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빗소리 Apr 04. 2019

아이보다 소중한 것

얼마 전 건강이 좋지 않아 피검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아기 돌 되기 몇 달 전부터 건강 상태가 부쩍 좋지 않아 안 그래도 걱정이었는데, 피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마음이 영 심란했다. 이제 겨우 돌이 된 아이를 두고, 몸에 병이 발견되면 어떡해야 하나. 아무것도 모르고, 나에게 어부바해달라고 동그마한 배를 등에 비벼대는 아기를 보며 눈물이 났다.


아이를 낳은 뒤 그저 아이를 열심히 사랑으로 기르면 되는 줄 알았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것이란 막연한 기대만 가지고 힘든 나날을 버텼다. 하루마다 자기의 생명력과 가능성을 마음껏 과시하는 아이를 보며 행복했고, 아이를 위한 내 헌신이 반짝반짝 빛나는 느낌이었다. 아이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


세상 모든 엄마가 그래 왔듯 나 또한 아기가 태어난 이후 아기의 또 다른 몸의 일부가 된 것처럼 아기의 의지대로 살아왔다. 아기의 신체적, 정신적 필요에 의해 움직이고, 때로는 요구하지 않는 것까지 몇 걸음 앞서서 움직였다. 하루 종일 그렇게 종종거리며 다니다 보면 내 몸이 지금 어떠한지, 내 마음이 어떠한지를 돌아볼 새가 없었다. 그렇게 밤이 오고, 그렇게 잠이 들었다. 밥을 먹는 것이 때론 사치였고, 내 감정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조차 버거웠다. 잠이 들면, 아침이 오고, 다시금 똑같은 하루가 밝아왔다.


아기가 백일 지나면 괜찮아져, 돌 되면 더 괜찮아져라는 육아 선배들의 말은 정말 그랬다. 시간이 약이란 말은 육아 안에서는 정말 진리라는 말과 함께. 비약적 발전은 아니더라도 하루만큼씩 아기는 성숙해져 갔고, 엄마로서의 나도 성숙해져 갔다. 그렇게 여유를 찾아갔다.


여유를 찾아갈수록 당황스러웠다. 점점 피폐해진 내 몸과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미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여기저기 아우성을 치고 있는 내 몸 상태, 우울하고 쓸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던 황량한 마음이 내 앞에 서있었다.


아기만 소중한 게 아니었다. 아기의 우주를 둘러싸던 내 몸과 마음의 건강이 더 소중한 것이었다. 내가 건강해야 아기도 나의 돌봄과 사랑으로 건강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인데, 우선순위를 모른 채 살아왔다. 정확히 말하면 우선순위를 선배들에게 그렇게 숱하게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선순위를 헤아릴 여유조차 없었다.


언젠가 평온함의 의미에 대해서 평온함은 평온하지 않게 하는 모든 것과의 싸움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육아 또한 그렇다. 육아는 육아를 위협하는 모든 요소와의 치열한 싸움을 의미한다. 특히 내 몸과 마음을 위협하는 그 모든 것들과 나는 치열하게, 모든 것을 걸고 싸워야 한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너무나 사랑하는 내 아이를 위해서.


피검사 결과는 다행히 나쁘지 않았다. 다만 꾸준히 몸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당부가 있었다. 피검사를 기다리던 그 며칠이 나에게는 길고 긴 시간이었지만, 우선순위를 잘못 두었던 자신에 대해 뼈 아픈 반성을 한 시간이었다. 오히려 이렇게 자기 점검을 할 수 있는 시간들에 감사했다.


오늘 시어머님과 함께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시어머님께서 말씀하셨다. 감사거리가 내게 새로이 생기는 것보다 상황 속에서 감사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내게 주어진 것들 안에서 감사를 발견할 때 우리는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고. 어머님께서 걱정하실까 봐 피검사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지만, 어머님이 해주신 이야기는 지금 내 상황에 딱 맞는 이야기였다.


검사 이후 내가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삼시 세 끼를 잘 챙겨 먹는 일이었다. 남편에게 당당히 아기를 맡기고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피곤하면 모든 집안일을 내팽개치고 잠들었다. 정리 안된 집이 아기에게는 창의적이라는데, 우리 아기가 너무 창의적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하게 되었고, 미세먼지가 나쁨만 아니면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함께 오래도록 걸었다.


진정한 사랑은 그 사랑을 위해 나 자신부터 제대로 된 사람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기를 맞춰주는 것이, 아기가 원하는 것을 최대한 해주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라 일단 건강한 엄마가 되자는 마음을 먹었다. 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이 나의 건강이란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나는 꿈꾼다. 내 아이가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 잎을 내고, 꽃을 피우는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것을 말이다. 내일도 나는 열정을 다해 싸울 것이다. 나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협하는 그 모든 것들과 싸우며 한 뼘 자란 맷집을 자랑하는 내일이 되길 소망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