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위로 맞아요?

by 빗소리

타인보다 가까운 가족이 나를 더 아프게 할 때가 많다. 남이야 나를 아프게 하면 안 보고, 연락도 끊어 버리면 끝이지만, 가족은 어찌 되었거나 계속 봐야 하고 계속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족이라고 해서 꼭 성격이 맞을 수도 없다. 전혀 반대의 성격, 혹은 안 맞는 성격의 가족이 있는 것이고,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사실을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누가 툭 건드려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이 우울한 시기에 나를 가장 아프게 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엄마이다. 지금 내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소리를 위로라는 말로 서슴 없이 하기도 하시고, 나에게 행복과 평안을 강요하시기도 한다. 엄마께서 전화를 걸어오면 요 며칠 왠지 전화받기가 싫어 도망가고 싶어 졌다. 내가 걱정되어 점점 전화를 거실 수록 점점 더 도망가고 싶어 지는 것은 왜일까.


"그렇게 기다리던 아기인데, 이렇게 돼서 어떡해. 첫째와 텀이 더 벌어져 버리면 어떡해. 텀이 많이 안 벌어져야 하는 건데."


"네가 잘 먹고 건강해야 또 아기가 들어서지. 무조건 잘 먹어."


"너 생일인데, 호두 아빠가 맛있는 거 사주니? 나가서 꼭 외식하고 즐겁게 보내야 돼."

"자꾸 우울해지면 안 돼. 네가 엄마인데, 네가 힘내야지. 호두는 어떡해. 슬퍼하지 말고 힘내야 돼."


엄마의 말씀이 넘어진 사람에게 너 왜 넘어졌니 넘어지면 안 되지 아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걸로 들리는 건 왜일까. 내가 걱정되어 더 자주, 더 길게 연락하시고, 더 말씀이 많아지시니 더 힘들다. 엄마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너무 걱정되고, 본인이 더 아파서 자꾸만 나를 챙기고 싶으시다는 것도.


내가 엄마 연배의 가족과 친척들과 지내며 느낀 건 엄마 세대는 대체로 위로하는 방법을 잘 모르신다는 것이었다. 전쟁 이후로 가난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던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던 엄마 세대. 부모님께 따뜻한 배려를 받기보다 그저 바빠서 어쩔 수 없는 무관심과 혹독한 훈육으로 자라났기에 넘어져도 빨리 일어나서 뛰어가야 하셨을 것이다. 아파도 아플 새가 없이, 슬퍼도 슬플 새가 없이 지내오신 엄마 세대. 그렇기에 젊은 내가 주저 앉아 슬퍼하는 모습을 보는 것에 익숙하지 않으신 것이겠지. 빨리 훌훌 털고 얼른 달려가길 바라시는 것일 게다.


엄마 세대와 달리 나의 세대는 슬프면 그 슬픔의 감정이 서서히 없어질 때까지 온전히 슬퍼하고, 슬픔의 감정을 충분히 애도하는 것이 슬픔을 건강히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경험상 그것이 맞다고 본다. 그렇기에 성급하게 다음 아기를 위한 생각도, 빨리 슬픔을 털어야 한다는 생각도, 나보다 호두가 먼저라는 생각도 없이 지금의 내 감정을 존중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엄마께 이제 그런 말씀 하지 마시라고 상처드리는 것 또한 쉬이 할 수가 없다. 엄마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엄마이기 때문에 더욱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엄마의 불안과 염려가 서서히 나아지며, 나의 슬픔에 조금씩 집중력이 흐려지시길 바랄 뿐이다. 물론 가끔은 로봇이 되어야 하는 일은 피할 수 없다. 네, 힘낼게요. 그래요, 알겠어요. 정해진 답을 담백하게 말씀드리는 게 넘어진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효도일 것이다.


나도 가족이란 이름으로, 친구란 이름으로 누군가의 영역에 함부로 들어가 그의 마음을 마구 헤집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누군가를 위로할 때는 최대한 이성적으로 말을 아끼며, 그의 마음을 존중하려 애쓰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노력을 하며 나는 가족과 친구들을 위로했을까? 자신이 없다.


위로가 필요한 이에게는 마음을 만져주는 현명한 위로를, 위로라며 나를 아프게 하는 이에게는 그가 나를 아끼는 마음으로 그런 것이란 본질을 최대한 헤아리며 이해를. 그렇게 좀 더 성숙한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이 시기는 내가 아픈 시기이기도 하지만, 성숙된 위로와 나를 아프게 한 위로를 보며 배우는 시기이기도 하다.


내일도 걸려올 엄마의 전화. 엄마의 말씀에 조금은 내가 둔해질 수 있길 기도해본다. 때론 실눈으로 보는 것이 문제의 본질을 더 정확히 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둔해진 마음으로 엄마의 따뜻한 마음을 더 잘 읽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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