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일기] 기품 넘치는 사람

by 빗소리

오늘 일이 있어 급하게 시내에 나갔다가 생각보다 오래 머무르게 되었다. 주차장에서 차에 타고나니, 생각보다 주차요금이 많이 나오겠단 생각이 퍼뜩 들었다. 가방과 차를 탈탈 털어도 돈이 얼마 없었다. 아기와 은행까지 다시 걸어가야 한다니 너무 막막했다. 주차요원께 사정을 이야기하고, 계좌 이체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차를 뺐다.


"계좌 이체 안됩니다. 돈 나오실 때까지 가방에서 찾으세요."


당장 돈이 없다고 말씀드렸는데도 사정을 봐주지 않으시는 그분의 말에 무척 당황스러웠다. 당황하면 머릿속이 하얘지는 내 성격상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자꾸 몰아치는 그분의 말과 더는 못 기다리겠다는 듯 사정없이 울리는 뒷 차의 크락션에 코너로 몰린 나는 단호히 말했다.


"제가 꼭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그분도 방법이 없으셨다 생각했는지 떨떠름한 표정으로 차단막을 열어주셨다. 차를 운전해서 가장 가까운 현금 인출기를 찾았다. 급하게 돈을 뽑고 다시 그 주차장으로 갔다. 주차요원께 가서 이천 원을 내미는데, 그분이 당황하셨다. 그리고 계좌 이체가 안 되는 이유를 갑자기 횡설수설 설명하셨다.


그때 깨달았다. 실제로 돈을 가지고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흔치 않다는 것을. 내가 어쩔 줄 몰라할 때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분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마치 '너도 또 돈이 없니?'라는 표정이었다. 반복되는 상황으로 사람에 대한 신의를 잃어버린 그 표정을 이제야 제대로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죽음이 두려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것 자체가 창피하게 느껴졌다. 솔직히 말하면 천국이 있다는데, 천국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이번 삶이 끝이면 나는 성경 말씀대로 정말 불쌍한 자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자주 했다. 그래서 기도했다.


'하나님, 제발 천국을 제게 보여주세요. 제가 천국 소망을 품고 남은 삶을 살아가게 해 주세요.'


꾸준히 천국에 대한 소망을 품고 기도했는데, 하나님의 응답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가족과 친구들과 사랑을 나누며 행복해할 때, 선을 행하여 뿌듯한 마음이 들었을 때, 누군가의 선의를 발견하고 감동이 느껴질 때, 하나님은 내게 천국의 조각을 보여주셨다.


"얘야, 천국은 이런 것이야. 그렇지만 내가 너에게 보여준 작은 조각은 극히 일부일 뿐이란다. 천국에서는 네가 본 것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사랑과 행복이 넘쳐난단다."


나는 하나님께서 멋진 환상을 보여주실 거라 예상했는데, 천국을 마음으로 느끼게 해 주셨다. 나는 이 방법이 훨씬 멋지단 생각이 들었다. 역시 하나님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천국은 죽음 이후 가는 곳이지만, 이 땅 위에서도 만들 수 있단다. 네가 나를 위해 선하고 정직하게 살아갈 때, 이 땅의 천국 벽돌이 하나 세워지는 거야."


하나님은 느끼게 해 주시는 것만이 아니라 내게 숙제까지 주셨다. 죽은 뒤 가는 천국을 기대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세상을 좀 더 천국에 가까운 모습으로 만들고 죽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세상의 기본적인 도덕적 수준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진정한 '선'의 수준으로 살아야 한다. 가장 좋은 교과서인 예수님의 삶을 따라 하며 말이다.







믿음이 없으면서 선하고 정직한 사람을 보면 나는 왜인지 불안한 마음이 든다. 더군다나 그 사람이 사회 초년생이고, 심지어 순수하기까지 하면 더 걱정이 된다. 당연히 그의 훌륭함을 인정하고 존경하지만, 언젠가 세상의 풍파에 꺾일지 모른단 생각이 들곤 한다. 우린 나약한 인간이다. 자신의 마음속 양심의 소리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양심의 소리를 따르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남들에게 칭찬받기 위해서 선을 행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찌 되었든 사람으로서 살아갈 때에 자신의 이익을 포기할 수 없기에 우리는 온전히 선을 지켜나가기가 어렵다.


진정한 선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 그 선은 반석 같아서 흔들림이 없다. 선하게 사는 이유가 하나님 때문이라면 그 선함은 결코 꺾이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선함을 든든히 지켜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믿는 자의 선함은 약해 보여도 그 속내는 단단하다.


주차요금을 다시 돌아가서 내고 왔던 건 하나님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바라보고 계셨기에 당연히 그렇게 해야만 했다. 그 당연한 것을 놀라워하는 주차요원의 모습을 보며 슬펐다. 내가 다시 돌아올 거라고 믿는 것, 돌아온 나를 봐도 놀라워하지 않는 것. 이 세상이 천국의 모습을 닮는다면 아마도 이렇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


살면서 수많은 선택이 내 앞에 다가올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제까지의 모든 선택이 오늘 같지는 않았다. 나의 이익을 위해, 아무도 모르니까, 다들 그렇게 하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부끄러운 선택을 한 적이 많다. 어쩌면 나쁜 선택이 더 많았을 수도 있다. 더 이상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말자고 다짐한 뒤부터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선택이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당장 손해 보더라도 그런 선택을 한 뒤에는 마음이 참 편안했다. 작은 선택은 다음의 조금 더 큰 선택을 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어 주었고, 그런 선택이 모이고 모여 나중에는 꽤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선택도 과감히 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옳은 선택을 반복해가며 깨달았다. 크리스천의 기품은 옳은 선택을 통해 흘러나온다는 것을. 자신의 이익보다 더 큰 선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다. 남에게 뽐내려 하는 선택이 아니라 그저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기에 뽐낼 의지조차 없어 보이는 사람의 모습은 빛난다.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왔다. 그중 유독 빛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가진 게 많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게 많은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귀티가 좔좔 흐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자신의 욕심 없이 더 큰 선을 선택하며 살아간다는 것. 세상의 흐름에 흔들리지 않고, 상대방의 불친절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자신의 선함을 세상에 선뜻 내어주는 사람들. 참 근사하다 생각했었고,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만들었다.


그들의 내공은 아마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악하기에 아침이면 새로운 악한 생각의 잡초들이 듬성듬성 올라올 텐데, 그 잡초를 뽑고 뽑는 인내를 감내해야지만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악한 마음과 선하게 살고 싶은 마음의 끊임없는 전쟁을 힘겹게 이겨내야지만 된다. 오늘 그렇게 살 수 있었다 해도 내일을 장담할 수가 없다. 내일은 더 큰 전쟁이 기다릴지도 모른다. 그런 전쟁을 매일 치열하게 하며 살아가야 그런 삶이 가능한 것이다.


기품 있는 크리스천이 되고 싶다. 그렇기에 나 또한 그 전쟁에 출사표를 던져 본다.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역대하 20:15)


사실 전쟁의 승패는 정해져 있다. 하나님은 이미 이기셨다. 그러니 나는 두려워말고 매일의 전쟁에 참전해야 한다. 그 전쟁이 아무리 치열해도 결국 하나님께서 나를 이기게 해 주실 거란 것을 믿고 말이다.


내일은 내게 또 어떤 선택의 순간이 다가올까? 그 선택의 순간은 오늘처럼 힘이 들겠지만, 내일의 내 선택도 이 땅 위의 천국을 이루는 작은 벽돌이 되길 소망한다. 천국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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