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숙한 글들
사실상 글쓸 시간은 없다. 지금의 내 현실에 취미 생활은 사치와 허영의 또 다른 이름일뿐이다. 글을 쓸 수 없는 모든 제약과 이유를 무시한 채, 내가 글을 씀으로 인하여 생기는 여러 집안일과 직장일의 적체를 감수하며 그냥 쓴다. 계산 없이 쓴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갑자기 키보드를 잡고 내 안에 웅크려 있던 실타래를 마구 뽑아내버린다. 글을 다 쓰기가 무섭게 후다닥 현실로 뛰어 들어가 밀린 일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늘 짧은 시간에 초조하게 글을 쓰다보니 쓰는 글마다 하나 같이 미숙하다. 이런 생각에 잠기면 눈물이 핑 돌며, 구차하게 변명하고 싶어진다. 글을 너무 쓰고 싶은데, 아이가 어린 워킹맘에게 시간은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다고. 그저 내게는 글을 쓰는 행위 자체를 끊이지 않고 이어 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미션이라며. 그러나 글의 세계는 냉정한 것이다. 어딜가나 손쉽게 다른 이의 글을 마주칠 수 있는 이 세계에서의 나는 그저 글로만 나를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미숙하면 미숙한대로 살면 되는 건데, 아직도 내 안의 오만과 자존심은 꼿꼿하게 살아있나보다. 나는 더 많이 낮아지고, 실패하며,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인생에서 글을 쓸 최적의 순간이란 결국 파랑새와 같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므로.
#문장의 틈바구니
오늘 나는 아이를 돌보고 요리를 하며 중간 중간 책을 읽었다. 글쓰기 만큼이나 독서는 내게 곧 숨 같은 것이어서 요즘 같이 심신이 불안정하고 지치기만 하는 때에는 더더욱 틈틈이 독서를 한다. 마치 진통제를 입에 잽싸게 털어놓듯.
작가의 영혼 지문이 진하게 배어 있는 문장들을 좋아하는데, 너무 좋은 문장을 만날 때면 여러 번 읽고, 소리 내어서도 읽고, 사진도 찍으며 연예인을 만난 듯 환호한다. 그렇게 공룡뼈를 발굴하듯 책 속에 내 가슴을 파고드는 문장을 찾는 게 취미라면 취미이다.
며칠 전까지 읽은 최은영의 밝은 밤, 좀전에 완독한 조해진 작가의 로기완을 만났다. 하나 같이 상처 입은 사람들이 누군가의 상처를 온전히 공감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소설들이다. 손에 잡히는 대로 읽은 두 책이 내게는 쌍둥이 같이 닮은 소설로 느껴진다.
최은영과 조해진. 따뜻함이라는 공통적인 정서를 느끼게 하는 작가들이다. 이번 봄은 이들의 문장을 겉옷 삼아 나야겠다 생각한다.
결국 나의 다음 책은 또 다시 최은영, 쇼코의 미소. 현실의 스위치를 잠시 끄고, 문장의 세계에 피신하곤 하는 삶에 그저 감사하다. 이 피신이 없었다면 나는 결코 단단히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