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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Jul 08. 2023

7월 8일 감사일기

~ 7월 8일 (토) 감사일기


1. 2주 만에 감사일기를 쓴다. 아니 대체 내게 무슨 일들이 있었기에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지 스케줄러를 2주 동안 찬찬히 살펴봤다.


밴드 마지막 공연, 운영위 안건 준비, 추경 자료 준비, 교육과정 평가회 준비와 동시에 호두 3번째(올해 들어) 격리와 돌봄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많았던 지난 2주의 시간을 돌아보며 모든 것이 무리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간 것이 신기하다. 매우 무리한 스케줄이었기에… 단어 하나하나 상당량의 피땀눈물이 필요한 스케줄이다.


그중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교무로서 가장 큰 학기말 행사였던 교육과정 평가회와 호두의 세 번째 격리(구내염)가 동시에 진행된 점이다. 시간이 너무 부족해 학교에 6시에 나가 일하고 다시 와서 아이를 왕복 40분 거리 시댁으로 데려다 줄 때도 있었다. 어떤 날은 너무 체력이 딸려 엉엉 울기도 했다. 남편이 나름대로 도와주려 애썼지만, 대부분의 중요한 일정들이 아침 일찍 있기 때문에(새벽에 병원 줄 서기, 아침에 아이 맡기기 등등) 아침 잠이 많은 남편의 도움을 제대로 받을 수가 없었다. 새벽과 아침에 주어진 내 짐들이 무겁고 고독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 남편에게 여러 번 화를 내기도 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도 난 소아과 앞에 줄 서있다. 새벽 6:10에 도착했으나 8번째다. 소아과가 귀한 지역에 살다 보니 부모의 부지런함이 곧 진료의 조건이 된다. 슬프지만 6시에 일어나 나올 수 있는 의지 주심에 감사하자.


2주 동안 내가 지나야 했던 많은 난관을 돌아본다. 내가 감정 컨트롤을 잘할 수 있다면 난관이란 건 성숙, 지혜, 인내 등 살면서 필요한 소중한 자질들을 얻을 수 있는 훈련의 장이 되기도 한다. 묵묵하게 살아온 모든 하루하루에 감사하다.


2. 수학 못하고 행정실 협업 업무에 약한 내가 교무이기에 그쪽 분야 일을 중점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그러나 무엇이든 경험해 보면 늘긴 느는 건지 반복되는 업무와 행정실의 끊임없는 피드백(꼼꼼한 실장님과 계장님이 주로 내가 실수하는 걸 바로 잡아주는….. 어렵지만 많은 공부가 되는 건 사실) 덕분에 조금씩 이 업무들에 적응된다.


엊그제 내게 담당된 학교 예산을 계산해 보니 1억 정도 되었다. 그리고 절반 가량이 1학기에 무사히 적재적소에 지출되었다. 학교 예산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고 있으면서도 큰 스트레스 없이 지출하고 있었음에 새삼스레 감사했다. 지난 1년 반은 예산 관련 업무를 잘 배운 해이다. 오랫동안 필요한 지식을 배울 수 있어 감사하다.


3.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작년에 해본 업무들이기에 일을 처리해 나가는 순서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시간이 부족해도 이른 협업 요청, 양식 전달, 수합 및 편집 등 탁탁탁 순서대로 일을 처리해 나가니 작년처럼 멘붕이 오는 순간이 없었다. 20명이 넘는 사람과 동시에 진행해야 할 일이 여러 개였는데, 일정 조율이 잘된 탓에 아무도 어려워하지 않고 여러 일이 끝났다. 다만 늘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나 혼자만의 업무는 1분 1초 아끼며 새벽과 밤에 타자를 미친 듯이 해야 했다는 것 빼고는….. 그래도 내 시간 없는 삶이 남들에게는 피해를 끼치지 않은 것이 정말 감사하다.


4. 밴드 1학기 막공이 끝났다. 6살 아이를 키우며 주 1회 연습과 6번의 공연 일정을 소화한다는 게 참 어려웠다. 올해까지만 하고 그만둬야겠다 종종 생각했는데, 막공을 마치니 밴드가 내게 얼마나 크고 소중한 의미로 자리 잡았는지를 깨달았다.


부족한 노래 실력, 아직 손이 많이 가는 6살 육아. 교무로서 살아내야 하는 빠듯한 스케줄. 밴드를 할 수 없는 이유는 수십 가지이지만, 이 경험이 내게 소중하고 행복하다는 단 한 가지 이유를 붙잡고 계속하고 싶다.


아이는 점점 클 테고, 업무는 점점 익숙해질 테니. 노래 실력은….. 내게 맞는 노래를 찾으면 될 거 같다. 한 번 사는 삶인데 다채로운 일들을 할 수 있는 건 축복이다. 도전하는 용기, 포기하지 않는 마음 주심 감사.


5. 어제 선생님들과 교육과정 평가회를 하며, 선생님들의 속마음을 알게 되었다. 일 욕심이 너무 많아 모두를 힘들게 하고 있는 교장선생님이 계시지만, 내가 완충 역할을 해줘서 본인들에게 오는 스트레스가 크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내년에 학교를 나가면  벌어지게 될 여러 일련의 일들을 상상하시고 걱정을 하셨다.


주장이 강하지 않고 연약해서 교장선생님의 여러 욕심들을 잘 무마시키지 못하는 거 같아 교무로서 마음이 괴로웠었는데…..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던 내 마음이 전달이 된 거 같아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것만으로도 올해의 목표가(함께 일하는 모든 이의 마음에 평안을 주기) 이뤄진 거 같아 보람되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일(직업)을 주시고, 각자마다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함으로써 세상에 사랑을 전하고 도움이 되라는 사명도 주셨다. 내가 조금이라고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통해 누군가의 삶에 평안을 줄 수 있다니 기쁘다.


1학기, 1년이라는 시간의 덩어리는 공룡 같이 크게 느껴지지만, 하루하루 쪼개 그날의 최선을 다하는 것만 생각하자. 때론 슬픔과 힘듦이 대부분인 시기도 있지만 울며 씨를 뿌리다 보면 어느덧 피어나는 색색의 꽃을 바라볼 수 있는 날도 또 찾아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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