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반복해서 드는 생각은 몸의 시간을 마음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유산 통보를 받고 뱃속의 아이가 이제 심장이 뛰지 않는다는 사실을 채 받아들이기도 전에 수술 일정이 잡히고, 수술이 진행되었다. 마취 후 눈을 뜨니 내가 호두를 제왕절개로 낳고 회복을 위해 누워 있던 그 병실에서 다른 의미의 회복을 위해 또다시 누워 있었다. 같은 이유로 입원한 옆의 여자가 남편과 도란도란 위로를 주고받고 있었고, 그 소리를 커튼 밖으로 듣는 우리 부부는 어색한 침묵을 지켰다. 힘들 때는 말이 없어지는 것이 닮은 우리 부부에게는 그것이 서로에게 위로를 전하는 이상한 방식이었다. 조금 뒤 나보다 더 회색빛의 엄마가 찾아왔고, 퇴원 후 함께 밥을 먹었다. 엄마께서 사준 밥이 무슨 맛인지도 모른 채 입에 욱여넣었지만, 그 위로의 마음은 좋은 맛이었다. 집에 왔고, 이틀 동안 뜬 눈으로 지새운 빚을 갚듯 맹렬히 잠을 잤다. 그렇게 하루가 급히 흘러갔다. 그렇게 몸이 이런저런 일을 급하게 받아들였고, 마음은 뜬 눈으로 그걸 지켜보았다.
오늘 눈을 뜨면서 든 생각은 이제 내 아이가 뱃속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일어나자마자 시작되는 입덧으로 아이가 아직 건강하단 생각으로 시작하던 아침인데, 왠지 모를 공허함이 찾아왔다. 눈물이 울컥 나왔다. 더 슬픈 것은 아직도 입덧이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힘들어도 아이를 생각하며 즐겁게 견뎌 나가던 입덧이 이렇게 성가시고 힘든 것이란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나의 소식을 듣고 친구가 조언해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충분히 슬퍼하라고. 그게 오히려 슬픔을 털어버리는 데에 좋았다고. 마음의 평온을 지켜야 한다는 압박에 늘 슬픔과 우울을 성급하게 몰아내던 내 성격인데, 그 조언을 들으니 왠지 이번에는 좀 더 스스로의 감정을 소중하게 생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픈 감정이 들면 그 감정을 몰아내려 하지도 않고, 깊이 들어가려 하지 않고, 그저 그냥 슬픈 것에 집중했다. 눈물이 나면 눈물을 흘렸고,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 그냥 부정적인 생각도 해보았다.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그렇게 하고 나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했다.
아기와 영아부 예배를 드리는데, 내가 아기일 때부터 듣던 친숙한 찬양이 오늘따라 새롭게 들리고, 은혜로웠다.
"찬송을 부르세요. 찬송을 부르세요.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찬송을 부르세요."
그 찬송에 힘 입어 오늘 아기를 목욕시키며 찬송을 힘껏 불렀다. 우리 아기는 노래와 춤을 매우 좋아하는 아이인데, 말을 못 하니 노래를 못 불러서 매일 이상한 소리를 내며 불렀다. 그런데 자신이 영아부 예배 때마다 자주 듣던 찬송이어서인지 아기가 조금씩 따라 불렀다.
"............... 에요~................ 에요~......................이다~~~~~................... 에요~~~~"
잘 부르지도 못하면서 아는 구절이 나올 때마다 따라 부르는 녀석이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남편도 귀여웠는지 벌거벗은 녀석과 함께 나오니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고, 셋이서 같이 찬송을 불렀다.
특별히 놀라운 일이 생기진 않았지만, 그렇게 둘이서 또 셋이서 함께 찬송을 부르고 나니 마음이 즐거웠다. 내내 우울했던 내게는 놀라운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설거지를 하면서도 계속 찬송을 불렀다. 그러다 또 아기 생각이 나 눈물이 나면 잠시 울다가 또 찬송을 불렀다.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사천리로 흘러가던 많은 사건을 쫓아가려면 내 마음은 한참의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오래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렇게 느릿느릿 아이와의 이별을 천천히 슬퍼하려 한다. 아이가 하늘에서 하나님의 품에서 평안히 있길 바라며 기도하고, 이제는 아이와 함께 할 수 없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그렇게 천천히 일상의 슬픔을 곱씹어 가며, 마음이 체하지 않길 바란다.
나의 슬픔을 온전히 슬퍼할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아프다고 회피하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느끼다가 잘 헤어질 수 있길 바란다. 앞으로도 계속 슬픔이 찾아올 텐데, 이번 슬픔이 다음 슬픔을 잘 이겨내는 면역 주사의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슬픔과 함께 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며 이 시간을 보낸다는 건 그 두려움을 잊게 한다. 마음껏 슬퍼하되 기도하고 찬송하며 내일의 소망도 잊지 않길. 그렇게 내일 또다시 찾아 올 일상의 슬픔을 준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