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의 일이다. 남편이 아침에 출근하려 바지를 입다가 외마디 소리를 냈다. 왜 그런지 물어보니 바지가 작아졌다고 한다.
"뭐? 살이 쪘겠지!"
"헐, 살이 며칠 만에 찌냐?"
하아. 믿고 싶지 않았다. 믿고 싶지 않아서 자꾸만 현실을 부정했지만, 그 바지는 작아진 게 맞았다. 믿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2년 전 장기 휴직을 대비하여 큰 맘먹고 사준 비싼 정장이었기 때문이다. 바지 하나가 20만 원이었던... 무려 80만 원이나 주고 샀던 정장의 바지가 망가지다니. 정말 부인하고 싶은 현실이었다.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세탁소의 과실.
"세탁소에 물어달라고 전화해야 하는 거지?"
"그냥 버려. 뭘 물어 달라 해."
쿨하게 버리라는 남편과 달리 나는 쿨하지 못해 미안한 여자라 남편 출근 후 세탁소에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께 비싸게 주고 샀던 바지가 줄어들게 되어 너무 속상하다고 솔직히 말씀드렸다. 사장님은 처음에는 부인하셨다. 어떻게 세탁을 하는데 바지가 줄을 수 있냐며 현실을 부인하셨다. 내가 2년 넘게 똑같은 세탁소만 이용하고 있고, 그 바지를 세탁한 건 오직 그 세탁소뿐인데 그럼 왜 줄어들었겠냐며 반문했다. 그럴 리가 없다며 계속 믿을 수 없어하던 사장님은 본인이 수거하러 오실 때 남편이 입은 모습을 보고 줄어든 것을 확인해본 뒤 복구해보려 노력하겠다고 대답하셨다.
나는 너무 화가 났다. 살면서 줄어든 옷이 복구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을뿐더러 남편에게 입는 것을 시연해보게 해야 한다는 사실이 어이가 없었다. 2년 동안 별 다른 이벤트 없이 쭉 거래해왔던 단골의 말을 믿지 못하시다니. 더군다나 물어주신다는 말씀은 일언반구도 없으셨다. 무조건 복구하도록 노력한다는 그 이야기를 되뇔수록 자꾸만 분노지수가 올라갔다.
호두가 막 아침밥을 다 먹은 시점이라 아이를 둘러업고 세탁소로 출동할까 싶었다. 너무 화가 났다. 이런 감정으로 쫓아갔다가 괜히 싸움이 날 것 같아서 호두에게 좋지 않을 것도 같았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일단 이성의 끈을 도로 붙잡고 바지를 구입했던 브랜드 본사에 전화를 걸었다.
일단 바지의 판매가를 다시 확인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소비자 보호원 심의까지 가려면 바지의 가격을 알아야 했다. 본사에서 원래 가격과 마지막에 이월로 팔렸던 가격까지 알려주셨다.
소비자 보호원에 전화를 걸었다. 상담해보니 똑같은 바지가 한 벌 더 있으니, 두 바지를 비교해보면 소비자 보호원에서 심의할 때 도움이 많이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소비자 보호원에서 누구 과실인지, 얼마 정도 물어줘야 할지를 심의해서 소비자와 세탁소에 통보해주는 것이라 했다. 세탁소 과실일 경우 자신들이 통보하면 그래도 많은 세탁소가 심의에 따라준단 이야기도 해주었다.
준비는 끝났다. 뜨거웠던 분노가 내려가고, 차가운 냉정함이 고개를 들었다. 세탁소에 전화를 걸기 전 바지를 비교해보니 줄어든 것뿐만 아니라 바지의 전체적인 질감이 형편없이 변해 있었다. 대체 무슨 작업을 어떻게 하셨길래 바지가 이렇게 상한 것일까. 두 바지를 보여만 드려도 이건 할 말이 없으시겠단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은 아직까지 바지가 한 벌만 있는지 알고 계셨다. 얼마나 줄어들었는지도 질감이 나빠졌는지도 비교군이 없으면 알 수 없기에 사장님이 우기면 별 수 없는 일이었다. 바지 한 벌이 더 있던 게 얼마나 다행인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상하게 세탁소에 전화 걸기 전에 남편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 졌다. 남편에게 알아볼 건 다 알아봤고, 세탁소와 분쟁할 것도 없이 소비자 보호원에 바로 심의를 거쳐서 정식으로 물어달라고 요청할 거라 이야기했다. 남편은 한숨을 쉬더니 이야기했다.
"2년 동안 열심히 입은 바지야. 많이 입은 바지를 뭘 물어 달라 해. 그 정도 입었으면 된 거야."
자꾸만 반론을 제기하는 내게 니 맘대로 하라며, 그렇지만 자기는 그만 두길 바란다며 전화를 끊었다. 속상했다. 너만 성인군자냐 싶었다. 남편을 위해 결혼하고 처음으로 큰 맘먹고 비싼 정장을 사준 것이 이렇게 망가져서 마음이 아픈데, 남편은 아무렇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까.
