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플 땐 울지 않아

by 빗소리

우리 가족은 눈물이 많은 편이다. 30여 년 전 이산가족상봉 프로그램이 티비에서 연이어 나올 때 아빠는 통곡의 날들을 보냈다고 한다. 군 복무 중이던 동생은 내가 결혼할 때 군복을 입고 끄트머리에서 통곡을 하고 있어서 사람들이 나와 사연 있는 남자인 줄 알았다 한다. 남자 둘이 그러한데 엄마는 더 말을 해서 무엇하리.


어느 가족이나 돌연변이는 있는 법. 나는 가족 중 차갑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말투도 부드러운 편이고, 순해 보이는 성격 탓에 사람들이 나를 따뜻한 사람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내 자신과 가족들은 내가 차가운 사람이란 걸 알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것에는 나의 냉정함을 눈치채기가 어렵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들 앞에서 나는 한 없이 차가워진다. 감정에 휘둘려 두루뭉슬하게 넘어가는 것을 제일 싫어하기에 대부분의 일을 냉정하고 분명하게 처리하길 원한다. 영화나 드라마, 책을 볼 때도 슬픈 장면에서 울지 않는다. 그렇게 가상으로 만들어내는 슬픔에는 이상하게 감정이 동요되지 않아서이다.


그런 내게도 약점은 있었으니....... 나의 약점은 슬픔이 아니라 따뜻함이다. 따뜻함을 느낄 때 나는 무너진다. 그 어떤 슬픔보다 강력한 최루탄이다. 아, 저 따뜻함은 진심이다 싶을 때 나는 한 없이 무너진다.


요즘 내가 무척 사랑하던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은 몇 주째 시청자의 눈물을 자아냈다. 동백이와 서로 진한 우정을 나누었던 향미가 죽었을 때도, 동백이가 용식이랑 가슴 아프게 헤어질 때도, 엄마가 동백이를 버린 이유가 밝혀질 때도 난 울지 않았다. 그냥 담담히 드라마를 봤다.


이제껏 20회 분량 동안 차분하게 드라마를 보던 내가 눈물을 쏟은 장면은 다름 아닌 동백이와 용식이 엄마의 대화 장면이었다. 미혼모에 술집 사장, 구구절절 사연 많고 팔자 사나워 보이는 인생을 산 동백이를 이제껏 거부하다가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며 동백이를 바로 알게 되고, 이제 마음에 품으려 하는 용식이 엄마.


‘니가 그래도 나에게 온다면 내가 너를 귀하게 받을게.’


그 대사 하나에 내 눈물샘이 터졌다. 그 따뜻한 마음, 남을 존귀히 여기는 마음이 예뻐서 자꾸 눈이 아렸다. 고두심씨가 워낙 연기력이 독보적이어서인지 진심 어리게 들리는 그 대사가 가슴을 마구 후벼 팠다.


생각해보면 나는 늘 그랬다. 나를 괴롭히는 상사, 무서운 상사 밑에서도 나는 울지 않았고, 벼랑 끝에 몰리면 바락바락 대들며 발톱을 세웠다. 나를 힘들게 하는 이 앞에서는 이상하게 더 독해졌다.


그런 나를 눈물 바람 쏟게 만드는 상사는 마음이 따뜻한 상사였다. 마음이 착해서 항상 나를 안쓰러운 눈으로 봐주던 상사. 자신의 무능함 때문에 내가 더 어려워졌다며 안타까워하는 상사가 발령이 날 때 나는 회식 자리에서 엉엉 울었다.


급작스런 아빠의 죽음 이후 장례식날. 모든 가족이 거의 넋을 놓고 있어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생각에 거의 울지 않았다. 오열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누군가는 이성적으로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아빠의 유품 정리를 위해 회사 서랍을 청소하던 아빠의 동료가 서랍 안에 들어있던 내 편지를 가득 발견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아빠에게 보물이었다.


울어라 울어라 할 때는 나오는 눈물도 쏙 들어가는 심보를 가졌지만, 수고했다고 잡아주는 손에는 속절없이 팔푼이가 되는 게 나다. 어설픈 냉정함의 소유자인 것이다.


올해 가을 나를 따뜻한 눈물로 덥혀 주었던 고마운 드라마가 오늘 끝났다. 내 인생 드라마로 바로 등극했다. 조금 내용이 부족해도 따뜻함을 품은 드라마를 좋아하는데, 이 드라마는 내용까지 완벽했다. 바로 전 인생 드라마로 ‘나의 아저씨’가 있다. 나에게는 비슷한 맥락으로 느껴지는 드라마이다.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


나는 언제 또 울게 될까? 내가 우는 날은 분명 내게 행복한 날일 거라 생각한다. 그날은 내 주변에 사람 냄새가 진동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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