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랫동안 제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있던 이야기를 털어놓으려 합니다. 저의 힘든 상황을 애써 은유적인 표현으로 숨겨 왔는데, 이제는 그렇게 할 이유와 힘이 남아 있는 것 같지 않아 담담하게 저의 상황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 글은 제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쓰는 글이 아닙니다. 가슴이 콱 막혀 잠이 오지 않는 밤, 저의 이야기를 가족과 친구가 아닌 저를 모르는 누군가에게 털어놓기 위함입니다. 제가 전한 일부분의 슬픔에도 힘들어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제 마음에 담긴 모든 슬픔과 고통을 전하는 건 서로에게 너무나 아픈 일이기 때문입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제 글을 사랑해주시는 다정한 누군가에게 저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분이라면 저의 슬픔에 흔들리기보다는 저처럼 담담하게 이 이야기를 들어주실 거라 믿기 때문입니다.
혹여라도 이 글을 우연히 보게 되는 친구가 있다면 부디 저에게도 남에게도 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위로를 받는 것 또한 힘이 필요한 일임을 이번 일을 겪으며 깨달았습니다. 저는 아직은 위로받을 힘이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의 슬픔이 그저 대화 주제로 전락하지 않길 소망합니다. 슬픔도 자기 자신에게는 귀한 것입니다. 그 귀한 것을 제가 혼자 애도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함을 이해해주세요.
저는 임신하기 힘든 몸을 가졌습니다. 20대 후반 난소 수술로 인하여 가임력이 급격히 줄었기 때문입니다. 7년의 난임 기간을 겪은 뒤 의학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어렵겠다는 생각에 시험관을 결정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제 몸은 시험관을 하면 할수록 더 상황이 좋지 않아 질 것이고, 사실 지금도 임신이 잘 될지 알 수 없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꼭 아기를 가지고 싶었고, 최고 용량의 호르몬 주사를 스스로의 배에 꽂으며 힘든 시간을 독하게 이겨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인지 의사 선생님 말씀과는 반대로 한 번의 채취, 두 번의 이식 시도 끝에 아기가 찾아왔습니다. 시아버님은 너무나 귀한 손주가 왔다는 소식에 기쁘지만, 이 기적이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아 제 배가 남산만 해질 때에서야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셨다 합니다. 그 정도로 손이 귀한 가정이었고, 그 가정에 보물 같은 딸 호두가 태어났습니다.
건강한 몸으로 태어난 호두는 태어날 때도 우람하게 태어나고, 이제까지 커오면서도 잔병치레도 거의 없이 튼튼하게 자라주었습니다. 힘든 상황에서 태어난 호두가 혹여나 약한 아이가 아닐까 걱정했는데, 잠시도 몸을 가만히 있지 않으며 자신의 생명력을 뿜어내는 호두를 보는 건 육아 생활의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배부른 호두를 보며, 둘째에 대한 희망을 품었습니다. 2년의 휴직 기간 동안 육아로 좀 힘들었어도 집에서 잘 먹고 편안히 쉬었기에 몸도 더 좋아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가족들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저는 결정을 내렸고, 지난 9월 다시 시험관을 시작했습니다.
첫 아이를 키우며 시험관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처음에는 잘 몰랐습니다. 저에게 자꾸만 달라붙고 방해하는 아이를 피해 배 주사를 놓고, 안아 달라는 아이를 안아주지 못하며, 최대한 제 몸을 사리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손이 많이 필요한 나이였고, 저는 아이에게 왠지 죄스러운 마음이었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시험관 과정을 통과하고 채취 날이 다가왔습니다.
채취는 몸에서 뜯어내듯 난자를 꺼내는 것이라 시험관 과정 중 가장 고통스러운 과정입니다. 그 힘든 주사 놓기, 춤추는 호르몬으로 인해 우울해지는 내 감정, 채취의 고통을 지나고 얻은 것은 고작 난자 2개. 최고 용량의 주사를 맞았고, 남들은 10개, 20개 나오는 난자가 고작 2개가 나왔습니다. 너무 절망적이었습니다. 이번 차수에 실패하면 저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습니다. 개수가 많이 나오면 주사와 채취 없이 보관해놓은 수정란으로 이식만 반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난자가 수정에 성공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습니다.
