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니하실지라도 (단 3:18)"
4차 시험관을 시작했고, 오늘 채취를 마쳤다. 4번이나 반복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쉽지 않다는 걸 느꼈다.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이번 4회 차를 시작하는 내 기도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동안은 지나친 낙관과 긍정으로 현실을 마취하다가 실패를 맞닥뜨렸을 때 무너지고는 하였다. 부끄럽지만 '무조건 들어주세요!' 라며 마치 하나님께 빚 독촉을 하던 어린아이 같은 기도로 시험관에 임해왔다. 3차 시험관의 실패 이후로 내게는 은혜의 회복을 경험하는 일이 있었고, 그래서인지 이번 차수의 기도 제목은 달랐다.
"성공이든 실패이든 주 예수와 계속 동행하길 원합니다."
그렇게 매일 새벽마다 간절히 기도하던 나에게 하나님께서 채취를 앞두고 며칠 전 다니엘서의 말씀을 주셨다. 그렇게 아니하실지라도. 왠지 좋지 못한 상황이 올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순종하며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네, 하나님. 그렇게 아니하실지라도 순종하길 원합니다. 주님의 때를 믿길 원합니다."
두려운 마음에서였을까. 채취를 하러 가는 오늘 새벽, 차 안에서 남편에게 물었다.
"오빠, 만약 난자가 1개밖에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오빠는 어떤 마음이 들겠어?"
우리 부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수많은 과배란 주사약 투입에도 불구하고, 마치 과배란 약을 안 맞은 것처럼 1개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1개가 나온 상태에서 수정조차 되지 않아 이식의 기회를 잃는 것이었다. 나는 그 상황을 생각하며 남편에게 물은 것이다.
"네가 안쓰럽겠지..."
나를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남편의 말을 들으며 감사했다. 나는 몸의 감각이 예민하여 통증을 느끼는 정도도 남보다 크다. 그래도 주사는 의지로 잘 버텨나가며 씩씩하게 맞고 있었다. 하지만 난자 채취는 시험관 과정 중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라 무서워서 떨고 있었다. 주사와 채취의 고통을 지켜봐 왔기에 남편은 그런 나를 안쓰러워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실패이면 또 나의 고통을 그저 바라봐야만 한다는 것이 남편에게는 가장 큰 고통이었다.
채취는 시작되었고, 아무리 기도하며 마음을 다잡아도 몸의 고통은 극심했다. 마취를 해도 여전히 고통이 있어서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러나 그 고통의 몇 분을 지나 간호사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나를 좌절케 했다.
"난자 1개 나왔습니다."
회복실 침대에서 몸을 떨며 누워 있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다. 힘들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은 기도도 나오지 않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결과를 듣는 남편의 얼굴에도 낭패감이 비쳤다. 그래도 남편은 애써 말했다.
"그 난자가 수정에 잘 성공해야겠네."
"그런 말 하지 마. 나 그냥 아무 기대하고 싶지 않아."
남편의 응원에도 절로 뾰족해지는 나의 마음이었다. 차 안에서도 집에 와서도 계속 눈물이 나왔다. 원래는 성경 읽고, 기도도 하며 마음을 다잡고 싶었는데, 너무 낙심이 드니 성경 읽기도 기도도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5시간 정도를 그냥 멍하니 스마트폰을 보고, 잠을 자고, 가만히 누우며 시간을 보냈다.
그때 내 마음에 미세한 음성이 들려왔다.
"이대로 너 자신을 버려두면 안돼."
성경을 읽을 힘은 없어서 드라마 성경 어플을 켜고 가만히 성경을 들었다. 그때 하나님께서 또 내게 말씀으로 말해주셨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딤전 4:4)"
그 말을 듣고 아름답게 순종했다면 나는 얼마나 믿음이 강한 자인가. 하지만 나는 믿음이 연약한 사람이었다. 순간 감정이 폭발해서 하나님께 울며 기도드렸다.
"하나님 능력이면 그 정도는 해주실 수 있잖아요. 왜 이러시는 거예요. 저는 너무 고통스러워요, 하나님. 다시는 그런 아픈 채취 같은 거 하고 싶지 않아요. 시험관 같은 거 하고 싶지 않은데, 왜 저에게 자꾸 자식에 대한 갈망과 소망을 주시는 거예요. 다 그만두고 싶어요, 하나님. 저 좀 내버려 두세요."
엉엉 우는데, 이런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지. 그게 네 본모습이지. 너는 때론 지나치게 내 앞에서 씩씩한 척하더라. 그냥 엎드려서 울고, 화도 내고 그래. 그렇게 너의 감정을 물처럼 나에게 쏟아 놓으렴. 나는 그런 솔직한 네 모습이 좋아. 그렇게 쏟아 내고 울다 보면 그 텅 빈 마음에 은혜가 채워질 수 있단다."
