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일기] 내 깊은 즐거움

by 빗소리

소명 따르기. '내 깊은 즐거움'과 '세상의 깊은 필요'와 만나는 것.


최근 읽은 켄 시게마츠 목사님의 '예수를 입는 시간'이란 책에서 나온 구절이다. 이 구절을 읽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내 깊은 즐거움이라니! 난 그동안 소명이 무언가 거룩하고 심각한 것이라 생각했고, 즐거움과 연결해본 적은 없다. 나의 즐거움을 쓰시는 하나님이라니.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 일인지.


나의 깊은 즐거움은 무엇일까? 이 글을 읽는 누구든 단박에 생각해낼 수 있겠지만, 사실 나는 내 즐거움을 생각해내기까지 그동안 오랜 세월이 걸렸다. 진정으로 즐거운 일을 찾는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한다. 어렸을 때 많이 탐색하고 경험을 해봐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여러 환경상 어린 시절 그렇게 지내기가 어렵다.


내가 정말 즐거워하는 일을 발견한 것은 2년 전이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한참 지나서이다. 그것도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2년 전 나는 한 온라인 카페에 가입하게 되었고, 카페 회원들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에 글을 쓰게 되었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을 상대로 글을 쓴 적은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예의상 몇몇 회원분이 댓글을 달아주시지 않을까 싶었는데, 예상을 뛰어넘고 많은 분들이 댓글을 달아주셨다. 심지어 내 글에 감동을 받았다는 분도 있어 깜짝 놀랐다. 댓글의 공통적인 내용이 나의 글에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어 좋다는 것이었다. 가끔 SNS에 글을 올리면 친구들이 해주던 이야기였다. 친구들이 그런 이야기를 해주면 나 좋으라고 배려해주는구나 하며 크게 요동치 않았는데, 여러 사람이 동시에 그런 이야기를 해주니 신기했다. 그렇게 나의 온라인 글쓰기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이를 육아하며 느꼈던 감정들을 가감 없이 글에 적었고, 그 글을 참 많은 분들이 봐주셨다. 글 조회수가 평균 500이 넘었었으니, 지금 브런치와 블로그의 조회수를 생각해보면 어마어마한 숫자인 것이다. 글의 내용에 따라 30개, 60개, 100개의 댓글이 달렸고, 내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았다는 사실이 신기해서 몇 번이고 댓글을 읽었다. 처음으로 내가 글쓰기에 재능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싶어 한다는 것 그 자체가 신기하고 놀라웠다. 글 쓰는 것이 점점 재밌어져서 아이 재우고 늦은 새벽까지 글을 쓰다 잠들곤 했다.


글쓰기는 정말 '내 깊은 즐거움'이었다. 물론 글쓰기의 과정도 즐거운 건 아니다. 하나의 글을 쓰기까지 나는 머리를 싸매고 한참을 실랑이하고는 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내 머릿속 생각을 최대한 글자를 이용하여 구현해내는 그 작업을 마치고 나면 성취감에 짜릿해지고는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가던 어느 날. 6개월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문득 마음속에 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너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이 생겼구나. 그런데 그 일은 너만을 위한 일 아닐까?"


점점 나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내 마음에 그로 인한 기쁨이 늘어났고, 나도 모르게 그 기쁨을 꼭 잡고 놓치고 싶지 않아 졌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다. 하나님은 내 글이 얼마나 사랑받는지는 중요치 않다 말씀하셨다. 나의 글이 하나님을 전하고 있는지. 하나님은 내게 그것을 여쭤보고 계셨다.


두려워졌다. 나의 질주는 하나님 없이 뛰는 질주였고, 방향을 알 수 없는 질주였다. 위험한 질주. 멈춰야 한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맛본 기쁨을 어찌 쉬이 놓을 수 있을까. 나는 하나님께 나름의 절충안을 내놓았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에 대한 글을 쓸게요. 그렇게 하나님을 전하면 안 될까요?"


한동안 이 절충안에 스스로 만족하며 지냈다. 나는 약속대로 하나님에 대한 글을 간간히 쓰기 시작했고, 카페 안에서 드러나지 않던 기독교 회원들이 내 글과 소통하며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의 발전을 하기는 어려웠다. 그곳은 기독교인을 위한 카페도 아니었고, 특정 종교에 대한 글을 수시로 올릴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나의 팬은 늘어났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팬은 늘어나지 않았다. 위험한 상황이었다. 나의 교만을 부추기고, 잘못된 만족감에 취할 수 있는 이 상황을 벗어나야 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그동안 카페 활동이 나에게 준 기쁨과 만족감을 놓는다는 것은 어려웠다. 나를 좋아해 주고 아껴주는 분들을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슬퍼지기도 했다.


오랜 기도 끝에 나는 카페를 과감히 탈퇴했다. 내가 진정 즐거워하는 일을 발견하게 해 준 소중한 카페였지만, 이제는 그 둥지를 벗어나 더 큰 소명을 향해 나아갈 때란 판단이 들었다. 홍보도 하지 않고, 구독자를 늘리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은 채 나는 블로그와 브런치에 조용히 글을 쓰게 되었다. 나의 개인적인 공간인 블로그와 브런치에서는 마음껏 하나님을 전할 수 있었고, 예전처럼 수백 명이 보진 않지만 내 글을 통해 한 명이라도 하나님을 만난다면 그것으로도 큰 기쁨이라 생각했다.


'세상의 깊은 필요'. 그냥 필요도 아니고 '깊은 필요'. 이것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깊은 필요는 세상 것으로 채울 수 없는 영적인 필요를 말하는 것 같다. 나는 나의 글이 누군가의 영적 필요를 채워주는 도구가 되길 소망한다. 내가 만난 하나님, 내 매일의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적은 이 글을 통해 누군가가 자신의 삶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길 바란다.


하나님은 우리의 '즐거움'을 통해 일하신다. 그 즐거움은 단순한 세상적 쾌락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이 진정 사모하고 기뻐하는 '일'을 말한다. 즐거움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선하시고 아름다우신가. 우리는 모두 각자 즐거운 일을 하며 본연의 자아로 살아갈 때에 기쁠 것이고, 하나님도 기쁘실 것이다. 내가 나이길 바라시는 하나님. 내가 마음껏 즐거워하길 바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찬양한다.


예전의 글쓰기와 지금의 글쓰기가 다른 점은 달라진 방향에 있다. 예전에는 누군가 내 글을 좋아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면, 지금은 하나님께서 좋아해 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글의 조회수와 반응에 동요되지 않고, 매일 하나님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만 고민할 수 있게 되었다. 참 감사한 일이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자신의 '깊은 즐거움'이 무엇인지, 살아가며 몸과 마음을 다해 바쳐야 할 '소명'이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해보게 만드는 글이면 좋겠다. 그렇게 우리가 각자의 빛을 발하며 살아갈 때 세상은 다채롭게 아름답다는 것, 그것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덧입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믿었으면 한다. 주님은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때 진심으로 기뻐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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