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께서 태국으로 3박 4일의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셨다. 외할머니의 팔순 기념으로 큰삼촌이 준비한 여행이었다. 일하느라 바쁘셔서 외할머니를 직접 모시고 갈 수 없으니 엄마와 이모, 사촌 동생(큰삼촌의 딸)에게 외할머니를 모시고 태국에 가달라며 전액 지원을 약속했다.
큰삼촌은 부자가 아니다. 하루하루 돈 벌며 살아가기 힘든 평범한 서민인데, 이렇게 통 큰 지원을 약속한 큰삼촌이 참 대단해 보였다. 한편으로는 지혜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돈은 있다가도 없어지지만, 외할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가족 모두에게 좋은 추억을 선물한다는 것은 돈으로로 매길 수 없는 중요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가늠하고, 이를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삼촌이 부러웠다. 나도 그 나이 되면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여행을 앞둔 엄마는 왜인지 심란해 보였다. 다리가 불편하셔서 걷기 힘들어하시고, 이래저래 손이 많이 가는 외할머니를 보필하며 해외여행을 한다는 게 걱정이 되셨나 보다. 관광사를 통한 여행인지라 오히려 함께 가는 다른 일행들을 어렵게 하며, 불편한 마음을 안고 해야 하는 여행은 아닐지. 엄마는 여러 걱정으로 여행 준비 내내 그리 즐거워 보이지 않으셨다.
사촌동생도 어려웠을 것 같다. 몸이 불편하신 외할머니와 해외여행 경험이 거의 전무한 큰 고모, 해외는 처음인 작은 고모 세 어른을 모시고 가는 여행. 여행사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어찌 되었거나 세 어른이 불편하시지 않게 여행 내내 보필해야 하는 역할을 20대 초반인 사촌 동생이 감내해야 했다. 차마 물어보진 못했지만, 사촌동생도 여행 준비 내내 부담감으로 힘들지 않았을까.
그렇게 준비부터 걱정이 되던 삼대의 여행은 시작이 되었다. 엄마가 와이파이를 이용하지 않으셔서 연락이 두절되었다. 사촌 동생은 와이파이가 되었기 때문에 사촌 동생에게 내내 연락하면 되겠지만, 가뜩이나 힘들 그 애를 나까지 보태어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생각하며 그저 안전하게 여행하시길 소망했다.
여행 마지막 날 밤 사촌 동생에게 카톡으로 사진이 하나 왔다. 엄마의 깜짝 생일 파티 사진이었다. 사진 속 엄마는 케이크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엄마 뒤에서 도깨비 뿔을 만들며 장난을 치는 이모와 그 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 할머니도 있었다. 나보다 더 젊어보이는 할머니의 그 표정은 아마도 함께 사는 사촌동생에게 배운 것이 아닐까 싶었다. 사진에는 없지만, 이 파티를 기획하고, 실행한 사촌 동생도 왠지 흐뭇한 미소로 사진기 뒤에 있었을 것 같다.
오랫동안 사진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나는 그들의 인생 중 오래 기억에 남을만한 진한 추억의 한 장면을 보게 된 건 아닐까? 세 어른의 마음속에 태국에서의 특별한 생일 파티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잔향이 될 듯했다. 그래도 아직은 정신과 몸이 건강하신 외할머니와 타국에서 함께 알콩달콩 숙식을 하는 추억. 아마도 할머니께도, 할머니의 딸인 엄마와 이모에게도 살아생전 남겼던 추억 중 가장 행복했던 추억으로 기억에 남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국에서의 모든 고민과 걱정을 잠시 접어 두고, 오롯이 서로만을 생각하는 그 시간이 세 모녀에게는 어떻게 남았을까.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순 없지만, 아니 어쩌면 그들 무의식에 흐르는 그 이야기를 나는 알 것만 같았다.
살면서 내가 써야 할 돈과 내가 가야 할 여행에 대한 답을 찾은 듯한 느낌이다. 나와 가족, 그리고 이웃에게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을 만드는 데에 돈을 쓰고, 함께 하는 동행과 여행지에서 만나는 인연들에게 진한 잔향을 남기는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헌신이 필요하다면 내가 그 헌신을 기꺼이 하는 사람이 되려 노력하고 싶다.
좋은 선택의 여파는 그 선택에 참여하는 사람에게도, 그 선택의 과정과 결과를 바라보는 사람에게도 크다. 삼촌이 보여준 선택은 우리 외가 집안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누군가의 아름다운 헌신이 수많은 더 좋은 선택을 낳을 수 있다. 삼촌 한 사람으로 인해 우리 집안에 더 많은 좋은 선택들이 이어지는 일이 생겼으면 참 좋겠다. 물론 나부터 실천해야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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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생파는 생일 파티의 줄임말로 요새 10대 아이들이 쓰는 말이다. 사진 속 세 모녀의 표정이 정말 10대 같이 익살스러웠기에 참 잘 어울리는 단어라 사용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