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받길 힘겨워하는 어느 작가의 고백

나는 왜 브런치에 글을 쓰는가

by 빗소리


며칠 동안 제 브런치 공간에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다음 포털의 메인에 제 글이 올려지며 하루 만 명이 넘는 분들이 제 글을 읽어주셨습니다. 그 전의 몇 번 작은 경험상 하루면 끝날 이벤트라 생각했지만, 이번 일은 무려 6일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한 달에 한 명 생길까 말까 했던 구독자의 수도 20명이나 늘어나는 일이 생겼습니다. 아이에게 대부분의 정신이 가있어서 브런치를 수시로 체크할 수는 없었지만, 제 브런치 공간이 매우 들썩이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는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린 일이었습니다. 제 글이 누군가에게 주목을 받고, 사랑을 받는 일은 글 쓰는 사람으로서 누구나 고대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일을 겪으며 제가 느낀 감정은 '당혹감'이었습니다.


왜 당혹스러웠을까. 며칠 동안 곰곰이 혼자 생각해보았습니다. 아마도 제가 공개될 거라 생각지도 않았던 글이 갑자기 공개가 되었고, 그 글이 가족에 대한 글이어서였던 것 같습니다. 시아버님, 남편, 친정 엄마에 대한 글이 차례로 다음 포털을 통해 공개되었습니다. 제 브런치에는 저에 대한 글이 넘칩니다. 육아 에세이를 주로 적다 보니 호두 또한 주인공입니다. 그러나 어쩌다 쓰는 다른 가족들이 오히려 주목을 받게 되니 당황스러웠습니다. 공개될 거라 미처 생각하지도 못하고 솔직하게 쓴 글이라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가족에 대한 글은 남들에게 공감을 얻기 쉽습니다. 우리는 모두 가족의 울타리 속에서 살아가며, 크고 작은 행복감과 상처들을 주고받습니다. 그러한 이야기들은 누구나 겪는 일이고, 그 이야기 속에서 그동안 묻어 두었던 내 안의 생각과 감정을 만나는 계기가 됩니다. 그러한 사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직 제 가족의 이야기를 공개하는 것이 조금은 어렵게 느껴집니다.


문득 '공개적인 공간에 글쓰기'에 대한 전체적인 생각을 재고하게 되었습니다. 책에서 온라인 공간에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사람들은 모두 인정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수줍고 부끄러운 제 성격이지만, 제 안에도 분명한 인정 욕구가 있었나 봅니다. 브런치라는 공개적인 공간에 글을 올리는 것을 보면요. 그러나 그러한 인정 욕구만큼 제 삶을 더 많은 사람에게 공개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는지 제게 되묻게 됩니다. 아마도 저는 만 명이 넘는 사람이 제 글을 봐주는 날은 서서히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그것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번에서야 깨달았거든요.


"계속 공개적으로 글 쓰는 것이 맞는 것일까?"

"섬세하고 예민한 내 성격상 그냥 내 공책에 글을 적어 가는 것이 맞는 것은 아닐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아직 준비가 안된 느낌이었습니다. 제 고민을 함께 들어준 현명한 제 친구가 제게 되물었습니다.


"네가 글을 쓰는 목적이 뭐야? 나는 길을 잃을 때면 다시금 목적을 생각해보곤 하거든."


제가 글을 쓰는 목적을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해주기 위해서입니다. 그 마음을 달래주고, 회복시키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지난 17년 동안 개인 SNS를 통해 꾸준히 글을 써왔고, 저의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순간을 많이 보았습니다. 저는 제 글이 그러한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글을 올바르게 사용하고 싶습니다. 이 일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은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일기장에서만 쓰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무섭고 떨리더라도 저는 공개적인 글쓰기를 향해 점점 나아가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때론 상처가 되는 말을 들어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모든 이를 만족시킬 수도 없습니다. 글을 쓰며 나아가는 동안 제가 겪게 될 부정적인 일들이 무섭지만, 그래도 그러한 일들을 감당할 용기와 힘을 주실 것임도 믿습니다.


