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기도를 시작한 지 1달이 지났다. 왕복 40분 거리의 교회 새벽 기도회를 갈 시간이 부족해서 집에서 1시간씩 혼자 기도하기로 다짐하며 실천해왔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불가능했던 내가 이렇게 한 달 동안 기도를 해왔다는 것이 나도 신기하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시간이다. 내 안의 간절함이 새벽에 눈을 뜨게 했고, 기도하지 않으면 그날 하루를 살아낼 자신감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서재로 달려오는 아기는 기도하는 내 모습을 하루 중 가장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그런 모습을 한 달 동안 보다 보니 아기의 마음속에도 점차 기도하는 엄마가 자리 잡았다. 남편이 이야기해준 것인데, 내가 없을 때 아기가 남편이 자는 옆에서 무릎 꿇고 엎드려 중얼중얼하며 기도하는 시늉을 했다고 한다. 요즘 엄마가 하는 모든 것을 다 따라 하는 복사기인 우리 아기가 기도를 따라 한다니 참 기뻤다. 그리고 새벽 기도에 대한 강한 확신이 들었다. 이런 모습을 우리 아기가 꾸준히 지켜보며 큰다면, 이 아이도 기도하는 사람으로 클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신앙생활을 38년 동안 해왔다. 하나님의 은혜로 태어나면서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하였지만, 거저 주어진 이 신앙의 귀함을 알지 못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지난 38년 동안 나는 한 번도 기도의 힘을 알지 못하고 살아온 것 같다. 기도 한다 했지만 스쳐 지나가듯 몇 분 동안 짧게 읊조리듯 하는 기도만 있었을 뿐이다. 그런 기도는 뿌리가 너무 약하여 믿음의 땅에 차마 뿌리 내리지를 못했다. E.M. 바운즈는 짧은 기도는 영혼을 황폐하게 한다는 말을 했다. 나는 그 말의 뜻을 누구보다 잘 안다. 내가 했던 짧은 기도는 기도의 모양새는 있을지 모르나 힘이 하나도 없었다. 많은 목사님은 제대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그 영이 죽은 것과 같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돌아보면 정말 나는 38년 동안 영이 죽어왔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모태 신앙이라 늘 고만고만한 신앙생활을 했을지라도 가끔씩 내게 신앙의 불길이 타올랐던 적이 있다. 열심히 말씀 보고, 교회 봉사를 하고, 믿음의 사람들과 교제하며 뜨겁게 신앙생활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보니 그것은 껍데기만 있는 열심이었고, 그저 몸과 마음이 지치는 열정이었다. 정말 중요한 건 눈에 보이는 열심보다 나의 골방으로 가서 하나님을 조용히 만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런 기도의 힘 없이 열정만 가득한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나는 자주 시험에 들었고, 나의 생활은 정결치 못했다.
나는 요즘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생활을 겪고 있다. 말과 글로는 표현이 안되는데, 정말 처음 겪어보는 감정과 소망들을 품으며 살아가고 있다. 아직 내 기도는 너무나 미약하고, 지금의 날들은 앞으로의 날들에 비해 그저 작은 예고편에 불과한데, 이 예고편이 놀랍다. 하나님께 가는 발걸음을 조금 떼었을 뿐인데, 하나님께서는 내 삶을 통해 말씀하신다.
"네가 발걸음을 옮기면 네가 보게 될 세상은 정말 놀라울 거야. 너는 놀라운 삶을 살게 될 거야."
지금 내 삶의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세상과 내 주변의 사람들을 보는 나의 영적인 눈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끼고, 아무리 고통스럽고 힘든 일을 보게 되더라도 자꾸만 그 뒤에 있는 소망에 시선이 간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앞으로 어떻게 바꾸어나가실지가 너무나 기대가 된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나는 제대로 기도생활을 하기 전인 한 달 전보다 지금 더 좋지 못한 상황에 살고 있다. 집안에 어려운 문제가 여럿 생기고, 나에게도 내가 괴로워할 만한 일이 있다. 처음에는 기도하는데 왜 나는 상황이 더 나빠질까 너무나 낙심이 되어서 기도하고 싶은 마음도 사라지려 했다. 그러나 새벽마다 눈이 떠지고, 그래도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는 강한 마음을 주셨다. 기도하다 보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닌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평안하고, 지금의 이 괴로움 조차 내 영혼이 더욱 단단해지는 담금질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해결해주신단 약속을 주셨기에 나는 그저 기도만 하면 된다는 믿음이 생겼다.
