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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신앙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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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Jul 15. 2024

약하고 약한

눈 감는 걸 무서워한다.

용감한듯 연기하지만,

사실 겁이 많은 겁보이다.

내가 살아야 했던 세상은

늘 두 주먹을 꼭 쥐고

형형한 눈으로 노려보아야 했던 세상.

수십년이 지나서야

나는 손에 힘을 빼고 풀린 눈으로

있는대로 겁을 집어 먹은 채 살아간다.

모든 감각이 예민한 나는

작은 움직임, 말소리, 분위기의 변화도

금세 눈치채기에

곤두선 미어캣처럼

털을 곤두세우기 쉽상이다.


내 아이에게 자주 하는 말.

“괜찮아, 못해도 돼.”

“괜찮아, 무서운 건 무서운 거야. 울고 싶으면 울어.”

겁을 집어먹어도 되고,

잔뜩 무서워해도 된다고.

다만 무서울 때는 꼭 기도하라고.

누군가 나를 전심으로 지켜준다는 거 하나만

꼭 붙잡으라 말해준다.

감정은 자유롭게,

뒷배는 든든하게.

그렇게 살아보지 못했고,

겁쟁이로 살아도 괜찮다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기에

내 아이에게는

겁쟁이로 살 자유를 누리도록 하고 싶다.

무서운 건 그냥 무서운 거니까.


눈 감는 걸 무서워 하는지라

기도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자꾸만 눈을 감아본다.

어쩌면 기도할 때 눈을 감는 것은

어둠 속에서

오직 그분의 존재만 감각하라는 의미일까?

눈을 감고 기도한다.

언제나 내 곁에 계시다는 걸 느끼게 해주세요.


안방 침대에 누워 있으면

저 멀리 빨간 십자가가 늘 같은 자리에 있다.

10년이 지나도록 계속 같은 자리에 있는 십자가.

그 십자가를 보며 자주 기도하곤 한다.

하나님이 여전히 내 곁에 계시단 사실에 안도하며.


눈을 감는다.

여전히 무섭다.

기도한다.

마음이 뜨끈해진다.


하나님은

인간을 한 없이 약한 존재로 만드셨다.

바람에도 흔들리고

비에도 젖도록.


그 유약함을 자주 생각한다.

기도 외에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인생에 정답이란 게 있다면

아마도 나는 한참을 정답에서 벗어나

오답 투성이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만 같다.

이조차도 사랑스럽다 말하는

그분의 은혜에 기대어

나의 유약함을 자유롭게 내보이며 살아간다.


나는 약하고 약하다.

강한 척 하지 않고 살 수 있어 감사하다.

더 내려갈 것 없는 마음 같이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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