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일기] 코로나는 지나가지만 기억은 영원하다

by 빗소리

숫자로 인한 압도. 나는 이번 코로나 사태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숫자가 주는 압도감은 얼마나 큰 것일까. 50명, 100명, 500명 점점 커지는 숫자가 주는 공포는 지켜보는 많은 이들의 일상을 조여 가고 있다. 마스크와 소독용품, 생필품을 사재기하는 이기심을 더욱 부추기고, 확진자의 신상을 온라인 카페 등에서 마구 털어내는 잔인함을 만들기도 한다. 코로나 관련 뉴스 밑의 댓글을 보며, 이 사태에 관해 원망하고 미워해야 할 사람을 찾아 끊임없이 손가락질하는 모습에서 슬픔을 느낀다.


뉴스를 보고 가장 마음 아팠던 것은 이제 정부에서 마스크를 공적으로 통제하고 적정한 가격으로 내놓으려 하자 중고나라에 마스크 매물이 점점 쏟아지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중고나라에 팔아도 될 정도의 마스크의 양을 왜 한 개인이 쥐고 있었던 걸까. 이익을 챙기려 하는 그 이기심 때문에 정작 마스크가 필요한 사람들은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는 것을 그들은 알까. 지역 카페에서도 시골 우체국에 타지 사람들이 마스크를 사려고 몰려 나중에 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빈손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보았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장 두려운 것은 어르신들일 텐데, 이 주소지의 사람들도 아닌 젊은이들이 그들의 몫을 챙겨 간다는 사실이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터지자 그동안 꽁꽁 감춰두었던 사람들의 속내가 비로소 투명하게 보인다. 모두가 좋은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정작 고난 앞에서는 그 사람의 진짜 본전이 드러나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사태 속에서 세입자들을 위해 월세를 받지 않는 건물주, 지역 카페에 소량이어도 꼭 필요한 이들을 위해 자신의 마스크를 나눔 하는 이들도 있다. 나는 지금 이 사태 앞에서 어떤 본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일까.


'풍랑 속에 평안을 전하라'


열린 교회 김남준 목사님의 이번 주 수요일 설교가 내 마음을 유독 흔들었던 것은 왜일까. 너 때문이야, 네가 문제야, 우리나라는 끝났어, 우리나라는 미래가 없어라고 반복적으로 떠드는 인터넷의 수많은 목소리와 달리 모든 원망을 그치고, 내 자신에 대해서 돌아보라는 메시지였기 때문이리라. 세상과 함께 흔들리는 나의 믿음 없음을 돌아보고, 내 주변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위해 나는 과연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라는 그 말씀의 잔상이 오래 남는다. 언젠가는 정말 이 사태에 대해 냉정하게 고찰하고, 책임을 물어야 하는 순간도 오겠지만, 지금 이 순간은 누군가에 대한 책임을 말하기보다 혼란스러운 이 상황에 평안을 전하는 것이 먼저임을 말해주시는 목사님의 이야기 속에서 다시금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다.


목사님께서 예로 드신 성경의 본문은 바울이 재판을 받기 위해 폭풍우를 뚫고 배를 타고 가는 장면을 보여준다. 거센 폭풍우에 이미 소망을 잃은 뱃사람들은 배의 중요한 기구까지 모두 바다에 던지며 죽음을 기다린다. 수감되어 가는 죄인으로서 한쪽 구석에 있던 바울이 사람들 앞에 나가 말을 한다. 안심하라,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는 모든 자의 생명을 구해주신다 약속하셨다. 놀랍게도 죄인 주제에 앞에서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는 바울에게 사람들은 주목했다. 그리고 소망을 얻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이들의 입을 통해 전하는 평안의 힘이 얼마나 권세 있고 놀라운 것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치사율이 독감 수준이라고 한다. 이례적으로 중국에서 사망자가 많았던 것은 중국의 치사율 계산 방법이 다른 나라와 다르고, 의료 체계의 부실도 영향이 크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유독 빠르게 올라가는 확진자의 숫자도 우리나라의 빠른 검사 체계, 신천지 전수 조사에 의한 영향도 크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오히려 나는 이번 일로 인해 우리나라의 저력을 한 번 더 느끼고 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빠르게 검사해나가는 의료 시스템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든 사람이 신천지의 실체와 문제에 대해서 함께 공유하게 된 일 또한 얼마나 다행인지. 나라에 어려운 고난이 닥칠 때마다 불굴의 의지로 힘을 합쳐 이겨냈던 우리나라의 저력이 이번에도 펼쳐지리라 기대한다. 물론 이 일을 위해서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골방 기도가 필요하다.


유기성 목사님은 '한 시간 기도' 책에서 나라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자신의 일처럼 하나님께 매달리며 기도했던 우리나라 믿음의 선배들에 대해 이야기 하셨다. 세계 많은 나라의 기독교인들이 나라의 고난 속에서 모두 그렇게 했던 것은 아니라고. 유독 어려움을 기도로 풀어냈던 우리 선조들의 믿음의 불씨를 이어나갈 후손이 필요하다고. 그 부분을 다시 한번 읽으며, 내가 그 후손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내 기도의 동역자들 또한 그 후손이 되어주길 간절히 바란다.


오히려 이번 사태를 겪으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드리는 예배'에 대해서 그동안 얼마나 감사를 잊고 살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숨 쉬듯 드렸던 그 예배들이 삶에 얼마나 큰 기둥이 되어주었는지를 깨닫는다.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며, 목사님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그 시간이 참 그립다. 전쟁 때도 문을 닫지 않았다는 교회가 바이러스로 인해 문을 닫는 상황을 상상도 못 했었다. 많은 이들을 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내린 교회의 결정을 이해한다. 다만 하나님께서 이 사태를 하루빨리 끝내주시고, 다시금 자유롭게 하나님을 예배드릴 수 있는 시간이 오길 간절히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다.


세상 모든 것은 지나갔다. 코로나도 지나갈 것이다. 다만 사람들의 마음에 남은 코로나의 기억이 상처뿐인 기억이 될지, 그 안에서도 사랑을 전했던 희망의 기억이 될지는 나의 태도에 달려 있다. 매일 집에만 갇혀 지내서 짜증과 답답함이 늘어가는 우리 아이에게 오히려 엄마와 붙어 있어서 행복하고 편안했던 시간으로 기억되도록 노력하기. 주변의 사람들이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나의 말에 힘을 얻고, 나의 배려에 위로를 얻었던 기억을 가질 수 있길. 코로나는 지나가지만 기억은 영원하다. 당신과 내가 기억할 이 시간의 기억들이 부디 따뜻하고 아름답길 소망한다.

매거진의 이전글[신앙 일기] 믿었던 친구의 배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