울며 기도한 뒤 김남준 목사님의 시편 강해 책을 읽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다윗의 이야기였다. 나는 지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있다. 그 골짜기에서 한 없이 절망했던 다윗, 두렵고 무서웠던 다윗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목사님은 그 골짜기 속을 지나야지만 우리가 주님 없이 살려는 모든 교만이 무너지고, 주님의 강력한 동행하심을 깨달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외로움은 속된 외로움과 거룩한 외로움이 있는데, 지금 내가 시험관 과정 속에서 스스로를 자꾸 불쌍하게 생각하고 한을 쌓아가게 되는 것은 속된 외로움이지만, 주님의 임재를 갈망하는 거룩한 외로움이 있어야만 한다고 하셨다.
나는 외롭다. 가족과 친구들 속에 둘러 싸여 있지만, 그 누구도 나의 고통을 분담해줄 수 없다. 이 고통을 철저히 혼자 감당해야 하는 외로움 속에 있다. 하나님은 책을 통해 그 외로움을 악마는 '속됨'으로 자꾸만 치려 한다는 사실을 알려 주셨다. 혼자 겪은 그 고통의 외로움 속에서 하나님은 오직 말씀으로 '거룩함'을 입으라 말씀하신다. 아멘. 욱해서 하나님께 삿대질을 하는 아주 부족하고 모자란 딸이지만, 하나님의 거룩함을 입고 이 시기를 하나님의 힘으로 이겨내 보려 한다.
어쩌면 나는 채취를 끝으로 이번 차수 시험관을 마무리할 수도 있다. 난자 1개의 수정 여부는 불투명하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고생만 하다 끝난 케이스인 것이다. 하지만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은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번 4회 차 동안 내가 눈물로 기도해왔던 모든 기도들을 받으셨고, 그 기도를 통해 나를 키워 오셨다. 버릴 것이 없었다. 이 경험은 소중한 것이다.
오늘 나는 한 번 더 내가 얼마나 연약한 자인지를 깨달았다. 아무리 기도로 단련해도 실제의 고난 앞에서는 또다시 무너지고 그저 눈물만 나오는 아주 부족한 자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다시 일으켜주시면 나는 다시금 이렇게 몸을 일으켜 내가 받은 은혜를 글로 쓸 수 있는 자이다. 나는 약하지만 강하다. 웃기는 예이지만, 친구의 날라리 동생이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다.
"언니, 싸울 때 말이야. 맨주먹으로 싸우면 힘이 약하잖아. 립스틱을 손에 쥐고 싸우면 주먹의 파괴력이 엄청나. 싸울 때는 꼭 그렇게 싸워."
나는 립스틱을 손에 쥐고 싸울 만큼 실제 몸싸움을 맞닥뜨린 적은 없다. 그러나 오늘의 나를 보면서 이상하게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 맨주먹인 내가 하나님이라는 단단함을 손에 쥐고 고난과 싸운다면 나의 주먹은 강펀치가 될 것이라고. 나는 약하지만 강한 것이다.
오늘 나의 아침은 고통이었고, 오후의 시간은 절망이었으며, 저녁의 시간은 은혜였다. 나는 깊은 외로움을 겪은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사실 돌아보니 하나님께서 친구들을 움직여 내게 위로의 사인을 계속 보내고 계셨다. 오늘 하루 받은 하나님의 위로가 벅차다. 그 벅찬 위로를 기록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1. 난자 채취 후 우는 와중에 기도한다는 친구의 메시지를 받았다. 지금 내 상황을 모르는 친구였지만, 그 와중에 기도한다는 메시지를 받으니 힘이 났다.
2. 의도치 않았겠지만, 호두가 생각난다며 보낸 친구의 선물이 오늘 도착했다. 하필 제일 우울한 순간에 선물을 받았다. 놀라운 타이밍이었다.
3. 오후에 성금요일에 시술을 받으니 왠지 마음이 뭉클하다는 친구의 메시지를 받았다. 나도 같은 생각을 하던 중이었는데, 친구의 말을 들으며 예수님의 고난에 참예함에 감사했다. 책 선물을 보내준다고 하여 오늘만 두 개의 선물을 받는 것 같아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선물로 확실히 느껴졌다.
4. 일찍 오기로 했던 남편이 저녁까지 아기와 시댁에 있다. 그 시간 동안 말씀과 기도로 채울 수 있어 감사하다.
5. 저녁에 글을 쓰고 있는데, 친구가 아기와 산책을 하다가 창밖을 보라며 전화했다. 아기와 그곳에서 손을 흔드는 친구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6. 대학교 친구들에게 나의 모든 상황을 이야기했다. 친구들의 입에서 호두라는 기적을 겪어 보았으니 호두를 보면서 다시 기적을 사모하라는 말을 들었다. 은혜를 잊고 사는 나에게 하나님께서 다시금 은혜를 기억나게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