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로부터 온 럭키 박스

꾸러미 서비스의 매력에 대하여

by 빗소리

올해 5월에 지인의 소개로 유기농 농부의 꾸러미 서비스를 신청하게 되었다. 그때그때 수확할 수 있는 제철 채소와 과일, 유기농 가공품을 매주 품목을 달리하여 보내주는 서비스이다. 농부님이 살고 계시는 마을 전체가 유기농 마을이기에 각종 유기농 가공품을 만드는 공방이 있어 소시지나 요구르트, 과일즙 등도 만나볼 수 있다. 발송되기 이틀 전쯤에야 그 주에 오는 품목을 문자로 받을 수 있다.


그동안은 내가 스스로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것을 사서 요리하는 체제였다면, 이제는 재료가 정해지면 그에 맞춰 요리해야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조금은 신기한 방식이다. 꾸러미로 오는 채소 중에 내가 생전 처음 만져보는 재료도 있고, 한 번도 요리할 엄두도 못 내었던 재료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꾸러미와 함께 오는 소식지에 꾸러미에 담긴 채소로 할 수 있는 여러 요리를 간단하게 소개해주시기에 블로그 레시피를 검색해가며 서툰 요리를 해볼 수 있다.


가장 최근에 했던 새로운 요리는 고구마순 볶음이었다. 아마 이 볶음을 해보지 않았다면 고구마순 겉껍질 벗기기가 얼마나 귀찮고 번거로운 일인지를 몰랐을 것이다. 아기에게 고구마순 요리를 소개해주고 싶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까서 볶아줬는데, 호두도 참 잘 먹었다. 그 이후부터는 길거리에서 고구마순 벗기며 야채를 늘어놓고 파시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아이고, 고구마순 벗기기 정말 힘든데... 이렇게 싼 가격에 껍질 벗겨진 고구마순을 살 수 있다니...' 새로운 경험은 점점 내 공감의 폭을 넓혀가게 하는 것 같아 참 좋다.


그냥 그런 채소와 과일이 왔다면 꾸러미의 매력에 폭 빠지지 않았을 텐데, 이 농부님의 꾸러미 서비스는 좀 다르다. 사실 다른 꾸러미 서비스를 이용해 보지 않아서 비교 대상은 없지만, 적어도 이분이 얼마나 진심을 다해서 이 일을 사랑하고 있는지가 느껴지기에 왠지 특별하게 느껴진다.


5월에는 아카시아꽃을 밥에 넣어 먹어보면 향긋하다며 아카시아꽃을 보내주시기도 하고, 보리수철에는 보리수 맛은 봐야 하지 않겠냐며 보리수를 따다가 넣어주신다. 꽃이든 보리수든 크기가 참 작은데, 그 많은 꾸러미에 다 넣으려고 얼마나 애쓰셨을지 생각이 나서 참 뭉클했다.


오이나 토마토가 너무 많이 수확되어서 한 번 만들어 보았다며 오이 피클, 토마토 장아찌를 만들어 보내주시기도 한다. 때로는 떡꼬치 떡과 소스가 오기도 한다. 봄에 많이 나는 딸기로는 딸기잼을 만들어서 보내주시기도 하고, 지난번 아카시아꽃으로 효소를 담가 보았다며 직접 만든 효소도 보내주신다. 이웃집에 쑥 미숫가루를 만드는데 너무 맛있어서 얻어왔다며 쑥 미숫가루도 보내주셔서 처음으로 맛보았다.


시기에 맞는 특별함도 담겨 있어 참 좋다. 이번 추석을 앞두고 보낸 추석 꾸러미에는 삼색 송편 반죽과 구기자 한과가 들어 있었다. 살면서 송편을 만들어 본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에 이번 추석은 아기와 함께 송편을 만들며 좀 특별하게 보낼 수 있겠단 생각에 반갑고 행복했다.


다음 주에는 어떤 것들이 도착할까? 어느덧 농부님의 꾸러미는 내게 일상의 설렘을 더해주는 존재가 되었다. 비슷한 듯 다른 듯 매번 조금씩 새로워지는 꾸러미의 물품들이 늘 궁금하고 재밌다. 내게는 꼭 럭키박스 같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는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행복이다. 농산물을 기른 손이 누구의 손인지 분명히 알고 있고, 더불어 자식 같이 키운 농산물에 묻은 사랑 또한 느낄 수 있다.


뭔지도 모르면서 꾸러미가 오면 장난감이 온 듯 물건을 가지고 이리저리 사방에 갖다 놓고 돌아다니는 호두. 호두가 좀 크면 꾸러미의 채소를 함께 요리도 해보고, 생명을 기르는 것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다. 날이 갈수록 꾸러미가, 꾸러미를 함께 누릴 호두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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