친구는 제게 본인의 스승님이 해주셨던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본인도 글쓰기에 큰 상처를 받고 무려 3년간 멈춰있었던 적이 있었다고. 그때 스승님의 말씀이 큰 힘이 되었다고.


"너의 글은 이 커다란 지구 안에서 아주 작디작은 돌부리일 뿐이야. 그렇게 작은 존재인 거야. 하지만 그 돌부리에 누군가는 걸려 넘어질 수도 있어. 그 사람을 위해 글을 쓰렴."


제 작디작은 글이 누군가의 돌부리가 될 수도 있겠다는 믿음이 듭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 저는 기꺼이 돌부리가 되고 싶습니다.


다만 이번 큰 공개(?)를 계기로 나의 영점을 다시 조정해야 한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또한 현명한 친구가 내게 해 준 조언에서 시작됩니다.


"네가 글을 쓰는 데에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나는 네가 너의 사유를 점검할 시간이 충분히 있는지, 네 글을 깊이 쓸 충분한 시간이 있는지 궁금해. 좀 더 고민하고, 여러 번 점검하고 쓰다 보면 분명 더 좋은 글을 쓸 순 있을 거야."


친구의 말을 듣고 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이건 제 글쓰기 방법을 아예 전체적으로 다시 바꿔야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동안은 육퇴 후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제게 주어진 작은 시간을 가지고 글을 썼고, 바로 글을 올렸습니다. 그렇지만 친구의 말대로라면 저는 좀 더 생각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왜 그동안 매일 글 쓰는 것을 매일 공개해야 한다는 뜻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던 걸까요. 매일 글 쓴다는 것은 매일 꼭 온라인 공간에서 공개적으로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인데 말이죠. 매일 글 쓰되 제 노트에 적고 충분히 퇴고하고, 퇴고하여 후에 올릴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단순하지만 큰 깨달음이었습니다. 매일의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되 그 결과물을 공개하는 것에 대해서는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저는 독자와 호흡하며 글 쓰는 것을 좋아하기에 때론 매일 올리고 싶은 날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좀 더 사유가 깊어지고, 고민이 깊은 글을 올리고 싶은 소망이 듭니다. 작게라도 천천히 노력해보아야겠습니다.


친구의 말은 제 안에 발효가 되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저는 신형철 평론가의 책에서 비슷한 문장을 만났습니다.



"말하기보다 글쓰기가 더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만큼 말을 쉽게 해왔다는 뜻일 수 있다. "



저는 말하기와 글쓰기를 너무 쉽게 해온 것은 아닌지. 제 사유의 깊이를 너무나 얕게 글에 담아온 것은 아닌지. 스스로 반성해보았습니다.


문학 평론가 김인환 선생님의 문장 또한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나는 절실한 상처의 기록을 읽기 좋아한다. 인간의 마음을 찍는 사진이 있다면 그 사진에는 선인장처럼 온통 가시가 박혀 있는 마음의 형상이 찍혀 있을 것이다. (...) 작가는 누구에게서나 상처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다. (...) 작품에는 상처를 달래는 지혜의 소중함과 어려움이 암시되어 있어야 한다. (...) 생명을 죽이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남을 다치지 않게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길도 인간에게는 주어져 있지 않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나와 남의 다친 영혼을 달래는 길뿐이다.



저의 글에 부디 상처를 달래는 지혜의 소중함과 어려움이 암시되길 소망합니다. 글을 읽는 이의 영혼을 달랠 수 있는 글이길 원합니다. 매일의 삶은 너무나 무겁고 아프므로. 그 하루의 끝에 읽는 제 글이 부디 당신에게 따뜻한 손으로 기억되길. 이를 위해 제가 더욱 치열하게 고민하고 번민하길. 간절히 바래보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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