나는 짧은 기도밖에 못했던 사람인지라 막상 내 앞에 주어진 1시간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휴대전화 메모장에 기도문을 작성했다. 나와 내 가족, 친구들의 기도 제목, 나라와 교회를 위한 기도 제목 등을 모두 빠짐없이 적어 내려갔다. 그렇게만 기도해도 20~30분은 걸렸다. 남편과 아이, 부모님을 위해서 산 기도문도 읽었다. 그러나 아직도 시간이 남아있었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얼마 전 기도 책에서 보았던 성경구절을 말하며 기도하는 방법을 실천했다. 좋은 성경 구절이 많이 나온 책을 참고하며, 그 성경 구절을 읽고, 그 성경 구절에 해당하는 기도를 했다. 그렇게 1시간을 채우며 내 무릎과 몸이 한 시간을 버틸 수 있도록 꾸준히 훈련했다.
하나님께서는 몇 주가 지났을 때 나에게 이제 그런 기도에 머물지 말고, 더 깊은 기도를 사모하라는 마음을 주셨다. 그리고 이 말씀을 며칠 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여러 번 반복해서 보내주셨다. 나는 우매한 자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말씀을 잘 눈치 못 채고 사는데, 그런 나를 아시고 하나님은 나에게 꼭 주시고 싶은 말씀은 여러 번 반복해서 주셨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눅 18:10~13)
하나님께서 내게 정말 원하시는 기도는 '회개 기도'였다. 나는 항상 회개를 짧게 드리고, 정말 기도해야 할 여러 기도 제목들로 급하게 들어가고는 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내 기도의 중심에 간절한 회개를 놓으라는 말씀을 주셨다. 그 말씀에 순종하여 회개 기도를 하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선한 것이 하나도 없는 내 악한 본성을 보며 슬펐고, 어떻게 이런 나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 것일까 의아했다. 회개하고, 회개하는 그 시간을 통해 나는 마음의 묵은 때가 씻겨져 나간 듯 후련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회개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 매일매일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매일의 회개를 통해 비로소 그리스도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은총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회개 기도가 끝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내게 기도에 대한 설교를 통해 '성령'을 달라고 강청하라 말씀하셨다. 그 설교를 듣고 나는 많이 놀랐다. 한 달을 열심히 기도해왔지만, 내가 정말 성령의 힘으로 기도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성령의 힘 없이 내 힘으로만 기도하려니 기도가 잘 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를 할 수 없었다. 김남준 목사님은 성령을 보내주실 때까지 정말 끝까지 하나님을 붙들고 강청하라고 했다. 나는 아직 방언을 하지 못한다. 방언을 사모하며 받고 싶었지만, 기도해도 잘 되지 않아 구하는 것조차 포기해왔다. 그러나 내 안에 성령에 대한 간절함이 생기자 성령과 방언에 대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성령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성령을 받게 되면 내 마음에 기쁨이 넘쳐 난다는데, 대체 그런 기분이 어떤 것인지가 참 궁금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든다. 그리고 성령으로 기도할 날을 꿈꿀 수 있어 감사하다. 하나님께서 내게 성령을 보내주실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고 싶다.
