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자발적 가난'이란 말을 참 좋아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한동안이 아니라 내 삶의 꽤 많은 시간 동안 '검소한 삶'에 대한 꿈이 있었던 것 같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중학교 때 읽었던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영향이 컸다. 한참 삶의 기본적인 틀에 대해서 고민하던 십대 시기에 읽었던 터라 더욱 그랬다.
자발적 가난. 어디까지나 '꿈'일뿐이지 실천하기는 어렵다. 근사해보이는'새 물건'의 신선함과 아름다움을 떨쳐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소비가 주는 만족감 또한 잠깐이지만 꽤 매력적이다. 스스로를 잘 제어하며 살지 않으면 어느 순간 마구 필요 없는 것을 사게 되곤 한다.
육아를 시작하며, 좀 더 어려워진 가정 경제를 생각하여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자 다짐했다. 아이는 계속 성장하는 존재이므로 육아용품의 대부분이 잠시 쓰는 물건들이라 상당히 돈이 아까웠다. 그러다보니 중고를 선호하게 되었고, 감사하게도 여러 곳에서 아기 옷과 장난감을 물려 받을 수 있었다. 많은 물품을 중고로 사용하며 돈을 절약하고 있지만, 가끔씩 소비가 제어되지 않을 때가 있다. 종이귀를 팔랑거리며 좋다는 물품을 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면 아직도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나를 어떻게 제어할 수 있을까. 의외로 엉뚱한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아기를 낳고 점점 깜빡깜빡하고 있는 나의 건망증이 그렇다. 얼마 전 기차에서 양산을 놓고 내렸다. 몇 년 동안 여름마다 참 잘 사용하던 건데, 잃어버리니 앞이 막막했다. 아직 여름이 한 달 남은 시점이었다. 사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하다가 이 고민 조차 또 잊어버렸다. 아이와 씨름하며 보내니 몇 주 훌쩍 지나며 여름이 거의 다 가버렸다. 결국 양산 없이 여름을 지낸 것이다. 필요성도 전혀 느끼지 못한 채로 말이다.
아이를 돌보느라 바쁘다보니 '없이 살아가기'를 자연스레 실천 중이다. 물건을 잃어버리면 물건을 다시 사야한다는 사실도 함께 잊어버린다. 짧게는 2~3일에서 길게는 몇 주간 그 물건 없이 살아가다보면 생각 외로 그 물건이 내게 그리 필요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신기한 경험이다. 결국 그 물건 없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그 물건을 재구매하지 않는다. 이런 일이 꽤 많다.
아이로 인해 배운 '없이 살아가기'는 꽤 근사한 경험이었다. 앞으로의 내 삶에도 계속 이어가고 싶은 일이다. 꼭 물건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아니어도 무언가 없이 살아가는 경험을 의도적으로 해보며, 내 삶에서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잘 구분할 수 있는 감각을 갖고 싶다. 물리적으로 정돈된 삶은 결국 내면적으로도 정돈된 삶으로 이끈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외적이든, 내적이든 많은 정리가 필요하다.
육아는 힘들고 특수한 상황을 내게 자주 만들어주지만, 그런 상황이기에 배울 수 있는 특별한 경험도 많다. 지금 아니면 배울 수 없는 이런 특별한 일들을 감사히 여기고, 앞으로의 삶에도 가지고 갈 좋은 배움을 잘 터득해가고 싶다. 무엇보다 힘든 상황 자체에 파묻히지 말고, 그 안에서 번뜩이는 눈으로 배울 점을 쏙쏙 잘 찾아내는 지혜를 주시길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