주말을 보내고 제게 들려온 소식은 딱 1개의 난자만 수정에 성공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암담했습니다. 2개, 3개를 넣어도 모두 실패할 수 있는 것이 이식인데, 고작 1개의 수정란이 착상에 성공할 수 있을까? 늦은 밤 소식을 듣고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수정란을 이식한 뒤 10일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거의 포기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마음이 많이 담담했습니다. 피검사를 하였는데, 예상을 뛰어넘고 안정적인 수치로 임신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날은 너무 기뻐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삶에서 임신이 제일 어려운 사람인데, 그 임신이 단 한 번의 기회로 된 것입니다. 이것이 꿈일까 생시일까. 서로 두 아이의 엄마, 아빠가 된 것을 마음껏 축복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일주일 뒤의 2차 피검사도 정상 수치로 잘 통과하고, 아기집을 보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드디어 우리 아기를 눈으로도 볼 수 있단 생각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분위기가 이상했습니다. 초음파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표정에 마음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아기집이 주수에 비해 너무 작다는 것이었습니다. 시험관은 공장처럼 정확하게 딱딱 과정을 겪어 오는 것이기에 크기가 맞지 않다는 것은 무언가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경우는 거의 유산된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믿을 수가 없어 다른 산부인과에 찾아가 한 번 더 초음파를 보았습니다. 그래도 아이가 작은 건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기도 외에는 제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가족에게, 기도하는 친구들에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살면서 가장 기도를 많이 한 시간이었습니다. 가족과 친구들도 기도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계속 격려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기도 끝에 아이는 생명을 조금씩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도, 인터넷을 찾아보아도 대부분 심장이 생기기 전에 죽는다는 아이였는데, 아이의 심장이 건강히 뛰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반짝반짝 예쁘게도 뛰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생사를 1주일에 한 번씩 확인하며 여전히 부정적인 선생님의 이야기와 제게 힘을 주는 사람들의 기도에 마음이 갈팡질팡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비가 올 때는 비를 맞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애써 아이는 건강할 거야 긍정적인 생각만 하기에는 저는 현실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있었고, 아이가 잘못될 것 같다 부정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아이에게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아기가 건강하길 진심으로 바라고 최선을 다해 기도하겠지만, 아이가 위험한 상황이어서 고통스러운 건 인정해야 한다 생각했습니다. 기도하고, 고통을 그대로 느끼며,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제게 분명히 있었던 믿음은 하나님께서 내 아이를 꼭 살려주실 거라는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어떤 선택이든 하나님의 선택은 저의 최선보다 옳으시다는 믿음이 이었습니다. 7년의 침묵 끝에 주신 아이가 얼마나 훌륭한 선물인지 알기에.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베푸실 일이 제 생각을 뛰어넘는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성격 급하고, 내일을 볼 줄 모르는 인간이라 하나님께서 부디 이 아이를 살려 주셔서 좀 더 빠르게 인연을 만나게 해 주시길 소망했습니다. 주님은 옳으시다는 믿음과 그래도 제발 제 청을 들어달라는 소망을 동시에 안으며 기도했습니다.
여전히 힘겨운 마음으로 찾아간 검진에서 시험관 병원 선생님께서는 이대로 아이가 3주만 버텨주면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의 소식을 전해주셨습니다. 힘든 과정을 잘 이겨내 왔고, 왜인지 아이가 잘 클 것 같다고. 이제 시험관 병원을 졸업하고 산부인과로 가라며 의뢰서를 써주셨습니다. 그렇게 아이는 마의 8~9주 기간을 이겨내고 10주로 접어들었습니다. 여전히 반짝이는 심장을 엄마에게 뽐내며.
아이를 다시 볼 날은 다음 주였는데, 사정이 생겨 오늘 검진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열악한 시험관 병원의 초음파 기계로 제대로 형체조차 볼 수 없었던 아이의 생김새와 우렁찬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었습니다. 대기석에 앉아 있는 배부른 산모들을 보며, 불러오는 배처럼 점점 제 마음도 평안이 커질 거라는 기대를 품었습니다.
산부인과 선생님과 하하호호 웃으며 초음파를 보려 침대에 누웠는데, 초음파를 보던 선생님의 얼굴이 굳어졌습니다.
"어쩌죠? 아.... 이걸.. 어떡하지. 아이 심장이 멈추었어요..."
불과 저번 주까지도 반짝반짝 빛나던 심장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자라주던 아이의 모습도 지난주 크기와 그대로였습니다. 아무런 출혈도 반응도 없이 아이는 조용히 제 속에서 죽었던 것입니다. 여전히 저는 입덧 중이었는데.... 제 온몸은 아이의 임신을 알리고 있었는데....
애써 침착하게 이후에 할 일을 선생님과 상담 후 대기석으로 나와 남편과 통화하는데, 터져 나온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소식을 들은 남편은 몇 초간 아무런 말도 못 했고, 도무지 이 소식을 믿을 수 없어했습니다. 오진의 가능성은 없는 거냐며 자꾸만 되물었습니다.
좀 있으면 있을 1차 기형아 검사 전에 태아 보험도 공부해서 잘 들어두고, 이제 몸무게가 꽤 늘어 사이즈가 맞지 않아 임부복 바지도 사야 하고, 곧 12주 안정기에 접어들면 주변에도 알리려 했는데.....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내 몸과 머릿속을 꽉 채웠던 아기가 이제는 없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 힘든 과정 다 이겨오고, 이제 함께 행복할 일만 남았다 생각했는데.
