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빗소리 May 02. 2024

착실하게 배워서 성실하게 쓰고 싶다

수요일 밤마다 보컬 트레이닝을 받고 있다. 워킹맘으로서 밴드 연습까지 따로 해가며, 보컬 트레이닝을 또 받는 스케줄은 사실 많이 어렵다. 아이를 돌보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를 재운 뒤 10시 이후의 시간에 보컬 트레이닝 수업을 잡았다. 1시간 정도 받는데, 말이 1시간이지 나가려고 마음을 먹고 준비하는 시간과 다녀와서 하루 일과를 마치는 시간까지 모두 합치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1시간이 바깥 스케줄이 생긴다는 건 적어도 앞뒤 여유를 둬서 3시간 정도의 빈 시간이 확보되어야 한다. 보컬 트레이닝이 일과에 들어오면서 일주일의 스케줄이 더 빡빡해졌다.


체력적으로는 많이 버겁고, 소리의 길을 내는 여정 자체가 무척 어렵고 고단한지라 솔직히 시작되자마자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이 최대한 쉽게 설명해 주시는 모든 이야기가 내게는 외국어 같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소리로 들렸다. 내 목과 코와 배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내가 어떻게 위치를 잡고, 길을 내겠는가. 수업을 가는 발걸음이 무겁고, 수업 시간 내내 선생님의 진도를 따라갈 수 없어 울고 싶은 마음이었다.


버티는 것. 그냥 생각 없이 나아가는 것. 믿을 건 그거 하나였다. 당장 어려워도 방향을 쉬이 바꾸지 않는 나란 사람의 특성 하나를 믿고 꾸역꾸역 수업을 갔고, 한 달의 시간이 지났다.


역시나 눈에 띄는 변화는 없다. 다만 한 달의 시간 동안 같은 연습만 반복하다 보니 내 목과 코의 어느 지점에서 소리가 시작되어야 하는지 그 위치를 미세하게 느끼게 되었다. 선생님은 그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큰 변화라 하셨다. 소리를 내는 길의 초입을 미세하게나마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오늘은 좀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소리의 길을 알아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이미 잘 알고 있기에.


마치 새 악기를 배우고 있는 느낌이다. 내 몸이란 악기를 어떻게 바르게 써야 하는지를 처음부터 다시 배우고 있다. 그동안 얼마나 안 좋은 방법으로 발성을 했는지 매번 놀라며 말이다.


왜 내가 이토록 노래에 진심인 걸까. 그건 아마도 평생 음악을 사랑했던 내 마음에 기반한 것이 아닐까.

음악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나는 살아오며 매일을 듣고, 매일을 불렀다. 멜로디와 가사 하나하나에 울고 웃으며 기나긴 세월을 보냈다. 음악이 내게 주는 힘은 놀랍다.


비록 어렵지만 처음부터 다시 길을 만든다는 느낌으로 차근차근 쌓아 올려 가고 싶다. 노래는 나이와 상관없이 언제까지나 이어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은 밴드 활동을 좀 더 전문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단기적인 꿈이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노래로 교회 봉사를 계속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 조금이라도 잘하고 좋아하는 것으로 헌신하고 싶은 마음이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건 곧 겸손을 배우는 것과 같다. 새로운 것 앞에서는 나는 어린아이와 같으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의 마음, 하고 싶지만 도저히 방법을 찾을 수 없어 답답하고 울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들은 내가 가르치는 제자들의 마음 또한 알게 한다. 공부를 잘 해내고 싶은데, 도무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는 마음. 지금 내 마음이 바로 그 마음이니까.


노래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나는 내 시간을 관리하는 법, 내 몸을 쓰는 방법, 겸손의 마음, 하기 싫어도 참고 나아가는 마음들을 배우고 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착실하게 배워서 성실하게 쓰고 싶다. 제대로 배운 소리의 길로 노래를 할 때 나의 삶과 진심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고, 그 사람과 내가 만나 이루어내는 진동으로 좀 더 선한 것들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달란트를 땅에 묻는 자가 아니라 과감하게 투자하고 배로 거두는 사람이 되길. 수요일 밤에 시간을 쪼개어 열심히 나의 달란트를 흔들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가끔 두렵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