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무언가를 해내어 성취감을 얻는 것에 대한 만족감이 크다. 쉽든 어렵든 내 앞에 주어진 일에는 열정을 다해서 임했고, 그로 인해 성장이란 결실을 맺어 왔다. 그런 내가 일을 내려놓고 휴직을 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아이의 온전한 성장은 일보다 더 우선순위의 일이었다. 힘들었지만, 과감히 내려놓고 육아에만 전념했다.
2년이 흘렀다. 아이의 어린이집 입소를 앞두고, 나는 복직을 계획해왔다. 당연히 복직을 해서 다시금 일하고 싶었다. 휴직하기 전까지 차곡차곡 쌓아가던 나의 커리어를 다시금 회복시키고 싶었고, 일을 하며 성장하는 내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런 나에게 하나님은 다시금 휴직을 해야 한다는 마음을 주셨다. 집안의 경제사정은 좋지 않았다. 가족은 1명 늘어났으나, 돈을 버는 것은 남편뿐이었고, 우리는 갚아야 할 집값이 있었다. 재정이 점점 마이너스로 향해가고 있는 지점에서 휴직을 또 결정해야 한다니.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휴직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다시 둘째를 위해 시험관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외동으로 자녀 계획을 확정하고, 남편과 둘 다 맞벌이를 시작하면, 우리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더 편해질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게는 꼭 둘째를 낳아야 한다는 마음이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그 마음이 너무나 단단했기에 더 이상 고민할 수 없었다. 다시금 직장에 휴직서를 제출했다.
세 번째 휴직을 결정하며, 나는 내 휴직의 의미를 되돌아봤다. 하나님은 이 휴직의 시간 동안 내가 무엇을 얻길 바라셨을까? 그리고 무엇을 앞으로 얻어가길 바라시는 걸까? 이 시간의 무게가 이 길 끝의 내 모습에 어떤 무늬를 남길까?
아이를 돌보는 시간은 초보 엄마의 온몸과 정신의 집중력을 발휘해도 모자란 시간이었다. 그러나 아기 덕분에 나는 집이란 안정적인 공간에서 꾸준히 생활할 수 있었다. 장소가 바뀌고, 만나야 할 사람이 많아지면 내 집중력이 흐트러질 텐데, 매일 한 공간에서 아기와 조용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좀 더 차분하게 나의 삶과 신앙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성경 읽기와 깊이 기도하기를 꾸준히 실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나의 생각들을 글로 적어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동역자들과 신앙에 대한 생각을 나눌 수도 있었다. 이런 것들은 내 신앙을 더욱 건강하게 만들어주었고, 점점 신앙의 뿌리가 견고해지도록 했다.
3번째 휴직을 시작한 시점에 나는 친한 친구에게 성경 공부의 즐거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교회에서 하는 성경 공부반에 들어간 친구는 요즘따라 말씀 읽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르겠다며 그곳에서 들은 이야기를 나에게 자주 해주었다. 나 또한 그저 성경을 읽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경 속에 담긴 그 시대의 환경과 지리, 문화 속에서 성경을 이해하고 있는 친구의 성경 공부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그러다 며칠 전 이찬수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흥미를 넘어 깊은 반성을 했다.
"언제까지 목회자가 잘게 부수어서 꼭꼭 씹어서 부드럽게 만들어 먹여주는 말씀에 의지할 것입니까. 이제 단단한 음식도 먹을 줄 알아야지요. 마가복음으로 읽기로 했으면 마가복음에 대한 주석 책을 읽어서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성경 통독과 매일 성경 읽기는 꾸준히 해오고 있기에 나는 말씀을 늘 읽고 있어라는 안온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찬수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로서 내 좁은 시야 속에 성경이란 거대한 세계가 갇혀 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은 성경이 쓰인 시대의 모습을 자세히 알고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 책이었다. 그런 책을 소설책 읽듯 쭉쭉 읽어 내려가며 넘어갔다. 반성이 되었다. 나는 그동안 주석 책은 당연히 목회자들만 있는 것이란 생각을 했었던 것이다. 성도들의 성경 읽기가 더 깊어지길 바라는 이찬수 목사님의 열정적인 설교를 들으며, 주석과 친해져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성서연구 책에는 성경 전체의 숲을 가늠하는 성경 개관서가 있고, 성경의 나무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살펴보는 주석이 있다. 그런데 그 주석이라는 것도 종합적으로 모든 성경 주석을 다루는 주석이 있고, 각 성경책마다 하나씩 나오는 주석도 있다. 쉽게 말하면 창세기~요한계시록까지의 모든 주석이 하나의 책에 들어간 주석이 있고, 창세기이면 창세기만 다루는 주석이 있다. 전자는 모든 책의 주석을 다룬다는 장점은 있지만, 그만큼 모든 것을 다루다 보니 그리 세밀하지 않다. 후자는 한 권의 책을 세세하게 다루지만, 성경의 각 권마다 사기에는 액수가 커진다. 한참 고민을 하다가 종합적인 주석 책을 사기로 했다. 그리고 후에 더 공부해보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만 다룬 책을 따로 구입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주석을 구입한 뒤 내가 그날 읽은 성경 구절의 부분을 주석에서 찾아봤다. 여러 번 읽어서 익숙한 성경 구절인데, 내가 이 구절을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의 사회상과 문화 속에서 성경을 읽으니,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왜 지금이었을까. 왜 나는 3번째 휴직을 시작하는 이 시점에 성경 공부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까. 참 그 시점이 오묘했다. 하나님은 지난 2년 동안 아기를 낳기 전 무너진 성벽 같이 처참한 상황이었던 내 신앙을 다시금 회복하길 원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 아래 조금씩 회복할 수 있었다. 이제 어느 정도 회복을 했다 하는 시점에 하나님은 나에게 '성장'을 원하셨다. '성장'은 말씀을 통한 가르침과 성령이 이끄는 기도로만 가능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더욱더 내가 성경을 깊이 이해하길 바라셨다.
