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일기] 믿었던 친구의 배신

by 빗소리

며칠 전 친구의 감사 일기를 읽다가 마음이 쓰라렸다. 믿었던 친구의 배신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삶을 살아가며 우리가 겪는 고난의 종류가 다양한데, 그중에서도 유독 마음이 쓰린 것은 '사람으로 인한 상처'이다. 더 고약한 사실은 대부분의 경우 그 배신한 사람을 같은 공간에서 계속 맞닥뜨려야 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등에 칼을 꽂은 그 사람을 매일 보아야 한다니 상상만으로도 내 마음까지 같이 어질어질해졌다. 그러나 그 사람을 미워하는 데에서 그친 하루가 아니라 그 사람을 용서해달라는 기도로까지 이어진 친구의 하루를 보며 느끼는 바가 많았다.


다음 날, 하루 종일 친구의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친구는 나와 다른 성격의 소유자였다. 하나님께서 자꾸만 나에게 이 일로 말을 거셨다.


"너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라면? 나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나는 감사하게도 분별의 은사를 가지고 있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거나 그를 관찰하다 보면 그 사람의 성정이 어느 정도 느껴진다. 이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마음이 깨끗한 사람인지가 눈에 보인다. 정말 믿을 수가 있고, 마음이 깨끗하여 내가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을 곁에 두려 노력하는 편이다. 그렇기에 어쩌면 살면서 배신을 당하는 일도 적었다. 나는 내 마음의 깊은 생각을 남에게 잘 털어놓지 않는 편이고, 털어놓는다고 해도 정말 믿을만한 소수에게만 말하기 때문이다.


친구는 예전에 이런 주제로 나와 이야기를 하다가 내 능력이 부럽다고 말했었다. 자신도 사람을 분별해서 만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된다고 털어놓았다. 비록 친구가 그렇게 자신을 낮추며 이야기했지만, 나는 친구의 모습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 친구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자신이 가진 최선을 것을 남에게 아낌없이 건네주는 성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 모습이 참 아름다워서 나는 친구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연을 이어온 것이다. 친구가 그렇게 말할 때 잠시 나는 내 능력이 자랑스러웠다. 배신을 당할만한 인연을 처음부터 만들지 않는 것. 지혜로운 처세란 생각이 들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나님은 계속 물어보셨다. 예수님이라면? 신약 성경의 말씀을 떠올려 보았다. 세상의 인간관계 기술과 비교하면 예수님의 인간관계 기술은 정말 형편없었다. 예수님은 어찌 그리 별로인 사람들과 어울리시는지 내 마음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결국에는 예수님을 3번이나 배신할 베드로, 예수님을 아예 다른 사람들에게 돈을 주고 팔아버린 유다. 그밖에도 예수님의 제자들 모두가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보인 행동은 처참할 지경이다. 더군다나 예수님과 가장 친했던 사람들은 세상적으로 보면 얼마나 친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인가. 당시 미움을 받았던 세리와 창녀들과 예수님은 자주 함께 어울리셨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다시 떠올려봐도 정말 예수님의 인간관계는 특이했다.


결국 배신할 사람. 예수님의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많았다. 예수님은 당연히 이미 알고 계셨다. 사람의 깊은 속내까지 꿰뚫어 보는 신인데, 어찌 모를 수가 있을까. 하지만 예수님은 상관없으셨다. 자신이 상처 받을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에게 마땅히 사랑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셨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내 마음이 무너졌다.


'상관없으셨다.'


이 문장이 계속 내 마음을 치고, 또 쳤다. 내 안의 견고한 성이 무너질 때까지 반복적으로 사정없이 내리쳤다. 이제까지의 내 인간관계를 돌아보았다. 모든 인간관계에 앞서 내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내 자신이 상처 받지 않는 것'이었다.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인 내 자신이 아파하지 않게 보호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잘못 알고 있었다. 내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분은 하나님이었다. 내 상처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 더 우선순위였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내 상처까지 막아주실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때론 우리를 성숙시킬 재료로 상처를 사용하시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처에 앞서 그것을 충분히 회복할만한 사랑과 강인함을 선물해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더 이상 두려워하면 안 된단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오후에 하나님께서 친구를 위로하는 메시지를 보내라는 마음을 주셨다. 그 말씀에 순종하여 장문의 메시지를 친구에게 보냈다. 난 내가 지혜롭게 산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 앞에서 진짜 지혜로운 사람은 너라고. 비록 지금은 아프지만, 그들의 삶에 사랑의 발자국을 남긴 건 의미가 있었다고. 이번 일을 함께 아파하며, 배신당하더라도 가장 좋을 것을 남들에게 주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친구는 내 메시지를 받고 직장에서 눈물이 쏟아졌다고 답했다. 이번 일로 사람을 가려 사귀어야 하나 잠시 생각했지만, 그냥 나대로 살려한다고 했다. 배신한 그 사람의 어깨를 오히려 두드려주었다는 친구의 말을 들으며, 나는 참 좋은 사람을 친구로 두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뜨듯해졌다.


