고 눈치 보는 그 마음에 슬퍼졌다. 이 노트북이 뭐라고. 밥벌이하느라 힘든 그의 삶의 무게를 내가 덜어줄 수는 없는 것일까. 곤하게 잠든 남편의 모습을 보니 더 마음이 애처로워졌다. 남편을 챙겨주려 이리저리 애써보지만, 그러한 것들이 남편의 스트레스를 덜어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슬펐다.


서울 출장을 다니는 며칠간 남편이 최대한 집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대부분의 일을 내가 도맡아 했다. 서류를 보아서 알고 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내가 남편의 자유시간을 확보해주려 노력한다는 느낌을 남편도 눈치챈 것 같다. 미안해하며 놀던 며칠 전과 달리 편안하게 노는 그를 보니 왠지 웃겼다. 몸은 똑같이 놀아도 이렇게 마음 한 끗 차이가 참 큰 것이구나. 남편에 대한 감사를 글로 쓰니 그에 대한 마음이 더 복받쳤다. 잘해야겠다, 정말 잘해줘야겠다 생각했다.


아침이 되었다. 그가 싫어지려 한다. 휴지통까지 가기도 귀찮아서 주방 식탁에 잔뜩 펼쳐둔 과자 봉지에 성질이 났다. 3발자국 더 걸으면 있는 휴지통이 그렇게도 가기 싫었을까. 9년을 살아도 안 고쳐지는 이 버릇으로 싸운다. 감사에 복받치던 어제의 내가 신기루 같이 없어졌다. 다시금 분노 충전!


이게 우리 부부의 현실이다. 서로의 좋은 점과 싫은 점으로 얽히고설킨 채 살아가는 대부분의 부부가 이렇지 않을까. 어젯밤에는 좋았다가 오늘 아침에는 싫어지는 우리의 일상. 그래도 좋은 순간도 있으니 다행이다 마음을 쓸어내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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