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에는 오지 마라

사람 간의 언어도 제2외국어처럼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by 빗소리

시어머님과 가족이 된 지 9년이 되었다. 돌아보면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솔직하게 표현하시는 어머님과 달리 나는 내 생각을 잘 표현하지 않는 편이다. 물론 정말 중요한 부분에 있어서는 내 생각을 표현하지만, 그 외에는 다수의 의견을 존중하는 성향이다. 시댁의 집안 풍토는 솔직함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고, 우리 집안의 풍토는 솔직함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을 우선시한다. 무엇이 더 옳다 볼 순 없지만, 워낙에 집안의 풍토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성향이 다르다 보니 어머님과 내가 서로에게 적응하는 기간은 상당히 오래 걸렸다.


나는 최대한 부모님을 존중하고 이해해드리려 한다는 장점은 있지만, 애교가 없고 연락을 쑥스러워한다. 지금은 아기 보여드리려 일부러 자주 연락을 드리지만, 예전에는 연락을 드려도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서 자꾸 뜸을 들이곤 했다. 내 생각을 잘 표현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을 때가 많아서 시부모님 입장에서는 상당히 답답하게 느껴졌을 때도 있을 것이다.


어머님께서는 사려 깊으신 성격이신지라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까지도 나를 배려하신다. 솔직하신 편인데, 때론 자신의 의견을 꽤 강한 어조로 강요하실 때도 가끔 있어서 당황스러울 때가 있었다. 어떤 말씀을 듣고 나면 그날 밤에 잠이 잘 오지 않고, 계속 그 말이 맴맴 돌 때도 있었다.


그때는 미처 몰랐다. 어머님 언어에 담긴 마음들을. 사실 이론적으로는 안다고 해도 마음으로는 알 수 없었다. 내가 아직 어렸고, 아이도 없었을 때라 어머님의 언어가 내게 잘 소화되지 않고는 했다. 한 없이 서운해지고, 속상해서 먹먹한 날을 보낼 때도 있었다.


9년의 시간 동안 있었던 크고 작은 갈등은 우리 관계를 좀 더 단단히 다지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사이에 나는 아이를 낳았고, 한 아이의 부모로서의 마음과 내 아이의 배우자를 바라보는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어머님은 뭉뚱그려진 말로 자신의 생각이 잘못 전달될까 되도록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해오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때론 나보다 아들에게 더 무게 중심을 둔 언어를 들을 때면 서운했지만, 사실 아기를 낳아보니 그건 본능인지라 어머님께서 그나마 많이 절제하시며 이야기를 하셨단 생각도 들었다. 나 같아도 자꾸만 내 아이에게 무심코 무게중심을 두고 이야기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 서운함을 상쇄하는 어머님의 다른 사랑 표현도 배우게 되었다. 어머님의 사랑 표현 중 하나는 자신이 애써서 무언가를 나에게 선물해 주시는 것이었다. 산에서 어렵게 쑥을 뜯어다가 쑥개떡을 만들어서 보내주시고, 평소 아이 키우느라 고기 먹기 힘들 거라며 내가 갈 때마다 꼭 삼겹살을 구워 주셨다. 옥수수를 좋아하는 나를 기억하시고, 여름마다 옥수수를 대량으로 쪄서 냉동실에 넣어주시곤 하셨다.


되도록 예쁜 말을 하며 어머님의 마음을 존중하는 나의 노력은 어쩌면 조금 쉬운 방법일 수 있다. 어머님께서 나이 드신 몸으로 애써서 만들어내신 것들에 비하면 말이다. 나의 서운함이 어머님의 수고를 쉬이 잊히게 했다는 것이 가끔 죄송한 마음도 든다. 어머님은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말을 몸으로 하고 계셨는데 말이다.


"월요일에는 오지 마라."


오늘 어머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이다. 시댁 주변에 지코바 치킨이 있는데, 다른 지역이나 다른 치킨 브랜드에 비해 유독 맛있다고 한다. 나에게 꼭 먹여 주고 싶으신데, 지코바는 월요일에 휴무이다. 벌써 먹여주기 시도를 몇 번째 실패하신 어머니께서 오늘 당부하신 말씀이다. 월요일에는 오지 말라는 이야기가 이렇게 따뜻한 문장인지 몰랐다. 맛있는 거 먹기가 힘든 어린아이 엄마에게 베푸는 어머님의 배려가 감사하다.


어쩌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언어도 제2외국어처럼 공부가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같은 언어를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살아온 환경과 성격, 경험에 의해 우리의 단어는 점점 서로 다른 뜻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9년 동안 나는 어머님의 언어에 대해 공부해볼 생각이 있었는가? 자신이 없다. 어머님께서 툭 던지신 월요일 발언이 내게 갑자기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어머님의 언어를 더 배우고 싶다.


알면 보이고,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말이 있다. 어머님과 나에게 앞으로 남겨진 시간만큼은 전과 같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어머님의 언어를 더 이해하고, 어머님께 더 사랑과 존중을 보내드리고 싶다.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인지 모르기에. 이 시간을 소중히 보내야 어머님이 돌아가셔도 후회로 남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다음 주에는 꼭 지코바 치킨을 어머님과 함께 뜯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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