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심장이 뛰지 않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이 가끔 떠오를 때면 지금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뱃속 아이의 심장이 멈추었단 걸 안 순간 내 심장도 함께 멎는 것만 같았다. 그 후 두 달의 시간. 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 지나온 걸까?
온 가족이 나의 우울을 염려했다. 이 절망의 시간을 쟤가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슬퍼했다. 나 또한 그랬다. 내가 이 긴 터널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그땐 그랬다. 살려면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의 슬픔을 모두 주님 앞에 토로했다. 기도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내게 위로가 되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삶에서 가장 주님과 친밀하게 지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주님이 말씀하셨다.
"그렇지. 너는 많이 슬프지. 그런데 말이야. 이 친구 좀 기도해줄래? 그리고 이 친구한테는 이 선물도 좀 보내주고.... 이 친구한테는 이런 조언도 좀 해줘 봐."
슬퍼서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에게 우리 하나님께서 왜 그러실까. 나는 나의 필요보다 주님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점점 바빠졌다. 기도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보이지 않던 친구들의 기도 제목이 보이기 시작했고, 나에게 기도 제목을 말해달란 요구도 많이 하게 되었다. 신앙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친구, 가족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신앙도서를 선물하기도 하고, 기도를 더 하고 싶은 친구와는 기도 책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 신앙의 고민, 삶의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들도 점점 많아져서 기도하며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기도 했다.
이상했다. 슬픈 일이 있을 때 일부러 내 감정을 덮고서 열심히 일을 하다 보면 오히려 감정이 더 악화되어 나중에 된통 탈이 났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똑같은 방법을 시키시니 이상했다. 좀 마음껏 슬퍼하고 싶은 사람을 왜 이리 바쁘게 만드시는지. 조용하게 살고 싶은 나의 소망과 달리 하루가 시작되면 마구 마구 쏟아지는 주님의 일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주님의 일은 달랐다. 내 슬픔을 덮기 위해 했던 세상의 일과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었다. 주님의 일은 누군가를 섬기는 일이었다. 한 없이 낮은 자세로 그 사람의 필요를 위해 전심으로 기도하고 애쓰는 일이었다. 나는 이번 일을 통해 '섬김'이 얼마나 한 사람의 마음에 행복을 차오르게 하는지를 잘 알게 되었다. 주님께서 억지로 시키신 일이었지만, 열심히 순종하다 보니 내 마음에 슬픔보다는 행복이 차올랐다. 정작 나의 상황은 바뀌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지난 두 달 동안 나는 많은 이를 섬겼고, 많은 이에게 주의 사랑을 전했다. 그리고 그들 중 상당수가 주님과의 거리가 좁혀졌고, 주님과 좀 더 친밀해졌다. 주님께서 많이 기뻐하시는 걸 느낄 수 있었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주님이 기뻐하시니 나도 행복했다.
예주가 내 뱃속에서 살았던 순간은 고작 10주였다. 예주의 엄마로서 아이의 짧은 삶이 너무나 슬펐지만, 나는 아이로 인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기쁨을 깨달았다. 예주는 스쳐 지나가는 그저 그런 삶이 아니었다. 엄마의 삶에 잊히지 못할 큰 발자국을 남겼다. 그 발자국이 나에게는 신앙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우리가 아는 불행은 정말 불행일까? 아쉽게도 삶은 행복보다 불행이 훨씬 많다. 우린 그 불행을 걸어가야 한다. 그러나 예수님과 동행한다면 그 불행은 결코 불행이 아니다. 예수님과의 긴밀한 교제 속에 얻는 기쁨으로 그 가시밭 위를 우린 담담히 걸어 나갈 수 있다. 그러니 앞으로의 삶이 두렵지 않은 것이다. 불행이야 끊임없이 오겠지만, 예수님 손을 잡은 기쁨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나는 두 달 동안 남들이 볼 때는 불행한 시간을 걸어왔다. 그러나 나는 진심으로 기쁜 시간을 보냈다. 나에게 보내주신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전심으로 기도할 수 있었고, 그들 신앙의 성장을 곁에서 지켜보는 보람도 있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순간을 자주 목격했으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을 느끼는 영광도 누렸다.
절망으로부터 두 달. 나는 평안하고 기쁘다. 나의 슬픔이 춤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찬양한다. 어제 읽었던 책의 문장을 함께 나누고 싶다.
"나는 인생을, 잠깐 단기선교로 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여깁니다."
단기선교와 같은 내 삶의 남은 시간을 주님을 전하는 데에 모두 쓰고 싶다. 나는 앞으로도 크고 작은 많은 사역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두렵거나 피하고 싶지 않다.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나를 쓰시고자 하신다면, 분명 내게 모든 것을 능히 감당할 힘과 용기를 주시리라 믿는다.
어쩌면 삶은 절망을 걷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절망보다 더 큰 하나님의 일을 생각해본다. 절망에 매몰되는 약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절망을 뛰어넘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 오늘 내 맘 속에 가득 찬 찬양의 한 구절을 나누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