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일기] just do it

by 빗소리

어느 날 새벽 기도를 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네 마스크를 꼭 필요한 이에게 보내라는 마음을 주셨다. 정작 꼭 필요한 이가 누구인지는 알려주지 않으셨다. 내가 스스로 수수께끼를 풀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기도를 끝내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내 주변에 가장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때 대구에 사는 친구가 떠올랐다. 공황 상태의 대구 속에서 마스크 부족으로 힘들어할 친구가 이제야 생각나다니. 친구에게 마스크를 보내고 싶다고 연락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친구는 대구로 아직 이사 가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나에게 다른 친구가 지금 마스크를 구하려 약국마다 다니며 고생하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다른 친구 또한 코로나 사태가 심각한 지역에 살고 있었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아, 이 친구를 말씀하신 거구나. 하나님이 말씀하신 사람을 찾았다는 생각에 지체 없이 택배를 보냈다. 배려심 많은 친구의 성격상 거절할게 분명해서 그냥 허락도 안 받고 보냈다.


다음 날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상자를 열고 펑펑 울었다고 했다. 약국을 아무리 돌아다녀도 1개도 구할 수 없고, 마스크 없이 직장을 다녀야 하는 상황이 너무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더군다나 친구는 어린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까. 그 마음이 하나님께 닿았고, 하나님은 기도 중 나를 통해 일하신 것이다. 친구가 상자를 열었을 때, 마침 옆에 있던 믿지 않는 남편도 함께 놀라고 감동했다고 한다. 이 시국에 어떻게 이런 걸 보낼 수 있냐고. 남편분이 친구보다 더 애써서 약국을 돌아다녔던 상황이라 택배가 더 반가웠을 것이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깨달음이 왔다. 하나님이 가리키신 사람이 친구가 아니라 친구의 남편이었다는 것을.


세상의 가치관이라면 마스크를 나누면 안 된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전염병 사태 속에서 조금이라도 마스크를 비축해두는 것이 세상의 방법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은 다르다. 저 먼 곳의 우한에서도 도시가 폐쇄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이 방호복을 입고 나가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마스크와 복음을 전한다고 한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놓여도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더 어려운 사람을 먼저 생각해라.’


세상을 거스르는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도구로 내가 쓰였다는 생각에 메시지를 읽으며, 나 또한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뭐라고 하나님은 이런 귀중한 사역에 나를 참여시켜주시는지. 친구의 남편이 당장 전도된 것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하나님의 사랑이 그 마음에 가닿았을 것을 확신한다.


이 글을 쓰기 전 나는 많이 고민했다. 간증이란 것은 때론 자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나는 자랑을 쓰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그 놀라운 일과 사랑을 증거 하고 싶었다. 하나님께서 하라는대로 한게 무슨 자랑일까. 사실 친구보다 일이 이루어지는 과정 속에서 더 많은 은혜를 받은 것은 나이다.


이찬수 목사님께서 최근 코로나 사태 극복을 위한 21일 새벽기도회 영상을 유튜브로 올려주고 계신데, 어제 말씀에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요. 이 사태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시지요. 그런데 무엇으로 실천하고 계십니까? 마음에만 그치지 말고, 정말 하나님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살피십시오.’


그때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했다. 기도를 열심히 하면 되는 일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도 중에 마스크에 대한 마음을 주셨었나 보다.


오늘은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내가 아는 지인 중 간호사인 2명의 얼굴을 보여주셨다. 떠오른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기도가 끝난 뒤 메시지를 보냈다. 귀한 소명 실천해주어 고맙다고, 내가 기도하고 있으니 힘내라고.


세상 사람들처럼 문고리를 온통 걸어 잠그고, 각종 물건을 구입하여 쌓아 두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할 일은 아닐 것이다. 하나님께서 정말 내게 하고자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기도로 묻고, 그 기도를 실천하는 자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일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엄마가 이런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다.


“너 명품을 구별하는 방법이 뭔 줄 아니? 비 오는 날 그 사람이 가방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면 돼. 가방을 우산 삼아 뛰어가면 짝퉁이고, 소중히 품에 보호하고 가면 명품이야.”


내 신앙은 명품일까 짝퉁일까. 진짜 명품 신앙은 위기 속에서 알아볼 수 있다 생각이 든다. 이기적으로 사는 것이 최고의 가치인 지금 이 혼란스러운 사태 속에서 나는 그들에게 어떤 하나님의 가치를 보여주어야 하는 것일까.


6.25 전쟁 속에서도 산속 깊은 마을은 전쟁인 줄 모르고 평화롭게 살았다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전쟁 같은 상황 속에서 마땅히 그 마을 같은 평화를 누려야 한다 생각한다. 그리고 기도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전쟁 속 평화’를 남들에게 끊임없이 나누어야 한다. 내 평화가 메마르지 않도록 더 무릎으로 기도하되, 내가 얻은 평화를 마르지 않는 샘처럼 주변에 퍼주는 사람으로 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이 글을 읽는 독자도 함께 이 시기 속에서 오직 나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소명이 무엇일지를 한 번 진지하게 되묻는 하루를 보낼 수 있길 소망한다. 하나님의 사랑에 참예함을 기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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