사려 깊으신 하나님은 회개와 성령 간구에 대한 기도를 다하고도 나와 가족, 친구들을 위한 기도를 할 충분한 시간도 주셨다. 그 모든 기도를 다 할 수 있도록 힘과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했다. 대부분의 기도가 많은 시간들이 필요한 기도제목들인지라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최근에 이루어진 작은 기도 2가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첫 번째 기도 제목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많은 곳이 있는데, 기부를 하고 싶지만 어느 곳에 기부를 해야 할지 분별이 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나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고 알려주시는 곳에 기부를 하고 싶었다. 몇 주 전부터 계속 떠오르는 곳이 있었지만, 그곳에 직접 기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세밀한 방법이 필요했다. 그러나 내 마음의 악함으로 귀찮은 마음이 들어서 슬며시 포기했다. 그곳을 잊어버린 채로 계속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어제 정확히 그곳을 다시 한번 짚으시고, 내게 어떻게 기부해야 할지 세세한 방법을 사람의 입술과 설교를 통해 여러 번 알려주셨다. 정말 세밀하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한 순간이었다.
두 번째 기도 제목은 소소하고 아이 같은 기도 제목이라 좀 부끄러운 이야기이다. 우리 가족은 미적 감각이 모두 뛰어난 편이다. 그러나 유일하게 나만 그 미적 감각을 물려받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나의 패션에 대해 엄마에게 자주 지적을 당한다. 오랫동안 그런 지적을 받으려니 내게 옷 코디는 스트레스가 되었다. 14년 전에 한 옷 쇼핑몰을 만났는데, 그곳의 옷이 내 체형과 취향에 잘 맞아서 감사하게 잘 이용해왔다. 그런데 작년에 그곳이 문을 닫게 되면서 나는 의지할 친구를 잃은 것 마냥 황망한 마음이 들었다. 그 이후 어찌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너무 소소하고 유치한 일이지만, 나름대로 나에게는 꽤 스트레스인 일이었기에 하나님께 기도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은 나의 기도 제목을 따뜻하게 들어주시고, 이런 말씀을 주셨다.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 (눅 12:27)
들에 있는 백합화도 솔로몬의 영광보다 더 훌륭하게 입히는데, 내가 널 못 입히겠니? 무엇을 입을까 고민하지 말아라. 나를 따뜻하게 위로해주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감사하던지. 꾸준히 기도해오던 중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친구들이 나에게 옷을 살 곳을 알려주었다. 내 고민을 이야기한 적도 없는데 말이다. 친구는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나에게 해준 이야기인데, 그게 내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모른다. 하나님께서 그 친구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나를 도와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일을 통해 나의 유치한 고민거리에도 정성을 다해 위로하시고 보듬어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느꼈다.
정작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가장 큰 기도 제목은 이루어진 것이 하나도 없다. 오히려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는 것들이 더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게 말씀하신다. 정말 중요한 일들은 많은 기도의 분량이 필요하고, 그 기도의 시간을 통해 그 일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변화시키시고 싶으시다고. 문제의 해결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와 사람들의 마음이 변화되는 것이 하나님께는 더 중요한 일이라고.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마음을 주셨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9)
하나님은 낙심하지 않으면 반드시 거둔다는 말씀을 내 마음에 넘치게 부어주셨다. 너의 모든 심정을 물 같이 쏟으라는 예레미야의 말씀도 주셨다. 포기하지 않고 기도로 나아가고 싶다. 단순히 문제 해결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일 뒤에서 애쓰시는 주님의 모든 목적이 이루어지길 바라면서.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깊은 기도 속에 함께 하나님을 만나자고. 고작 한 달 밖에 기도해오지 않고 내가 이런 말 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분명하게 말하고 싶은 것은 한 달 동안 나의 생각을 바꾸어오신 하나님의 역사가 참 놀랍다는 것이다. 짧은 기도가 아닌 긴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다 보면 분명히 당신의 생각도 놀랍게 바뀌어질 것이라 확신한다. 나는 무익한 사람인지라 기도하다가 낙심하여 기도를 떠나는 때도 올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안심하는 것은 지금의 이 기도의 시간들이 내 영혼에 정말 좋은 경험들로 각인되었고, 비록 떠나더라도 이 시간을 다시금 사모하며 돌아오리라는 것이다. 우리 함께 기도하자고, 더 깊이, 더 오래 기도하며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자고 고백하고 싶다. 당신에게는 기도의 성공 경험이 필요하다. 그 기도의 성공 경험이 어두운 날에 당신을 다시 기도로 이끌어 올 힘이 되어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을 위해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