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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감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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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May 23. 2024

안쓰럽고도 대견한 나에게

5/23

1. 유지혜 작가를 좋아한다. 그녀의 글은 솔직하고 정직하다. 자신이 느끼는 바를 가감 없이 표현한다. 스마트폰 중독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를 읽으며, 최근 피곤할 때마다 누워서 피곤을 핑계로 스마트폰만 보는 내 모습에 따끔거렸다. 어린 시절의 가난과 가족들과의 작고 지지부진한 갈등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부분은 내가 쓴 일기인가 싶게 마음의 무언가를 서슴없이 건드렸다.


글을 잘 쓴다는 게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른다. 다만 내가 책을 읽으며 밑줄을 박박 긋는 문장들은 정직하고 솔직한 문장들이란 것이란 걸 안다. 내 글을 읽으며 누군가 밑줄을 그으면 좋겠다. 언젠가 그이도 겪은 슬픔, 기억나는 불행, 잊고 있던 감사, 너무 작아 눈치채지 못한 기쁨.


유지혜 작가의 책은 조곤조곤 내게 말한다. 네가 생각하는 바로 그것을 쓰라고. 누군가에게 맞출 생각보다 네가 쓰고 싶은 걸 끊임없이 쓰다 보면 그 글을 읽을 주인이 언젠가는 찾아올 거라고.


글쓰기는 어렵고, 내 글을 읽고 싶어 하는 이를 찾는다는 건 더 어렵다. 자극적인 글감과 공격적인 홍보로 억지 독자를 만들기는 싫다.


끊임없이 쓸 거다. 내가 원하는 건 많은 구독자보다 내 글을 진정으로 읽고 싶어 하는 단 하나의 그 누군가이니까.


책을 집중해서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 감사하고, 브런치 글쓰기에 대한 영점 조정을 늘 세심히 하고 있어 감사하다.


2. 걱정시키려 쓴 감사 일기가 아니라 답답해서 뭐라도 써본 건데, 여러 친구들의 걱정과 위로를 들으니 민망하다. 힘들수록 혼자만의 동굴에 들어가는 성향이라 이 모든 것이 부끄럽고 창피하지만, 가만히 침잠하기보다 뭐라도 써보려, 살아남으려 노력하는 내가 대견하다. 나는 늘 내가 안쓰럽고 대견하다. 자신에 대한 감정이 긍정적이라 감사하다.


3. 최근 여러 일정이 겹쳐 무리한 강행군으로 인해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았다. 오늘은 잠이 자꾸 쏟아져서 수업을 모두 마친 빈 교실에서 엎드려 있다 잠이 들었다. 십여분 지났을까. 놀라서 일어났는데, 그 사이 피곤이 조금 풀렸다. 예민해서 밖에서 자는 것도, 낮잠도 잘 못 자는데, 정말 피곤했나 보다. 내가 잠든 동안 아무도 교실에 들어오지 않아 다행이고 감사하다.


4. 조금 쉬어도 되지만, 일부러 보강을 잡아서 아이들을 위해 추가로 수업을 했다. 체험학습이 많은 시골 학교의 특성상 공강이 종종 생기는데, 몇 번 쉬어보니 차라리 그 시간에 아이들에게 뭐라도 가르치는 시간을 갖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급 행사로 이루어지는 체험학습은 사실 굳이 보강을 해주지 않아도 되지만 말이다.


아이들이 나로 인해 세상을 알아가는 걸 곁에서 지켜보는 마음이 좋다. 긴 휴식 시간도 좋지만,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나의 은사를 사용하는 삶도 귀하다.


5. 보컬 트레이닝 2개월 차. 눈에 띄는 실력 변화는 없으나 선생님께서 노래 부르는 나를 꾸준히 바라보며, 전문가의 눈으로 내 문제점을 샅샅이 스캔해주고 계신다. 아쉽게도 너무 오랜 세월 홀로 잘못된 방식으로 노래를 부른 탓에 생긴 습관들이 많다. 마치 오래도록 정리 안 한 방을 보는 느낌이다.


하나씩 방을 정리해 가는 작업이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지만, 내겐 노래를 잘 부르는 일이 굉장히 소중한 목표였단 걸 보컬 수업을 받으며 더욱 느낀다. 내가 좋은 목소리를 타고난 사람이라는 것도.


잘 배워서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는 노래들을 부르고 싶다. 지루하지만 견뎌내 보자. 노래를 배우며, 나는 삶의 가장 기초적인 것들을 다시금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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