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빗소리 Apr 13. 2019

부산에 가면 그녀가 있다

나는 본디 외로운 사람이다. 사람이 많은 자리를 떠나 내 원래의 자리인 동굴에 들어가고, 그 동굴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그곳이 내가 있어야 할 자리이고, 그곳에 있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숨이 쉬어진다.


누군가 내게 말했다. 너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늘어나서 좋겠다. 너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좋겠다.


아마도 내 글 저변에 늘 흐르고 있는 외로움을 눈치채지 못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누군가가 내 글을 좋아해주고, 나를 좋아해준다면 감사한 일이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그래서 행복하고 좋은 감정 안에 머무르는 일은 왠지 안 맞는 옷을 입은 듯 어색하다. 그저 나는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은 모습의 내 동굴 속에 들어갈 뿐이다. 외로움은 내 친구이고, 내가 신앙을 찾게 되는 디딤돌이고, 책을 읽을 여유이며, 글를 쓰게 하는 힘의 원천이다.


외롭고 집시 같은 유형의 사람이나 가끔 내게도 사랑을 충만히 느끼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럴 때 나는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달려간다. 그들과 눈을 맞추고, 그들에게 내 영혼에 담아 두었던 목소리를 나누고, 비록 늘 동굴에 머무느라 자주 표현 못하지만 너무나 고맙고 사랑하는 마음을 선물한다.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부산에는 그녀가 있다. 고장난 기계처럼 멈추어있던 나에게 다시금 글을 쓰게 만들어준 그녀가. 내 글을 진심으로 사랑해주고, 응원해준 그녀의 조건 없는 사랑이 어쩌면 브런치 작가 승인이란 결과도 일구어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녀의 응원에 힘입어 멈추지 않고 매일매일 글을 썼고, 그녀처럼 내 글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그녀의 첫사랑은 내게 정말 특별하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것을 바라보고, 사랑을 나누어준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용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튤립을 들고 내가 헤맬까봐 출구 바로 앞까지 나와준 그녀의 다정함. 무작정 부산으로 오던 내 무모함의 이유였다.







그녀와 바닷가 작은 서점에서 오래도록 바다를 바라보았다. 신앙의 간절함에 대해, 아이의 사랑스러움에 대해, 삶의 덧없음과 그래서 더 의미 있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간은 조심조심 흘러갔다. 다정한 이 대화가 멈추길 바라지 않는 마음을 담아.


기차 시간이 다가왔을 때 나는 하루 종일 주머니 속에 품고 있던 온기를 담은 꼬깃꼬깃한 쪽지를 그녀에게 주었다. 내가 떠날 때 왠지 외롭고 쓸쓸해질 그녀의 마음이 걱정되어 적어둔 쪽지였다. 그녀 또한 나에게 여행 내내 들고 다닌 선물을 내밀었다. 부끄러운 미소와 함께.


기차에서 꺼내 본 그 선물을 보고 눈물이 났다.







다름 아닌 그동안 내가 적었던 글 중 인상 깊은 문구로 만든 엽서였다. 문구를 고르고, 그에 맞는 그림을 구상하고 한 자 한 자, 한 선 한 선 꾹꾹 종이에 담았을 그녀를 생각하니 더 눈물이 났다. 살면서 받은 선물 중 가장 기억에 남은 선물로 꼽힐 것 같다. 내게 독자가 더 늘어난다 해도, 책을 출간한다 해도 지금 그녀가 내게 주었던 이 마음을 나는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세상에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는 느낌, 귀하게 대접받는다는 느낌을 한 번이라도 받아본다면 충분히 의미있었던 삶이라 생각한다. 내 삶을 의미있게 만들어준 그녀가 고맙다.


선물 같은 하루와 오늘 하루 같은 선물. 내가 최근 감명 깊게 본 류시화 작가의 책 표현을 빌어 그녀에게 말하고 싶다.


내 삶에 나타나 주어 고마워요.

당신과 있을 때의 내 모습이 난 참 좋아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꿈의 청신호, 건강의 적신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