분명히 빛이 저 끝까지 있을 거라 생각하며 긴 터널을 달려왔는데. 알고 보니 제가 뛰어온 그곳이 터널이 아니라 동굴이었다는 것을 발견한 기분이었습니다.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저는 저 까마득한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습니다. 고통스러워서 아픈 발을 절어 가며 온 그 먼 길을 말입니다.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눈물을 펑펑 흘리다가 그렇게 하루가 흘렀습니다. 끊임 없이 하나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하나님, 이 일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언젠가 제가 분명히 알게 될 날이 오겠지만, 그래도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유산의 소식을 전하는 일은 유산 통보를 받는 일보다 더 고통스러웠습니다. 그 단어를 제 입에서 다시 통과 시켜야 했기 때문입니다. 왠지 말하지 않으면 아이가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제가 말해버리는 순간 모든 것이 기정사실이 되는 것만 같아 그저 입을 다물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아기가 여전히 건강하단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에게 거짓말을 할 순 없었습니다. 엄마는 저보다 더 많이 우셨고, 시부모님께서는 힘들지만 우리 그동안 받은 감사를 되돌아보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호두는 여전히 천방지축으로 분위기를 파괴하며 뛰어다녔습니다. 저 대신 울어주어서, 신앙의 조언으로 저를 다독이셔서, 내 기분에 눌리지 않고 분위기를 신나게 만들어주어서. 슬펐지만, 모두에게 참 고마운 하루였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선택은 늘 옳으시다는 것을 여전히 믿습니다. 마음이 힘들어 아무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 최근 계속 재독, 삼독 하며 힘든 시간을 이겨나가게 한 '한 시간 기도' 책에는 이런 문구가 나옵니다. 기도의 가장 큰 응답은 기도의 이루어짐이 아니라 기도가 이루어지든 안 이루어지든 계속 기도하는 힘이라고. 열심히 함께 중보 기도해준 가족과 친구들 덕에 저는 그 응답을 받았습니다. 비록 아이가 유산되었더라도 계속 이 문제를 위해 기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나약한 인간인지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좀 하나님이 원망스럽습니다. 그 마음 또한 그대로 말씀드리고 잘까 합니다. 조금만 더 기도를 빨리 들어주시지 싶은 마음이 아직도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제가 다시 임신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임신을 다시는 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제 나이가 아직은 시도가 가능한 나이일 때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그 끝의 결과가 성공이든 포기이든. 적어도 그래야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아이를 주실지 모르겠지만, 어떤 결과를 주셔도 훗날 저는 분명 하나님께서 주신 결과가 저에게는 최선이었음을 분명히 고백할 것입니다. 제 인생 내내 그랬던 것처럼.
유산 후 몸을 회복하고, 다시 시험관의 처음 부분으로 돌아가서 시작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흐르고, 얼마나 많은 마음고생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제 앞에 동굴 같이 보이는 저 시커먼 벽을 깨고, 제가 조금 더 긴 터널 안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며 기도로 이겨내는 일입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저는 아직 많이 슬퍼하고, 많이 힘들어하며 그 시기를 올곧이 지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God is always right.
하나님이 제 삶을 통해 이루어오신 많은 기적이 앞으로도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그것이 세상이 보기에는 초라한 실패 같아 보여도 그것을 통해 제 마음에 채워진 풍성한 사랑과 은혜는 하나님이 여전히 옳으시다는 증거입니다.
시험관 내내 저에게 선물해주셨던 노래이고, 오늘 유산 소식을 듣고 집까지 운전하고 올 때 다시금 라디오에서 우연히 듣게 하시며 저를 위로해주셨던 노래. 제 신앙의 고백과 같은 이 노래를 끝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긴 글을 읽어주신 이 밤의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믿음 (by 커피소년)
멈춰있지만 가고 있는 것
끝난 것 같지만 다시 시작인 것
두려움 있지만 나아가는 것
떨리는 마음 다독이는 것
작아질 때 어깨를 펴는 것
초라할 때 하늘을 보는 것
수많은 실수에도 굳건해질 거라는 것
조금 더 자라났다는 것
언젠간 꼭 빛날 거라는 것
아니 지금도 빛나고 있다는 것
포기하지 않고 걸어갈 때
어느 날 자연스레 나를 찾아오는 것
불완전하지만 반듯해지는 것
어그러진 맘 다시 붙잡는 것
아픔 있지만 견뎌보는 것
나아질 거라 되뇌는 것
작아질 때 어깨를 펴는 것
초라할 때 하늘을 보는 것
수많은 실수에도 굳건해질 거라는 것
조금 더 자라났다는 것
언젠간 꼭 빛날 거라는 것
아니 지금도 빛나고 있다는 것
포기하지 않고 걸어갈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설 때
어느 날 어느 날 어느 날 자연스레 나를 찾아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