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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몇 달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는 고민이 있다. 어제는 그 고민과 관련된 악몽을 꾸기도 했다. 어쩌면 내가 해온 여러 고민의 뿌리는 모두 하나란 생각이 든다. 타고난 성격에서 오는 약점. 그 높은 벽을 건너뛰지 못해 만들어지는 고민. 잠시 극복했다가 다른 얼굴로 또 찾아오는 고민을 맞닥뜨릴 때면 내 자신을 극복할 수 없는 스스로의 모습에 적잖이 실망스럽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약점이 있고, 그의 고민 또한 그 약점에서 모두 기반한다. 내가 가진 약점만큼이나 불룩 튀어나온 장점을 생각해야 한다. 이런 생각들로 머리를 다시 채워보지만, 다시금 고민의 무게에 짓눌릴 때가 많다.
고민을 완전히 전멸시킬 순 없을 거란 마음과 이렇게 계속 함께 삶을 살아가야 한다면 바보처럼 잠시 고민을 잊고 순간순간 행복하게 살자는 마음. 그 두 마음으로 눈을 뜨고, 하루를 살아간다.
한 살씩 먹어갈수록 어떤 면은 적당히 바보같이 나사를 풀고 살아가는 것이 도리어 지혜로운 것이란 생각을 갖게 된다. 나이 들수록 점점 쇠퇴하는 기억력이 어쩌면 신이 주신 선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나이를 먹어가며 많은 것을 잃고, 많은 것을 얻으며 살아가고 있다. 세상에 완전한 마이너스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요즘의 내겐 큰 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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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긴 글을 써야만 작가로서 성장할 수 있다는 ‘작가병’ 초기에 걸려 몇 년을 살았던 거 같다.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다가 아예 펜을 놓은 시절도 있었다. 산전수전을 겪어보니 이제는 단 한 문장을 써도 쓰고 싶을 때, 쓰고 싶은 내용을 마음껏 쓰며 제발 펜을 놓지만은 말자는 생각을 바뀌었다. 글이 길든 짧든 나의 생각을 글자로 정교하게 바꾸는 작업은 중요한 것이니까. 그래서 오늘은 짧은 글을 몇 토막 적어 보기로 마음 먹었다. 한결 마음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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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후 프로그램 중 하나에 문제가 생겼다. 매우 복잡한 문제라 이 글에 다 쓸 순 없어서 쉽고 간단하게 요약을 하자면 계약상 중간의 1주가 붕 뜨게 된 것이다. 단 1주를 위해 계약의 복잡한 절차를 밟을 순 없었다. 이건 나의 잘못도, 업체의 잘못도 아니고 그저 여러 우연이 겹친 문제였다. 상황을 파악한 뒤 강사님께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계약상 문제가 좀 생겼어요. 이번 주는 강사비를 드릴 수 없는데, 다음 주부터 나오시는 걸로 하면 어떨까요?”
“그래요? 돈 때문에 나가는 거 아니니까 이번 주는 그냥 제가 봉사하겠습니다.”
“아이고, 선생님. 그럼 제가 죄송해서 안돼요. 다음 주부터 나와주셔요.”
“에이. 저도 싫어요. 나갈테니 내일 뵙겠습니다.”
옥신각신하며 전화를 끊었다. 강사님께 죄송해서 어쩔줄 몰라하는 나를 보며 교감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선의를 베풀 때 너무 거절하면 그 사람이 오히려 속상할 수 있어. 고마운 마음으로 베푸시는 것이니 고맙게 받읍시다. 나중에 선생님이 강사님이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또 도와드릴 일이 분명히 있을 거야. 선의는 돌고 도는 것이니까.”
강사님께 어려운 일이 생기는 걸 바라는 건 아니지만, 나는 강사님께 내가 선의를 베풀 순간이 꼭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미안함을 떨쳐냈다. 사실 강사님이 오지 않으면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 상황을 아시고 강사님께서 먼저 손 내밀어 주신 것이다.
학교 일을 하다 보면 수많은 인간 삼라군상을 대해야 하다 보니 무미건조한 마음, 속상한 마음이 들 때가 더 많은 거 같다. 그래도 어쩌다 한 번씩 겪는 이런 일은 내게 사람을 대할 때는 꼭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서 대해야 한다는 마음을 먹게 해준다. 모든 사람이 나의 선의를 선의로 보답하진 않아도 어떤 이는 그 선의를 허투루 보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니까. 서로의 선의가 부딪혀 이렇게 서로에게 힘을 주는 일도 종종 생길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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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지난 학교에서 함께 일했던 S선생님께서 나의 새 학교 생활을 응원해주기 위해 들렀다. S선생님은 협력 강사 일을 통해 만난 사이이다. 내가 맡는 학급에 보조강사로 오전 시간 들어오셔서 수업 중 배움이 느린 아이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분이었다. 한 교실 안에서 두 명의 어른이 함께 반을 돌본다는 거 자체가 사실 쉬운 일이 아니었고, 나와 선생님 모두 각자의 역할과 선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 고민하며 보이지 않는 구분선을 만들며 합을 맞추었다. 어렵게만 느껴지던 그 작업을 오랜 시간 함께 하다보니 우리 사이에 정이 참 많이 들었다. 함께 지낸 3년이 끝난 뒤에는 사석에서 종종 만나 함께 노는 사이가 되었다.
주차장에 도착했다는 선생님을 마중 나갔는데, 선생님의 손 가득 커피와 쿠키가 들려 있었다. 학교 선생님들께 나를 잘 부탁하고 싶어 사오신 것이다. 큰돈을 쓰셨을 선생님을 생각하니 고맙고 미안했다. 오랜 세월 나를 관찰하고, 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신 선생님은 이미 말하지 않아도 내 취향을 잘 아시기에 커피마저 섬세한 옵션으로 내 커피를 따로 챙겨오셨다. 깨알같이 써져 있는 스타벅스 스티커의 작은 옵션들에 감동 받았다.
3년 전 어느 학급이 보조강사를 쓸 것인지에 대해서 논의를 했던 날이 떠오른다. 이제 갓 복직을 해서 수업에 자신이 없는 상태라 누군가가 우리 학급에 들어온다는 것이 싫었다. 그때 당시 나는 협력강사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담당자였고, 아무도 지원하는 학급이 없어서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선택을 했다. 작년에도 일한 적이 있으셔서 좋은 분이란 소문을 들었지만, 어쨌거나 내게는 낯선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는 결코 좋은 조건이 아니었다. 어쩌면 안 좋은 조건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서로 낯을 많이 가리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친구가 되기도 어려웠다. 3년이란 시간의 마법이 극히 소극적인 우리 둘의 우정을 조금씩 단단하게 만들어준 것이다.
이제 학교가 달라진 우리이지만, 아마도 우리의 만남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매일 같은 공간에서 서로에게 부대끼며 산 세월의 흔적이 우리 마음 속에 깊이 남아있으니. 어른이 되어서 친구들과도 그렇게 매일 부대끼며 지낼 수는 없는데, S선생님과 나는 그런 세월을 우리도 모르게 보내버린 것이다.
멀리 있는 누군가를 그리워하기보다 지금 내 옆에서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는 누군가에게 최선을 다해야 할 이유이다. 어쩌면 몇 년 뒤에 나는 이 시간을 그리워하며 살아갈지도 모르니. 그리고 우리가 몇 년 뒤에는 학교를 떠나서도 다시 만나고 싶은 친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니. 그런 생각들을 하면 새 학교에서의 생활도 그리 슬프지만은 않다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