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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Jul 07. 2024

사랑 받고 있다는 확신(2)

나는 오래도록

아동 학대에 시달린 사람이었다.


중학교 초반까지는

매일 흠씬 두들겨 맞아야 하루 일과가 끝이 났다.


나의 부모 중 한 분은

분노조절장애와 우울증을 겪는 분이었다.

나에게는 작은 실수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양옆이 낭떠러지인 아주 좁은 길.

그런 길을 걸어가는 듯한 하루.

단 하나의 실수라도 했다가는

기다렸다는듯 매타작이 시작되는 그런 날들.


이렇게 맞다가 머리를 잘못 맞아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꽤 자주 했다.

우리반 아이들 모두

해맑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거 같은데,

나는 왜이다지도 불행할까.

그런 생각에 자주 빠졌다.


매타작과 함께 이어지는

언어폭력.

나의 이름은 세상 모든 년으로 변했다.

살면서 들은 욕을 합치면

내 말그릇은 누구보다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겉과 속이 멀쩡해보이지만

나는 오랜 전쟁을 겪고 난 폐허 같은 건물.

폭력의 생존자이다.


생존자가 되어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건

참 힘든 일이었단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난 내 아이에게

말이든 몸이든

어떤 종류의 폭력도 행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끔씩 과도한 분노가 마음을 휩쓸 때면

두려워지곤 한다.

나를 훑고 간 폭력들이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는 것이

무섭고 징그러워서.


내 목소리가 조금만 커져도

왈칵 울어버리는 겁쟁이 내 아이.

평화로운 환경 속에서만 자라나서

큰소리에도 무서워하는 아이를 볼 때마다

오히려 안도감이 든다.

적어도 내 세대 안에서는

이 폭력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말이다.


사랑의 확신은

아이가 마음 속에 그리는 세상의 지반이 된다.


처음부터 내 세상에 지반은 없었다.

잦은 폭력으로 내 지반은

마치 목성처럼 육지 없이

대기만 가득한 세상이 되었다.

내가 느끼는 세상은

늘 무섭고 두려운 곳.

항상 불안이 높은 삶을 살아간다.


그러다

아이를 낳고

내 아이의 세상을 함께 바라본다.

내 아이의 세상은 단단한 지반을 가진 곳.

늘 장난스러운 웃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녀석을 바라보며

불안했던 마음도 차츰 잦아든다.


내가 받아보지 못한

평화로운 사랑을 아이에게 주고 싶다.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버린 사랑의 실타래를 끊고,

반듯한 실을 내 아이에게 주고 싶다.

내 삶이 그 잘못된 실타래를 끊느라

너무나 많은 타격을 받았다 해도.

그걸 끊어내고 새로이 시작한다는 것만으로도

내 삶은 충분히 의미 있는 것일테니.


천진한 아이를 바라보며 매일 아침 생각한다.

살아온 삶은

사랑 받고 싶어서, 사랑이 고파서

고단했을지 모르나,

앞으로 살아갈 삶은

사랑을 주기만 하면 되니 참 다행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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