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옷을 다렸다. 나는 다림질을 참 좋아한다. 쭈글쭈글 잔주름이 시끄럽던 옷도 다리미가 한 번 지나가면 평화로워진다. 다리미의 뜨거운 열과 옷감이 만나서 나는 냄새도 좋고, 다림질이 끝난 뒤 반듯해진 옷을 보면 행복하다. 특히 아이의 옷을 다리는 일을 가장 좋아한다. 조그마한 옷이라 다림질 몇 번에도 새 옷처럼 예뻐지는 모습이 좋다. 엄마도 다림질을 참 좋아하시는데, 나에게 얼마 전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어차피 구겨질 옷 다림질하면 뭐하냐는 사람들도 있는데, 다림질 한 옷은 구겨져도 예쁘게 구겨져."
입어보니 정말 그렇다. 다림질을 잘해놓은 옷은 구겨져도 예쁘게 구겨지고, 다림질의 흔적이 생각보다 오래가서 다림질했던 일이 무용지물로 돌아가진 않는다.
나는 다림질을 하며 육아에 대해 생각했다. 육아도 꼭 다림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어차피'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어차피 나중에 동영상 다 볼 거 왜 안 보여줘?"
"어차피 나중에 몸에 나쁜 거 다 먹을 텐데, 굳이 왜 지금부터 몸에 좋은 걸 찾아?"
나에게 어차피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의 주장은 그렇다. 어차피 나중 되면 나빠질 것인데, 굳이 지금부터 왜 고생을 하냐이다. 그런 말을 듣노라면 지금 내가 하는 노력들이 꼭 모래성을 쌓는 것 같아서 기분이 언짢아질 때가 있다. 그러나 잠시 언짢아지다가도 결국 원래의 내 육아 방식을 다시 찾아가곤 한다.
나의 부모님은 나에게 '어차피'를 가르치지 않으셨다. 앞서 말했듯 부모님은 다림질을 참 좋아하시는 분들이다. 내일 학교에 가면 금방 구겨질 내 티셔츠도 아버지는 꼭 꼼꼼하게 다림질하셔서 주시곤 하였다. 정성스럽고 반듯하게 잘 다려진 티셔츠를 내가 입고 있으면 그렇게 뿌듯해하셨다. 어차피 나빠질 것이라 해도 부모님은 그런 것을 염두에 두지 않으셨다. 그저 앉은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여 나에게 정성을 쏟으셨다. 백 마디 말보다 그런 한 번의 행동이 나에게 더 많은 영향을 끼쳤다. 영혼에 서서히 스며든 그런 부모님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내 무의식 속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꼭 정성을 다한다. 내 손을 탄 것은 작은 것이라도 노력이 배어 있도록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꼼꼼히 확인하고, 정성껏 한다. 물론 그렇기에 시간적으로 보면 손해일 때도 많았지만, 지난날을 돌아보면 그러면서 일의 본질을 제대로 배웠던 적이 훨씬 많았던 것 같다.
나는 우리 부모님의 교육을 믿는다. 우리 호두에게 향해 있는 나의 정성들은 호두에게 무언가 돌려받고 싶어서 하는 투자가 아니다. 그저 호두가 내 앞에 있기에, 나의 손안에 있기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어차피 나중에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어린이가 된다 해도 지금 당장은 엄마 얼굴과 자연을 더 자주 마주하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고, 어차피 몸에 나쁜 걸 다 먹게 된다 해도 최대한 오랫동안 좋은 영양소를 몸에 많이 넣어서 건강한 면역력을 가졌으면 좋겠다. 내 정성이 언젠가 무용지물처럼 보이는 순간이 온다 하더라도 나는 결코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진 않을 거라 생각한다. 다림질을 한 옷의 구겨짐은 원래의 구겨짐과 다르듯 정성이 들어간 아이는 나빠지더라도 온전히 나빠지진 않을 것이라 믿는다.
이찬수 목사님의 설교에서 사람을 키우는 일은 우리가 하는 일중 가장 위대한 일이란 이야기가 있었다.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육아를 해보니 사람 키우는 일은 정말 어렵고도 귀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20년에 걸쳐 이루어지는 이 프로젝트를 나는 끝까지 잘 완주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전적으로 필요하다. 나의 정성이 인간적인 정성만 들어갈 때는 분명 부족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더하여진다면 나의 정성은 빛을 발하게 된다. 주의 교훈과 훈계로 아이를 가르치며, 보석을 대하듯 귀하게 아이를 다루어갈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아이로 자라날 것이라 믿는다.
어차피. 굳이. 나는 이 말을 육아에서 사용하는 것이 싫다. 이왕이면. 그렇다 할지라도. 이런 말이 좋다. 결과가 나쁘다 할지라도 나는 최선을 다할 것이고, 이왕이면 다홍치마이기에 더 노력하고 싶다. 아이 옷을 다림질하며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 참 힘들고 어려운 2년을 보냈지만, 앞으로 18년이란 세월이 남았다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끝까지 사람을 키우는 이 위대한 일을 잘 감당하자고. 언젠가 험한 세상에 내보내야 할 나의 아이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나갔으면 좋겠다고.
언젠가 육아에서 벗어나 훨훨 자유를 찾을 날을 고대하기보다 지금 아이가 함께 해주는 나의 이 소중한 일상을 귀하게 여기는 내가 되고 싶다. 나로서의 나도 소중하지만, 엄마로서의 내 모습도 소중하다. 나에게 엄마라는 이름을 만들어준 아이에게 고맙다. 이왕 해야 할 엄마 역할이라면, 어차피 보내야 할 엄마의 시간이라면 제대로 해내고 싶다. 이 시간들이 하루하루 더 날 성장시켜줄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