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께서 놀러 오셨다. 여름휴가를 호두와 함께 보내고 싶으셨다고 한다. 아침부터 우리 집에 놀러 온 할머니를 보며, 호두는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다. 나 또한 육아로 인한 부담이 한결 줄어드는 느낌이라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육아의 부담이 줄어든다 해서 모든 일이 줄어든 건 아니었다. 나에게는 엄마의 삼시 세끼를 책임져야 한다는 특명이 떨어졌다.
언젠가부터 엄마가 오시면 요리는 내 책임이 되었다. 엄마께서 요구하셨던 건 아니다. 혼자 사시며, 식사 챙겨 드시는 것을 귀찮아하시는 엄마의 건강이 걱정되어서 자꾸만 챙겨드리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다. 여러 글에서 이미 밝힌 바 있지만, 나는 사실 요리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특별히 요리 좋아하는 몇몇 분을 빼고는 주부라면 보통 그렇지 않을까 싶다. 매일 강제로 해야만 하는 일을 좋아하기란 쉽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내 삶에 요리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 생각하기에 좀 더 능숙하게 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내가 가족의 건강을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요리란 수단이 참 괜찮기 때문이다.
때론 엄마의 고민을 들어드릴 때도 있다. 재밌는 건 막상 나는 엄마에게 고민 상담을 잘하지 않는다. 감수성이 너무 풍부하신 엄마는 공감을 넘어 나와 본인을 거의 동일시하시기 때문에 나의 고민에 본인이 더 괴로워하신다. 우울감도 꽤 길게 가시니 고민을 털어놓으려다 엄마의 이런 과정을 지켜봐야 하는 고민이 더 생긴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던가. 다행스럽게도 나는 엄마의 고민을 들으면 그리 힘들진 않다. 엄마 나이 될 때까지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다는 것이 때론 신기하게 느껴지고, 배우기도 한다.
또 온갖 해결해야 할 일거리는 왜 아들의 몫이 아니라 딸의 몫인가. 5분 거리에 사는 아들, 며느리에게는 절대 시키지 않는 일을 먼 거리에 사는 나에게 굳이 가져오신다. 아들은 귀찮아해서 부탁하기가 싫고, 며느리는 괜히 부담 주는 것 같아 싫으시단다. 엄마의 일을 대신 처리해드리는 것이 그리 힘들진 않지만, 때론 가까이 사는 남동생이 얄미워지는 순간이 있다. 즉각 해결되지 않는 일로 며칠 답답해하실 엄마의 마음을 생각하면 속상해진다. 뭐 남동생이 귀찮아하는 면도 있겠지만, 가부장제 문화에서 오랫동안 살아오신 엄마께서 아들을 어려워하시는 면도 있어서일 거라 짐작해본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큰 삼촌댁에 들어가시면서부터 세상에 엄마의 친정이란 장소가 홀연히 없어졌다. 할머니와 엄마도 아마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을 것 같다. 큰 삼촌댁은 할머니를 잠시 만나러 가는 곳일 뿐 엄마에게 친정의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진 못한다. 갑자기 친정이 사라진 엄마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나도 의도하지 않았고, 엄마의 성격상 내게 부담주기 싫어 그런 생각도 하지 않으셨겠지만, 그 이후 자연스레 우리 집은 엄마의 친정이 되어갔다.
아빠가 돌아가신 일과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일은 10년 정도의 간격이 있지만, 묘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 나는 집안의 가장이 되었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나는 엄마의 친정이 되었다. 처음에는 엄마에게 기댈 어깨가 되어 드려야 한다는 것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었다. 그때는 나도 어렸다. 많이 방황했고, 힘들었다. 시간이 흘렀고, 나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육아는 참 어려웠다. 큰 욕심 없이 기본적인 일들만 챙겨주는 것조차 힘들었다. 엄마는 나보다 더 어린 나이에 이 힘든 일을 어떻게 해냈을까. 엄마가 참 대단해 보였고, 감사했다. 이제는 힘들었을 엄마께 기댈 어깨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부모라는 틀을 깨고 나와야 진정한 어른이 된다고들 한다. 나는 좀 더 빨리 어른이 될 기회를 얻었음에 감사하다. 엄마가 아직 건강하실 때, 많은 것을 누리실 수 있는 상황이실 때, 그동안 받아온 사랑을 갚아드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감사하다. 이제는 딸만이 아닌 엄마의 동반자로서 함께 늙어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안다.
엄마의 여름휴가. 엄마에게 부디 이 휴가가 편안하고 마음이 회복되는 시간이길 바래본다. 세 모녀가 함께 잔치국수를 만들어 먹으며 즐거워했던 오늘 하루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