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줍은 사람의 세상살이
고등학교 입시날이 생각이 난다. 그때 당시 나는 집 가까이 고등학교에서 입시를 보았다. 다른 지역의 중학생 아이들도 시험을 보러 왔었다. 이유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점심 도시락 준비에 대한 안내사항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던 것 같다. 다른 지역의 중학생 아이들은 점심을 미처 싸오지 못했다.
싸오지 못한 아이들이 점심을 싸온 아이들에게 부탁했는지 어우렁더우렁 점심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그중 한 아이가 눈에 띄었다. 그 아이는 엎드려 있었다. 교복이 다른 것을 보니 점심 도시락을 안내받지 못한 타 지역 학생이었고, 엎드려 있는 것을 미루어 짐작해보건대 남에게 잘 부탁하지 못하는 성격인 듯싶었다. 꼭 나 같은 모습인 그 아이가 자꾸만 신경 쓰였다.
나 또한 낯선 사람과 대화하기를 꺼려 하지만, 그날은 용기를 내어 그 아이에게 다가갔다. 함께 도시락을 먹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다행히 응해주었다. 그렇게 수줍은 아이 두 명은 함께 밥을 먹었다.
그로부터 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나는 수줍다. 사람의 성향이 얼마나 변하기 쉽지 않은지를 느낀다. 남에게 말 거는 것도 수줍어서 어쩔 줄 모르겠는데, 남에게 부탁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과제다. 정말 꼭 필요한 부탁이 아니라면 조금은 어렵고 돈이 든다 해도 내 손으로 해결하는 편이다.
직장생활을 하며 이런 성격은 참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같은 동기들이 주변에 부탁하며 잘 해결하는 일이 나는 어렵게 느껴졌다. 숨을 고르고, 몇 번의 연습 끝에 다가가서 부탁을 하고 나면 그제야 일은 해결이 되었다. 왜 나는 이다지도 이런 일이 어렵게 느껴질까. 사회생활하기가 참 쉽지 않았다.
그렇게 12년의 직장생활을 버텼다. 12년이란 세월은 생각보다 길었고, 그 세월 속에서 내 역량으로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능력도 조금씩 생겼다. 물론 12년이란 세월이 내 수줍음까지 덜어줄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여전히 수줍고, 어려웠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용기를 내보았다.
아이를 낳고 휴직을 하게 되며, 직장생활의 쉼표를 얻었다. 아이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멈추어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자연스레 나의 예전 직장생활 속 내 모습을 자꾸만 꺼내어 들여다보며, 그때의 내 감정은 어땠었는지, 지금 돌아보니 내 생각은 어떤지 곰곰이 되짚어보게 되었다.
휴직이란 건 단순히 일을 쉰다는 의미는 아니라 생각한다. 특히 육아휴직은 엄마라는 또 다른 직장의 경험을 얻게 한다. 나는 전혀 다른 직장에서 일을 하고, 나의 이전 직장에 대한 비교군을 얻게 되었으며, 이전 내 생활과 지금의 내 생활을 비교하고, 그 안에서 크고 작은 통찰을 얻게 되었다.
그중 하나를 소개해보면 이렇다. 집안의 첫 손주인 호두는 옷이나 장난감을 물려줄 친척이 없다. 오랜 난임 끝에 얻은 아이인지라 내 친구들의 대부분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학부모이다. 쉽게 말하면 나는 처음부터 주변의 도움을 전혀 구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 사실을 알기에 되도록 최소한의 소비만 하며 검소하게 살아가자 마음을 먹었다. 아이는 금방 크고, 옷과 장난감의 사용 기간도 무척 짧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다. 지인 중에 아이 옷을 보관해놓고 있다가 물려주는 분이 있었다. 갑자기 연락이 와서 옷이나 장난감을 보내주신 분이 꽤 여럿이었다. 정말 놀랍고 감사한 일이었다.
감사할수록 더 이상의 호의를 바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내게 물건을 물려주신 분이라도 그분이 또 주실 거라는 생각 자체를 접었다. 내가 부탁하면 앞으로도 종종 더 주실 수 있었을지 모르나 그분에게 그런 마음의 부담을 지워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내 마음도 가벼워졌다. 없으면 내가 사면되고,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검소하게 지내면 되었다.
부탁드리지 않으니 주시는 분도 받는 나도 더 행복해졌다. 뜻하지 않은 선의는 베푸는 사람에게도, 받는 사람에게도 놀랍고 감사한 일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부탁이란 짐을 버리고 나니, 나의 육아 생활 중 종종 뜻하지 않은 선의를 만나게 되었고, 그런 일을 만날 때마다 나는 조금씩 더 행복해졌다.
육아를 하기 전에는 이런 내 성격이 참 싫었다. 특히 넉살이 좋은 동료가 가까이에 있으면 더 비교가 되어 내 자신의 모습이 참기 힘들었다. 육아를 하며, 무조건적인 수용이 필요한 자리에서 살아가다 보니 아이뿐만 아니라 내 자신도 수용하게 된다. 수줍으면 어때, 남에게 '다오'라는 말을 못 하면 어때. 이게 그냥 내 모습이다. 모든 일은 플러스 마이너스 0, 모든 성격도 플러스 마이너스 0. 수줍어서 힘든 내 성격이지만, 그렇기에 만나는 특별한 호의들에 더 행복해질 때도 많다.
육아 휴직의 시간은 직장인으로서의 자아를 중간 점검하는 시간이다. 부족했던 스스로를 보듬어주고, 잘했던 부분은 더 잘하자 다짐도 해보며 그렇게 스스로를 돌아본다. 다시 돌아갈 그때에는 조금 더 스스로를 더 사랑하여 넉넉해진 내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다. 내일 만날 내 부족함은 무엇일까? 그리고 나는 그 부족함을 어떤 방법으로 보듬게 될까. 내일만큼 성장할 아이도 기대되지만, 내일만큼 성장할 나도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