휴직이라고 하지만 이번 1년 동안 나는 꾸준히 시험관을 해야 하기에 사실상 바쁘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병원에 자주 다녀야 하고, 주사와 시술을 받아야 하기에 육체적으로 힘들 것이다. 시험관을 할 때마다 받아온 정신적 압박도 견뎌야 한다. 무언가를 배우러 다닌다거나 사람을 만나며 여유 있게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성경 읽을 시간은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아기를 기다리며 인내해야 하는 그 시간 동안 나는 조용히 성경을 공부하며, 내 안에 육적인 생명의 잉태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생명이 다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단 생각이 든다. 하나님은 그런 과업을 이루시기 위해 나에게 지금 성경 공부라는 숙제를 내리신 것일 테니까.
오늘 아침 우연히도 나는 이런 내 최근 관심사와 딱 맞는 어떤 친구의 고민을 알게 되었다. 성경 통독을 하는 중에 이제 레위기 차례인데, 힘들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 친구를 위해 그동안 내가 알아온 주석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어쩌면 하나님은 항상 이렇게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들을 붙여 주시는 걸까. 하나님은 성경 안에서도 늘 여럿이서 함께 일을 도모하게 만드셨다. 전지전능한 예수님도 열두 제자와 꼭 함께 일하셨다. 영적 거장 바울도 항상 동역자들과 함께 사역을 했다. 내가 성경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순간 하나님은 함께 성경을 공부하며 독려할 여러 친구를 붙여 주셨다. 놀라운 타이밍이 아닐 수 없다.
말씀 공부를 하며 마음이 막 벅차오르는 자신을 느낀다. 말씀 안에서 매일 뜨겁게 나에게 말씀하실 하나님의 음성이 기대가 되고, 그런 음성이 변화시킬 내 모습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그런 나에게 하나님은 바로 답을 주셨다. 오늘 읽은 주석에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베드로와 게바 둘 다 '바위'를 의미한다. 이는 예수님이 시몬에게서 이끌어내려 하는 것이 반석 같은 성격임을 암시한다. - IVP성경주석 중에서
예수님은 시몬에게 바위를 뜻하는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지어 주셨다. 이름은 그 이름을 지은 사람이 이름을 받는 사람에게 원하는 것을 담는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반석이 되길 바라셨고, 그 단단한 바위 위에 예수님의 교회가 세워질 것이라 예언하셨다. 예수님은 다혈질의 시몬의 성격에서 반석 같은 성격을 이끌어 내고 싶으셨던 것이다.
베드로는 여러 면에서 나와 닮은 사람이다. 나는 다혈질에다가 성격이 급한 사람이다. 그러나 내성적인 면이 많아서 공적인 모습의 대부분은 조용하고 침착해 보인다. 나를 공적으로 만난 사람 대부분은 나의 속성격을 잘 알지 못한다. 나는 내 스스로를 잘 알고 있기에 이것이 늘 하나님을 위해 일할 때 장애물이 된다는 사실에 대해 걱정해왔다. 실제로도 여러 번 나의 성격 때문에 벌어지는 아픈 일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은 나에게 조용히 말을 거신다.
"나의 안에 거하렴. 네가 나의 안에 거할 때 너는 더욱 온전하여지고, 지금 너의 흠 많은 모습들이 거듭나면 너는 단단한 바위가 될 거야. 단단한 바위가 되어 그 단단함으로 주변에 복음을 전하게 될 거야."
베드로는 정말 예수님의 예언대로 초대교회의 든든한 리더가 되었고, 타협 없는 신앙을 통해 복음을 전해갔다. 그리고 결국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리며 죽었다. 다혈질에다가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한 거짓말쟁이였던 시몬이 말이다. 베드로의 인간적으로 부족한 모습을 보면 내 안에서도 소망이 생긴다. 이렇게 부족하고 선한 것 없는 내 모습도 하나님께서 언젠가 써주시지 않을까.
"바위가 되어라."
아멘, 하나님. 하나님께서 기쁘게 쓰실 바위가 되기 위해 나의 모든 시간과 삶을 주님께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