세상적으로 보면 배신당한 친구는 불쌍한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친구를 배신한 그 사람이 더 불쌍하다 생각한다. 그 사람은 진정한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친구 한 명을 잃었다. 어쩌면 자신의 삶을 구원으로 인도하고 기도해줄 하나님의 사람을 놓친 것이다. 그 사람은 지금 자신이 큰 선물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과연 알고 있을까?


사랑할만한 사람을 마땅히 사랑하는 게 아니라 설사 사랑할만하지 않더라도 내 삶에 찾아온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일. 하나님께서 내게 가장 원하시는 일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라 배웠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한다. 내게 온 모든 이에게 두려움 없는 사랑을 주고 싶다.


"분별의 은사는 네게 준 소중한 능력이지. 하지만 네가 누군가가 배신할만한 사람이란 걸 알면서도 베푸는 사랑은 그렇기에 더 귀한 거야. 너는 그 사랑을 통해 놀라운 내 나라의 비밀을 알게 될 거야. 네게 줄 비밀이 무엇인지 기대하고 살아가렴."


하나님께서는 내게 어려운 숙제를 주시면서도 그에 따른 놀라운 보상이 있을 것이란 사실도 알려주셨다. 그것이 세상이 말하는 복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세상이 보기에는 하찮은 복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내 마음에 일어날 천지개벽을 꿈꾸며 기대한다. 그 천지개벽이 나를 얼마나 행복하고, 내 삶을 바른 길로 이끌지를 이미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하나님, 제가 제게 온 모든 인연을 사랑하게 해 주세요. 끝을 생각하지 않고 두려움 없이 펼쳐가는 사랑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제 사랑을 통해 사람들이 제 안의 하나님을 느끼게 해 주세요. 그 하나님께 나아오는 통로로 저를 사용해주세요.






+

3시에 잠이 깨어 1시간여를 다시 자기 위해 노력하다가 그냥 정신이 맑을 때 기도하는 편이 낫겠다 싶어 기도의 골방으로 왔습니다. 생각보다 속이 메슥 거리고 몸이 힘들었지만,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 기도를 통해 받은 말씀들을 글로 전하니 마음이 참 좋습니다. 어쩌다 보니 강제로 새벽 4시부터 하루가 시작되었는데, 이조차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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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 사태를 지켜보며 괴로운 마음이 많이 들었는데, 최근 제 브런치의 통계를 보니 '코로나 19 기도문'을 검색하여 들어오시는 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19 사태는 슬픈 일이지만, 이를 통해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길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기뻤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모두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합심으로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코로나 19 기도문을 작성하기에는 부족한 사람인지라 제가 받은 CBS 기독교 방송의 기도문을 참고하시라고 올려 봅니다. 이 기도문으로 저도 매일 코로나 19 사태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제 독자분들과 기도문을 검색하고 오시는 분들께서 이 기도문으로 함께 기도해주신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주님, 우리나라 전국이 코로나 19 때문에 심한 두려움에 빠져 있습니다. 그 두려움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들어가고 있습니다.


주님 앞에 무릎 꿇은 이 시간 저보다 더 두려워하고 있을 이들을 위해 먼저 기도합니다.


연로하신 분들을 기억해주십시오.

건강한 젊은이들보다 더 불안할 것입니다.

우리 어르신들에게 용기와 평안을 허락하소서.


어린아이들이 있는 가정을 기억해주십시오.

오늘도 환자들을 직접 만나고 있는 의사와 간호사들을 기억해주십시오.

묵묵히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공무원들을 기억해주십시오.


이들 모두에게

하루하루 달라지는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할 있는 지혜와 건강을 허락해주십시오.

두려움도 전파되지만

사랑과 평안도 전파된다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와 절제와 평안이 사회에 만연한 불안과 혐오와 두려움을 대체하게 하여 주십시오.


한계를 정하지 않고 쓰고 먹는 인간의 탐욕에서 시작된 이번 사태 앞에서 교회가 세상과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게 해 주소서.


그동안 교회가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면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이제부터라도 교회가 해야 할 일과 교회가 하지 않아야 할 일을 깨닫고 실천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오늘 하루 삶이 탐욕과 두려움을 이기는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