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일기] 거기 계셔 주셔서

by 빗소리

요즘 내 마음을 우울하게 만드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그래서인지 마음을 조금만 놓고 있어도 쭈욱 가라앉는 기분이다. 오늘도 좀 가라앉는 마음을 애써 다독이며 아이를 재웠다. 나와 좀 떨어진 채 인형과 씨름하며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던 호두가 어느새 또로로로 굴러와 내 품에 쏙 안긴다. 이제는 아기보다는 어린이에 왠지 더 가까운 호두의 체구인데, 다행스럽게도 내 품에 아직은 담뿍 채울 수 있어 다행이다.


나에게 꼭 안긴 호두에게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 들려줄까 했더니, 호두가 고개를 마구 흔든다. 어둠 속이지만 위아래로 흔든 녀석의 얼굴이 느껴진다. 아직 어려서 토끼와 거북이가 뭔지도 잘 모르지만,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은 알아듣는 것 같다. 이상한 목소리로 가득한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끝내니 호두가 반응이 없다. 슬쩍 보니 녀석이 눈을 감고 있다. 아무래도 잠든 것 같다. 그대로 놓고 나가도 깨지 않을 것 같은 눈치이지만, 내 품에 쏙 안긴 녀석의 따뜻함이 너무 좋아서 잠든 호두를 계속 안고 있었다. 언제까지 내가 너를 이렇게 꼬옥 안을 수 있을까. 태어나서 금방 커버린 것 같은 지금처럼 또 시간이 훌쩍 흘러가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호두를 안고 사랑스러운 체온을 오래도록 느꼈다.


내 아이. 한 때는 내 삶에 내 아이라는 존재를 가질 수 있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7년이라는 난임을 겪으며, 어쩌면 나는 아이를 가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였을 때였다. 그때의 시간도 지나가고, 어느덧 내 아이가 이렇게 내 품에 있다.


내 아이. 나의 외모와 나의 성격을 닮은 작은 존재. 나의 표정으로 웃고, 나의 고집으로 장난감을 놓지 않는 이 아이. 아이 속에서 숨겨진 내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이 아이가 내 아이지라는 단순한 사실을 또 깨닫는다. 하나님의 창조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와 닮은 아이와의 만남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


아름다운 마음을 안고 거실로 나왔지만, 다시금 우울감이 나를 반긴다. 참. 쟤는 정말 지겹지도 않은가 봐. 우울감은 그렇게 나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며 내 곁에 다시 다가온다. 녀석과 어깨동무를 한 채 멍하니 티비를 보다가 이대로 이 녀석과 시간을 계속 보내는 것이 왠지 싫어진다. 성경도 읽고, 감사 일기도 쓰고, 기도도 하고, 글도 써보고. 내 감정과 상관없이 나의 밤을 채워주던 루틴들을 착실히 밟아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그리고 성경책을 꺼내 든다.


요즘 읽었던 책인 교회 오빠에서는 욥의 신앙을 보여주는 교회 오빠 이관희의 삶이 나온다. 다니엘과 요셉 같은 삶을 꿈꾸는 이는 많아도 욥과 같은 삶을 꿈꾸는 이는 없을 것이다. 고난 속의 축복을 만끽했던 전자의 삶과 달리 후자의 삶은 너무 많은 고난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난 속에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주저앉은 것이 아니라 입술로 범죄 하지 아니하고 복을 주시는 이도 거두어가시는 이도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며 담담히 그의 신앙을 지켜나간다. 후에 욥에게 하나님은 잃었던 복보다 갑절의 복을 주신다. 관희 씨의 삶도 이랬으면 참 좋았겠지만, 관희 씨는 결국 암투병을 하다 돌아가셨다. 그러나 과연 관희 씨가 복을 받지 못했다 말을 할 수 있을까? 그의 삶은 다큐멘터리로, 영화로, 책으로 소개되어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담은 민들레 홀씨로 퍼져 나가고 있다. 떨어진 밀알 하나가 갑절의 열매를 맺는 것처럼.


입술로 범죄 하지 않았던 신앙. 그리고 온전한 신앙. 사실 욥의 고난과 달리 나의 우울감의 요인들은 무척 사소하고 작게 느껴진다. 그러나 작은 구멍 하나에도 벽은 무너질 수 있는 법. 내가 힘들다 느껴진다면 힘든 것이 맞는 것이다. 이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이 모습 이대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길 소망한다. 내가 왜 우울한지, 그리고 그 안에 깃든 나의 불안과 걱정을 하나님께 그대로 말씀드리고, 해결 유무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그저 내 이야기를 들어주어서 얼마나 감사한지를 고백하고 싶다.


언제든 부르면 거기 계시는 아버지를 둔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때론 침묵으로서 대답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그가 거기 계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다행이다.


어쩌면 내일도 행복과 우울이 공존하는 나의 삶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순간에도 있는 자리에서 감사하기를 작정한다면 그래도 내일 하루만큼은 견딜 수 있지 않을까.


거기 계셔주셔서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신앙 일기] 일말의 어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