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

사랑하는 너에게

by 빗소리

멀리서 친구가 놀러 왔다. 내겐 아이를 데리고 친구와 만나는 일이 익숙하지 않다. 유리 같이 잘 깨어지는 집중력을 가진 나,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에게 온 정신을 쏟아야만 만남을 가질 수 있는 나. 그런 나이기에 누군가와의 만남에 내가 신경 써야 할 두 사람을 함께 만난다는 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도 요즘 바쁘신 시부모님께 아기를 맡길 수 없는 상황이었고, 친구도 보고 싶은 마음에 욕심을 내보았다.


정말 오랜만에 서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상의 무게에 눌려 다른 생각을 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던 날들. 그런 날 속에 나는 친구와 하고 싶은 말들을 차마 카톡으로 옮기지 못한 채 삼키곤 했다. 아이 재우고, 설거지와 각종 집안일을 한 뒤면 늦은 밤이 되었다. 친구들을 향한 내 마음은 늦은 밤이 되면 행방을 잃었다. 누구도 방해하면 안 되는 그 시간은 그렇게 책과 글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고 잠들었다. 그러다 보니 서로에게 하지 못한 말들이 조용히 쌓여 갔다.


몰랐던 사이에 친구는 꽤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왜 그런 이야기를 이제야 해주냐 물어봤지만, 그저 씨익 웃는 친구의 미소에 그 질문은 힘 없이 가라앉았다. 잘 들어줄 걸 알면서, 무조건 내 편이 되어줄 것을 알면서도 우린 그렇게 서로 말할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숨 가쁜 서로의 일상을 혹여나 방해하는 일이 될까 봐 두려웠던 것 같다. 가뜩이나 힘든 너를 내가 더 힘들게 하면 어쩌지. 그 마음이 우리의 수다를 막아왔다.


친구는 외로웠노라 고백했다. 너무 외로운 마음에 이런저런 일을 해보았지만, 그래도 외로웠다고 한다. 외로움이란 단어가 아리고 쓸쓸했다. 나 또한 많이 외로웠다. 24시간 함께 하는 존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로서의 나에 가려 어딘가 숨겨진 나의 본 자아가 외로웠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전화번호를 바라보며 한참을 외로워했다. 버튼만 누르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는데도.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




이 그림책을 읽으며 친구를 생각했다. 서로의 외로움보다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 먼저였던 우리. 자주 만나지도, 자주 연락하지도 못하는 변변치 않은 일상이지만 그 일상의 끝에 말없이 서로를 떠올리는 우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다시 만나는 우리.


돌아보면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것이 전부이고, 연락도 자주 못하는 우리인데 왜 늘 바로 옆에 있는 것 같이 느껴질까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인간관계는 물리적 거리보다 정서적 거리가 더 중요한 것이어서 그러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가 만나는 한 순간, 대화를 나누는 한 마디는 높은 밀도를 가지고 있었고, 서로의 마음속에 깊이 침투했다. 때론 그 한순간을 가지고 일 년을 버텨내기도 했다. 한 마디에 오래도록 마음을 기대기도 했다.


나에게 살아갈 날들이 얼마나 남았을까. 그리고 그 날들 속에서 우리가 만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생각보다 훨씬 적은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생각하면 가슴 먹먹한 존재가 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하다. 남은 날들을 잘 살아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사랑하는 친구야,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 우리는 이미 알고 있잖아. 아무리 오랫동안 떨어져 있다 해도 언제나 다시 만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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