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품위

by 빗소리

나는 작은 시골 마을에 살고 있다. 어제 우리 지역은 코로나 19 확진자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한참 들썩였다. 며칠 전 다른 지역의 확진자가 우리 지역의 마트에서 장을 보고 갔다고 한다. 그리고 그 마트의 직원은 이후 발열 증세를 보여 어제 진단 검사를 실시했다. 내가 그 소식을 들은 것은 저녁이었고, 판독 결과가 밤 11시에나 발표된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바이러스가 이제 우리 지역에까지 손을 뻗쳤다는 생각에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계속 기도해오면서도 중간중간 드는 두려움들을 다스리느라 어려웠지만, 이번의 두려움은 크기가 달랐다. 당장 수백 명의 직원이 있는 직장에 다니는 남편이 걱정이었고, 아직은 면역력이 약한 3살 딸이 염려스러웠다. 내가 딸과 함께 격리 생활을 한다 해도 남편은 계속 직장에 다녀야 했고, 바이러스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방법은 없었다.


심란한 몇 시간을 보낸 뒤에 직원의 진단 결과가 최종 음성 판정이 났다는 소식에 안도를 했다. 그러나 이미 전국에 바이러스가 퍼질 대로 퍼진 상황이라 완전히 안심할 수도 없었다. 내일은 예배드리는 날이었다. 남편은 교회에서 예배를 위해 방송 봉사를 하고 있었다. 방송 봉사는 모두가 꺼리는 섬김이고, 대체할 수 있는 사람도 없기에 남편은 꼭 가야만 했다. 무엇보다 이런 순간에도 방송 봉사를 당연히 해야 한다 생각하는 남편의 자세에 은혜받았다. 나는 아이와 집에서 가정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분이고, 우리보다 우리를 더욱 이해하신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거나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내 선택의 문제였고, 하나님께서 그 부분을 존중해주실 거란 믿음도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는 말씀을 기억했다. 어느 곳에 있든지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으로부터 흐트러지지 않아야 했다. 가정에서 안식일을 지키되 평소의 주일보다 더 노력하여 이 날을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19 사태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에 아마도 오랫동안 교회에 나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중심을 잃을 내 신앙이 걱정되었고, 코로나 사태 이후에 교회가 회복 못할 타격을 받는 것은 아닌지도 걱정되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철저히 개인의 신앙 끈을 기도와 말씀, 찬송으로 강력히 붙잡고, 교회를 위해서도 더욱 간절히 기도해야 했다.


믿음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제 1시 이후에 잠들어 피곤했지만, 아침 7시에 일어나 기도했다. 기도하는 중에 아이가 깨서 내가 있는 서재로 달려와 남편이 아이를 다시 데리고 침실로 들어가는 일도 있었다. 남편에게 고마워하며 기도를 이어가는데, 그 사이 남편은 잠들고 아이가 다시 달려왔다. 그렇지만 내게 맡겨진 많은 기도 제목들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결국 아이의 요구에 응해주며 그냥 곁에서 기도를 이어갔다. 물 달라고 하면 물을 주기도 하고, 자기와 놀아 달라 하면 잠시 놀아주기도 하며 힘겹게 기도를 이어갔다. 그래도 생각했던 모든 기도를 1시간 동안 모두 하고, 아이의 마음도 상하지 않게 할 수 있어 감사했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어서인지 좀 더 간절히 기도할 수 있었다.


남편을 보내고, 아이와 가정 예배를 드렸다. 다행히 집에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성경 그림책이 있었다. 아이에게 오늘 가정 예배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기도하며 고르는데, 하나님께서 다윗과 골리앗 그림책에 눈이 가도록 하셨다. 아이와 찬송도 드리고, 기도도 하며,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골리앗처럼 너무 거대해 보이고, 우리는 다윗처럼 아무것도 없이 나약해 보이지만, 만군의 주재이신 하나님이 그 바이러스를 다스리고 계시기에 믿음으로 이겨나가면 된다는 이야기를 아이에게 하게 되었다. 아무런 설교 준비도 없이 나도 모르게 나오는 이야기들이어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데 창이나 칼이 필요치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므로 그분이 너희를 우리 손에 넘겨 주실 것이다! (사무엘상 17:47)


세상의 눈으로 보면 바이러스는 정복할 수 없이 너무나 거대한 위험으로 보이고, 우리는 빈손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뒤에 계시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매일 무너지지만, 다시 하나님께서 매일 세우실 것을 믿는다. 아이에게 고백한 것처럼 그 사실을 믿고, 지금 나의 물맷돌인 기도로 세상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바이러스로 몸이 아픈 사람, 두려움과 불안으로 인해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위해서 전심으로 기도해야 한다. 어느 기도문에서 보았는데, 두려움도 전파되지만, 사랑과 평안도 전파된다고 한다. 기도로 평안해진 내 마음을 자꾸만 주변에 전파시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생각이 된다.