사장님께 또박또박해야 할 말로 가득 찼던 머리가 텅 빈 느낌이 들었다. 더 이상 이 상황을 되돌리고 싶은 전투 의지가 없어졌다. 마치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 된 것 마냥 기분이 좋지 않았다.
세탁소에 가지 않고, 호두를 데리고 다른 곳에 놀러 갔다. 기분이 좋지 않아서 어디든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호두와 시간을 보내며, 당분간 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세탁소 문제는 덮어두고 천천히 생각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 문제를 두고 그 기간 동안 기도를 했다. 어떤 게 지혜롭게 해결하는 것일까. 남편처럼 바보같이 착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청 똑순이도 아니고............... 나는 어설프게 착하고, 어설프게 똑똑하고 싶었나 보다. 그러니 뭘 해도 미련이 남고, 찝찝하다. 남편은 뭘 믿고 그렇게 착할까. 좋은 바지가 그렇게 되었는데도 룰루랄라 살아가는 남편이 부러웠다. 나는 아직도 속이 이렇게 쓰린데 말이다.
기도하다 보니 마음이 슬슬 정해졌다. 일흔 번에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이 자꾸 마음을 후벼 팠다. 그래도 무작정 없던 일로 하는 건 왠지 일의 절차가 아닌 것 같았다. 사장님께서 말씀하신 제안을 따라보기로 결정했다. 사장님께 말씀은 드리지 않았지만, 만약 사장님께서 실패하시더라도 이해해드리자는 마음이었다. 세탁소 사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바지 2개를 보내 드리고, 사장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복구해달라고 부탁드렸다. 최대한 공손하고 차분하게 말씀드렸다. 기분 탓인지 그날따라 우리 아버님 연배의 사장님 뒷모습이 쓸쓸했다.
시간이 흐르고, 오늘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이미 사장님이 어떻게 나오시더라도 용서해야겠단 마음을 먹긴 했지만, 괜스레 마음이 떨렸다. 마침 남편과 호두가 외출을 하고 혼자 있는 터라 더 떨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시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기도했다. 제발 지혜롭게 잘 해결하게 도와달라고.
사장님이 바지를 내미시더니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하셨다. 아무리 해도 복구가 안되더라며, 이 바지를 똑같은 것으로 사서 본인에게 가격을 청구해달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무조건 부인하시는 것 같아 화가 난 게 사실이었지만, 사장님 생각에는 일단 복구하려 노력해본 뒤 안되면 물어주시려 했던 마음이었다 보다.
사장님께 솔직히 이야기를 했다. 저도 사실 업체에 가격까지 알아보고 했으나, 남편이 물어주시는 걸 원치 않아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고 말씀드렸다. 순간 사장님의 표정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적어도 남편 덕분에 사장님은 오늘 모처럼 편안한 잠을 주무실 거란 예감이 들었다. 공동현관에 계실 때 인터폰으로 본 사장님의 표정이 얼마나 무거웠는지를 기억하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초반에 보인 나의 깐깐함 때문에 오늘 쉽지 않은 시간이 되겠구나 하며 올라오셨던 것 같다.
이제 배웅해드리려는데, 사장님은 멀쩡한 다른 바지에 구멍이 있는 것을 본인 돈으로 서울 업체에 맡겨 때워 주시겠다 제안했다. 그 구멍은 나도 알고 있는 것이었지만, 구멍이 작아서 그냥 방치해둔 상태였다. 사장님도 그냥 이것을 넘어가기에는 너무 미안해하시는 것 같았다. 나도 흔쾌히 감사하다 했다.
오늘 두 바보 부부는 손해를 보았다. 물질적인 손해를 보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마음은 이득을 본 느낌이다. 다른 이의 실수를 품으며, 내 마음이 좀 더 성숙해진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바보 남편의 인성이 얼마나 훌륭한지도 깨달았다. 운전할 때도 늘 양보하고, 누군가의 무례함을 당연히 이해해왔던 그의 기이함(?)에 끌려 결혼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그는 온유한 사람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누군가의 실수를 잘 덮어주고, 본인의 실수에도 너무 죄의식을 갖지 않되 최대한 책임을 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온유함과 다혈질 사이에서 어설픈 위치를 잡은 사람인지라 여전히 그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 바보가 나의 남편이라 다행이고, 내 아이의 아빠라 다행이라 생각이 든다. 적어도 나는 그가 있기에 세상의 좋은 면을 더 생각하며 살아갈 수가 있으니까. 그리고 내 아이도 그런 아빠 덕에 자신의 온유함을 세워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는 나도 참 바보 같긴 하다.
바보들이 사는 집에 우리 호두가 살고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는 밤이다. 적어도 호두는 바보로 사는 게 부끄럽지만은 않은 것임을, 차가운 세상에서 스스로 따뜻함을 만들어가는 삶은 결코 초라하지 않은 것임을 아는 아이로 자랄 테니까.
사랑하는 나의 바보에게 오랜만에 존경과 사랑을 담뿍 보내본다. 그래도 당신이 있어 나는 좀 더 나은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