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드러나는 것이 다가 아닐 때가 있다. 무언가를 둘러싼 공기를 정확히 해석하는 데에는 상당히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일이 있다. 빠르게 판단해서 결정해야 하는 일과 천천히 시간을 두고 생각하여 결정할 수 있는 일. 무언가를 판단할 때 드러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알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빨리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면 결국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 순간의 직감을 최대한 믿어보고, 그 직감이 맞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나의 선택을 돌아보면 절반은 만족스러웠고, 절반은 후회스러웠다. 무언가를 빨리 결정해야 한다는 건 이토록 많은 스트레스와 책임감을 동반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 빨리 결정해야 하는 일이다.
특히 사람이나 공동체는 읽을 수 없는 행간이 참 많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떤 공동체에 속하게 되었을 때 수면 뒤에 드러나는 것은 극히 일부일뿐이다. 그 극히 일부를 가지고 나는 빠른 판단을 해야 한다. 이 사람과 계속 만날 것인가. 이 공동체에 들어가야 하는 것인가. 시간을 많이 두고 결정하고 싶지만, 친해지고 그 속으로 파고들어가야만 알게 되는 것들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아무도 말하지 않은 진심들을 느낄 때 나는 조용히 놀라곤 한다. 결국 진심은 주머니 속 송곳 같아서 굳이 존재를 드러내지 않아도 마침내 어떤 방식으로든 전달이 돼버리는 것이다. 때론 그 진심에 감동을 받기도 하고, 때론 그 진심에 속상하고 실망스럽기도 하다.
나는 꽤 오랫동안 언어를 만지작만지작하며 손에 익혀온 사람이기에 나의 진심을 전하는 것에 큰 어려움이 없는 사람이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최대한 그 사람에게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왔고, 상당 부분 잘 전달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점에 대해서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친구 중 자신의 진심이 잘 전달되지 않아서 아쉽다 종종 말하는 친구가 있다. 내가 볼 때는 친구가 자신의 진심을 참 잘 전달하고 있다 생각이 되는데, 친구가 느낄 때에는 부족하게 느껴지나 보다. 오늘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새로운 생각을 하나 발견했다. 진심은 꼭 말로만 전달되는 것은 아니고, 그 행간 속에서도 전달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상하게도 친구의 말 행간 속에서 겉의 말에서는 알 수 없는 친구의 진심이 느껴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진심이라는 것은 정말 뾰족한 것이구나. 어떻게든 튀어나오게 되어 있구나. 신기했다. 눈에 보이는 말이 아니라 어떻게 행간 속에서 그것이 드러날 수 있을까.
사람의 마음은 신기하다. 오감을 넘어서 육감이 이미 그 사람이 내뿜는 공기를 느끼고 있다. 진심이라는 것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때론 말보다 더 큰 소리로 사람의 마음에 가닿는다.
오늘 친구와의 대화를 생각하며, 진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했다. 한 사람에 대해 진심 어린 애정을 품고 있다면 말과 글이 아니어도 그 마음은 그 사람의 마음에 가닿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때론 말과 글이 울리는 꽹과리 같이 필요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의 귀를 사로잡는 미사여구가 아니라 그저 묵직한 진심이 더 따뜻하게 다가가는 법일 테니까.
내 곁의 사람들에게 나는 묵직한 진심을 가지고 있는지, 괜한 미사여구로 남의 환심을 사려 애꿎은 노력을 했던 적은 없는지 돌아본다. 나의 말과 글보다 나의 마음이 먼저 준비되고, 먼저 다듬어지길 소망한다.
행간 속 진심을 읽는 사람, 행간 속 진심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행간 속 진심이 있기에 세상은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