무엇보다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미움이다. 사람대 사람으로 전파되는 것이다 보니 전파자가 된 사람들이 신상 털기를 당하고,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에게 욕을 먹고 미움을 받는 이 상황이 가슴 아프다. 만약 내가 나도 모르게 바이러스에 걸리고, 무증상이었다면? 이런 상상을 많이 해보았는데, 나는 사태가 이리 심각해지기 전 수많은 곳을 방문했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 상황이었다. 아마도 나도 모르게 수많은 사람에게 전파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상상을 하다 보니 그 사람들에 대해 분별없는 미움을 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증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칙을 어긴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그 사람들을 미워하면서 지금의 내 평안을 흔들고 싶진 않았다.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것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 주실 것에 대한 감사를 떠올리며 마음을 지키는 일이었다.


어린 아기가 있어서 더 불안하고, 이 아이와 매일 갇혀 살아야 한다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왔지만, 감사를 생각해보았다. 생각해보니 우리 아이가 아무것도 모르고 해맑게 살아서 나도 웃을 일이 많았다. 엉뚱한 행동을 하고, 생각지도 못한 반응을 할 때 나를 자꾸만 웃게 하는 이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이 어둠의 시간을 밝게 지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예배의 최전방에 있는 남편에 대한 생각도 했다. 남편은 예배가 중지되지 않는 이상 계속 방송 봉사를 섬겨야 하지만, 그렇기에 남편은 더욱 믿음의 뿌리를 이어갈 수 있다. 어두운 시간 속에 하나님을 위해 섬겼던 시간을 하나님은 분명히 기억해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기관지가 약하셔서 나의 큰 걱정이 되고 있는 어머님과 엄마에 대한 감사를 생각해보았다. 그분들의 기관지가 약하지만 그래서 더욱 몸을 조심히 할 것이고, 나도 마스크나 기관지에 좋은 음식을 사드리고, 그분들을 위해 더욱 기도하며 섬길 수 있다.


비록 가정에서만 예배드리는 상황이 아쉽고 속상하지만, 이런 때에 내 개인의 신앙생활에 대해서 더욱 경각심을 가지고 지키려는 의지가 있어 감사하다. 기도 1시간의 생활도 이어가려는 강한 마음을 주시고, 매일 아이와 듣던 찬양 라디오 방송의 소중함도 깨달았다. 유튜브 방송을 통해 매일 아이와 아침 먹으며 듣는 김동호 목사님의 새벽 설교도 감사했다. 그리고 비록 오프라인 공동체로 모일 순 없지만, 내게는 온라인으로도 믿음의 교제가 언제나 가능한 여러 신앙의 온라인 공동체가 있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정말 좋은 시대와 나라에 살고 있었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에도 이렇게 기도, 찬양, 말씀, 교제를 이어갈 수 있으니 말이다. 새삼 내게 주어졌던 많은 환경들에 대해서 감사 기도가 나왔다.


가장 가슴 아픈 건 이로 인해 교회가 받을 타격이다. 교회에 나오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며 점차 교회와 멀어지는 사람도 생길 수 있고, 그로 인해 믿는 자가 점점 줄어들 수도 있다. 교회 분위기가 침체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인간적인 걱정이다. 이럴 때일수록 내게 신앙을 주었던 고마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더욱 무릎으로 기도해야겠단 마음이 들었다. 목사님 마음에 강건함 주시기를, 교회를 나오지 않고 있는 모든 성도가 신앙의 끈을 놓지 않고 이어가길 기도하고 싶다.


바이러스는 분명 두려운 고난이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이 고난 속에 자꾸만 넘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서 이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품위를 보여주어야 한다 생각한다. 인간으로서 당연히 드는 불안들을 끊임없이 주님께 내어 보이고, 그 마음을 치유받으며, 오뚝이처럼 일어나 자꾸만 주변을 위로하고 힘나게 해야 한다. 남을 미워한다고 함께 미워하지 말고, 사랑으로 품으며, 세상의 아픈 이들을 위해서 코로나 사태 종식을 위해서 힘써 기도해야 한다. 혼란할 때일수록 오히려 더 신중하고 차분하게 마음을 먹고, 내 앞에 오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주님께 자꾸만 물어야 한다. 내가 행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것인지.


사실 지금 아이와 둘이 있는 상황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아이와 놀아주기도 하고, 간식을 주며, 울며 떼쓰는 순간에는 달래기도 하면서. 평상시의 나라면 이런 상황에서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평소보다 몇 배의 집중력이 필요한 어려운 상황 속에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나의 친구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싶어서이다.


"너희는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 너희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이사야 40:1)


오늘 하나님께서는 아침 기도 중에 나에게 이 말씀을 주셨다. 전심으로 주변을 위로하고, 함께 독려하며 담대하게 나아가야 한다는 마음을 주셨다. 하나님이란 큰 방패가 있다면 우리는 이 상황 속에서 낙심치 않고 이겨나갈 수 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다만 그 모든 것이 지나간 뒤의 내 모습이 고난 속에서도 그리스도인의 품위를 잃지 않았던 모습인지, 하염없이 흔들리고 흔들렸던 모습인지는 꽤나 중대한 문제이다. 부디 이 시기를 지난 뒤의 내 모습을 스스로 대견해 할 수 있는 시간이길 바란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사랑과 위로를 전하며, 당신을 위해 꼭 기도하겠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신앙 일기] 어떻게든 기도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