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빚는 시간

by 빗소리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2년 동안 마치 나의 살 같이 붙어 있던 아이가 어린이집에 들어간 첫날, 괜히 허전한 마음에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면 거실에서 토끼 인형과 놀며 뒹굴대던 녀석을 중간중간 보는 것이 낙이었는데, 비어 있는 거실이 영 이상했다. 어딜 가도 아이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텅 빈 집. 작은 몸으로 공간을 가득 채우던 아기의 존재가 얼마나 컸는지를 새삼스레 느꼈다.


한 시간, 두 시간. 조금씩 늘어나던 적응 시간과 함께 비례하며 늘어난 나의 자유 시간. 처음에는 이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애먹었다. 까딱하면 휴대전화를 붙들다 시간을 허망하게 보내기도 하고, 힘들다고 누워 있다가 하원 하러 달려갔다. 아이처럼 나 또한 갑자기 바뀐 나의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한정된 시간. 그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여러 시행착오 끝에 기도 중에 답을 찾았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분명한 목표를 주셨다. 그것은 바로 올해 초부터 계속 염두에 두고 있던 '성경 공부'이다. 모든 것을 제쳐 두고 아침부터 성경과 성경 공부책을 읽기 시작했다.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하나님께 가장 첫 번째 시간을 내어 드리니 나머지 시간 동안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랫동안 성경을 읽어도 이상하게도 모든 해야 할 일들을 하원 시간 전에 끝낼 수 있었다. 점점 마음의 확신이 들었다. 하나님께 먼저 드린다면 내가 걱정하는 모든 것을 해결해주시기에 더욱 성경부터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내가 휴직 중이기에 아이를 돌볼 수 있는데, 시험관 과정 때문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해서 괜스레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나 성경 공부를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 그 마음 또한 만져 주셨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품에 잠시 맡기는 것이라고. 어린이집 안에서도 하나님은 우리 아이와 동행해주신다. 하나님은 내가 좀 더 하나님의 질그릇으로 단단히 준비되길 바라고 있다. 성경공부를 통해 내가 말씀 안에 굳게 서길 바라신다. 그래서 나에게 이 시간을 허락하신 것이다. 어린이집이 우리 아이를 맡고 있다는 생각을 넘어 하나님께서 우리 아이 곁에서 손 잡고 계시단 생각을 하니 더욱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이 시간을 허투루 보내면 안 되겠다는 다짐이 더욱 들었다.


코로나 시국으로 누군가를 만나기도 외출하기도 어려워진 상황 또한 도움을 주었다. 집에 혼자서 조용히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성경을 읽기 더 수월했다. 믿음 생활하기 정말 어려운 시기이지만, 그 시간 동안 나를 엘리야처럼 로뎀 나무 아래에 주님 주신 말씀의 만나로 채우신다는 생각이 들자 감사함이 몰려왔다.


말씀을 읽을수록 추상적으로 느껴졌던 하나님이 점점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으로 느껴진다. 해와 달과 별 모든 우주 만물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정확한 규칙 아래에 돌아간다는 사실에 마음의 안정을 느낀다. 피조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감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좋은 상황이든 나쁜 상황이든 내 삶에 주어진 모든 하루 속에서 감사 거리를 찾는다면 내가 있는 곳이 어디든 천국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은 그렇게 나를 말씀으로 변화시키고 싶어 하신다. 그리고 나를 통하여 우리 가정을, 공동체를 변화시키고 싶어 하신다.


나의 성경공부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쓰일지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나 하나만을 위해서 하는 성경공부는 아니란 생각이 든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이것을 통해서 하실 일이 있고, 나는 언젠가 내가 가진 것을 누군가에게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책임감을 갖고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소중한 시간이다. 난 정말 소중한 시간 속에 살고 있다. 하나님의 품에서 말씀 안에 거하며 주님과 깊이 교제하며 사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니 인간의 삶에서 이보다 더 큰 기쁜 시간이 있을 수 있을까. 하나님과 아이, 그리고 남편이 허락해준 이 시간 동안 매일 감사를 고백하는 내가 되어야겠다.


오늘도 저를 말씀으로 빚어 가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말씀 안에 거하는 이 시간, 이곳이 천국임을 고백합니다. 그 어떤 물질도, 그 어떤 유희도 저를 채울 수 없지만,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저를 가장 충만히 채우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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