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도록
아동 학대에 시달린 사람이었다.
중학교 초반까지는
매일 흠씬 두들겨 맞아야 하루 일과가 끝이 났다.
나의 부모 중 한 분은
분노조절장애와 우울증을 겪는 분이었다.
나에게는 작은 실수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양옆이 낭떠러지인 아주 좁은 길.
그런 길을 걸어가는 듯한 하루.
단 하나의 실수라도 했다가는
기다렸다는듯 매타작이 시작되는 그런 날들.
이렇게 맞다가 머리를 잘못 맞아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꽤 자주 했다.
우리반 아이들 모두
해맑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거 같은데,
나는 왜이다지도 불행할까.
그런 생각에 자주 빠졌다.
매타작과 함께 이어지는
언어폭력.
나의 이름은 세상 모든 년으로 변했다.
살면서 들은 욕을 합치면
내 말그릇은 누구보다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겉과 속이 멀쩡해보이지만
나는 오랜 전쟁을 겪고 난 폐허 같은 건물.
폭력의 생존자이다.
생존자가 되어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건
참 힘든 일이었단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난 내 아이에게
말이든 몸이든
어떤 종류의 폭력도 행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끔씩 과도한 분노가 마음을 휩쓸 때면
두려워지곤 한다.
나를 훑고 간 폭력들이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는 것이
무섭고 징그러워서.
내 목소리가 조금만 커져도
왈칵 울어버리는 겁쟁이 내 아이.
평화로운 환경 속에서만 자라나서
큰소리에도 무서워하는 아이를 볼 때마다
오히려 안도감이 든다.
적어도 내 세대 안에서는
이 폭력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말이다.
사랑의 확신은
아이가 마음 속에 그리는 세상의 지반이 된다.
처음부터 내 세상에 지반은 없었다.
잦은 폭력으로 내 지반은
마치 목성처럼 육지 없이
대기만 가득한 세상이 되었다.
내가 느끼는 세상은
늘 무섭고 두려운 곳.
항상 불안이 높은 삶을 살아간다.
그러다
아이를 낳고
내 아이의 세상을 함께 바라본다.
내 아이의 세상은 단단한 지반을 가진 곳.
늘 장난스러운 웃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녀석을 바라보며
불안했던 마음도 차츰 잦아든다.
내가 받아보지 못한
평화로운 사랑을 아이에게 주고 싶다.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버린 사랑의 실타래를 끊고,
반듯한 실을 내 아이에게 주고 싶다.
내 삶이 그 잘못된 실타래를 끊느라
너무나 많은 타격을 받았다 해도.
그걸 끊어내고 새로이 시작한다는 것만으로도
내 삶은 충분히 의미 있는 것일테니.
천진한 아이를 바라보며 매일 아침 생각한다.
살아온 삶은
사랑 받고 싶어서, 사랑이 고파서
고단했을지 모르나,
앞으로 살아갈 삶은
사랑을 주기만 하면 되니 참 다행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