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7의 일기
- 수학여행을 다녀온 뒤 출근한 목, 금은 정말 전쟁과도 같았다. 모든 일이 바늘처럼 따갑게 나에게 쏟아졌다. 한 불 한 불 끄느라 정말 혼이 나가는 거 같았다. 다 무시하고 너무나 쉬고 싶은데…..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한이 있고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들이 있다는 것이 슬프다. 그래도 그 모든 일을 무사히 끝낸 내가 대견하다. 할 수 없을 거 같은 일들을 결국 해내는 과정들 속에서 나는 보이지 않게 성장한다.
- 수학여행 때 내가 온몸으로 배우고 느낀 감정들이 참 많다. 기억이 날아가기 전에 시간을 내어 꼭 정리하고 싶다. 다음 주에는 쉬는 날이 많으니 날을 잡아서 차근차근 모든 감정과 기억을 차분히 다림질하여 내 마음의 서랍에 하나씩 잘 넣어보고 싶다. 무사히 다녀와서 감사한 마음, 잘 완수하여 또 성장했기에 더 감사한 마음.
- 피곤한 일주일이라 집에서 누워 있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지만, 예린이를 위해 함께 놀아주고, 오늘은 옆 지역에서 하는 문화 축제도 다녀왔다. 만들기 체험과 여러 미션을 수행하고, 작은 콘서트도 보며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집에 돌아와 아이를 재우고 잠시 무알콜 맥주를 마시며(술이 약해져서 요새 알콜 맥주를 마시면 속이 아프다. 그러나 맥주만이 주는 탄산의 찌릿함을 좋아한다.) 쇼파에 널부러져서 티비를 보았다. 소란했던 하루가 지나고 조용함이 나를 감싼다. 참 좋다.
- 요즘 많은 인간관계를 그냥 놓아버렸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꼭 붙잡고 멀어질까 연락을 이어가며 친구 관계를 지켜갔다. 그러나 학교를 옮기고 교무부장을 비롯하여 이런 저런 피곤한 일로 인해 지치게 되며, 내가 노력해야 하는 인간관계라면 지켜서 무엇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하지만 그냥 다 놓아 버렸다. 만약 우리가 진짜 인연이라면 어떻게든 연은 이어가겠단 생각이 들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요 몇주 사이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지난 인연들에게 연락이 왔다. 내가 연락하지 않기 시작하니 그쪽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어쩌면 나의 부지런함이 그들이 먼저 연락할 기회를 뺏어온 건 아닐까.
애써야 할 관계라면 놓고 싶다. 내가 지쳐가면서까지 유지해야할 건 아무 것도 없다. 적어도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노력보다 합이 더 중요하다 생각이 든다. 서로가 서로를 향한 마음의 합이 맞아야 한다는 생각. 하나둘 정리되고 유지되고 나아가는 모든 인간관계에 대해 감사하다.
이기적이라기보단 우선순위를 냉철히 인식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시간과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 여름이 길어 꽃농사가 엉망이란다. 올해는 많은 꽃가게가 폐업할 것 같다 한다. 평소 단골인 꽃가게의 사장님도 많이 힘들어 하신다. 친구 같이 자주 연락하는 사이인데, 그녀의 아픔이 너무나 아프게 공감된다. 오늘은 편지와 함께 선물을 보냈다. 나에게 늘 좋은 꽃을 선택하고 구성하여 귀한 작품을 만들어주는 그녀의 재능이 마땅히 제값을 치루는 무대가 계속 되길… 사장님의 재능을 진심으로 아끼는 팬으로서 응원한다. 그녀를 응원할 수 있는 공감 능력과 돈이 있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