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그 이후의 시간을 위하여
남편과 12년을 함께 해왔다. 처음에는 그저 순하고 조용한 사람이라 나에게 잘 맞춰주겠거니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굉장히 큰 오해를 하고 있었구나 싶다. 알고 보니 남편은 색깔이 매우 강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사실 누구나 깊이 들어가면 자기 고유의 색깔을 강하게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내성적인 성격은 외부인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는 것일 뿐 가족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 또한 낯선 이들 앞에서는 최대한 내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라 남들이 아는 나와 가족이 아는 나는 확연히 다르다.
그렇게 강한 색깔의 두 사람이 12년을 연애하며, 결혼 생활하며, 육아하며 지내왔으니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었을 것인가. 지난날을 돌아보니 서로 별거 아닌 일로 참 많이도 부딪혔던 것 같다.
특히 육아하며 더 많은 부딪힘을 겪었다. 육아로 인해 피곤한 심신과 서로의 자유시간 확보를 위한 강렬한 욕망 등이 어우러져 극한 상황에 자주 몰렸기 때문에 갈등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했다.
연애 시절과 결혼 초기 시절을 돌아보면 나는 참 남편에게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다정다감한 사람이다. 오죽했으면 시어머님께서도 너와 통화하면 참 기분이 좋다 말씀하시곤 했다.
그런 내가 점점 무뚝뚝해지고, 차갑게 말하며 변해갔다. 남편이 말이 없는 편이고, 무뚝뚝하게 말하는 편인지라 다정하게 말해도 돌아오는 무뚝뚝한 말들에 상처 받았을 때가 많았다. 사실 남편이 나쁜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성격이 원래 그런 편이라 그렇게 반응했던 것뿐인데 내 입장에서는 서운했다. 그래서 나 또한 남편과 비슷하게 반응하다 보니 이제 습관이 되어 서로 무뚝뚝하게 말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제 거꾸로 남편이 그 부분을 가끔 서운해하는 것이 느껴진다. 거의 내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자동적으로 나오는 말투인지라 나도 말을 내뱉고는 깜짝 놀라고는 한다. 왜 이렇게 냉소적이고 차갑게 변해버렸을까.
나는 주변에 다정한 부부들이 참 부러웠다. 서로 따뜻하게 말하고, 갈등을 차근차근 대화로 해결해나가는 부부들이 그렇게 부러웠다. 그리고 대화로는 해결 안 되는 우리가 너무 아쉬웠다. 물론 서로를 여전히 사랑하고, 서로의 힘든 부분을 말없이 도와주며 애정 표현을 하는 우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이 참 아쉬웠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남편과 나의 사랑의 언어가 달라서이지 않을까 싶다. 5가지 사랑의 언어라는 책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 책을 읽어본 적은 없다. 하지만 여러 사람에게 이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사랑의 언어는 인정하는 말, 함께 하는 시간, 선물, 봉사, 스킨십이다. 이 언어는 각자 사람마다 다르다고 한다.
나는 인정하는 말이 사랑의 언어이다. 누군가의 좋은 점을 발견하고, 그 점에 대해서 인정해주며 사랑을 표현하고, 남들에게도 그렇게 인정하는 말을 들을 때 힘이 난다. 남편에게도 인정하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따뜻하게 나를 위로해주는 말, 격려의 말이 듣고 싶다.
남편에게 이 얘기를 물어본 적은 없지만 그동안의 행적을 빅데이터로 활용해보면 남편의 사랑의 언어는 봉사라 생각한다. 남편은 내가 자신을 위해 요리하거나 깨끗하게 정돈된 집에 들어오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이렇게 서로 전혀 다른 사랑의 언어를 가진 우리는 그래서 많이 부딪히고, 서로의 모습을 아쉬워할 때가 있다. 아니 나만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고, 긍정적인 남편은 별로 아쉬움이 없어 보이긴 한다. 남편의 그런 모습이 부럽고, 닮고 싶은 마음도 있다.
나는 남편에게 더 인정받는 말을 듣고 싶고, 남편은 자신을 위해 내가 행동을 해주길 원한다. 물론 남편이 나를 위해 요리해주거나 청소를 해주는 건 정말 기쁘고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그런 행동보다 오히려 말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에 훨씬 더 힘을 얻는 것 같다. 남편 또한 내 칭찬보다는 내가 본인을 섬겨줄 때 더 행복해하는 게 느껴진다.
남편을 바꾸려 하는 건 한 인간에 대한 무례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하고, 부탁은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다만 내가 남편의 사랑의 언어를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큰 힘이 된다. 내가 먼저 남편에게 봉사란 사랑의 언어를 표현하고, 내가 원하는 언어를 부탁하는 방법을 쓸 수 있으니까. 물론 이걸 알고 있지만, 워낙 육아로 인해 늘 체력이 탈진 상태이다 보니 실천하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오늘 남편은 나를 위해 많은 봉사를 보여주었다. 낮잠을 자라고 하며 아이를 대신 돌봐주었고, 요리를 하지 않도록 배달 음식과 포장 음식을 열심히 준비하였고, 청소와 분리수거를 하며 집안을 깨끗이 했다. 아기를 데리고 함께 키즈카페에 가는 일정도 만들어, 아기와 나에게 즐거운 시간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그동안 아이를 낳고 기르며 끊임없이 투쟁했던 우리의 시간이 단지 흩어지는 시간은 아니었다는 것을. 다만 조금 큰 소리로 마음에 전달되어 다소 아프긴 했지만, 결국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승화되어 조금씩 배려하고자 하는 마음을 키우게 했다는 것을 말이다.
오늘 키즈카페에서 아기를 돌보면서 서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육아가 끝난 이후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지금은 아이가 있어 참 북적이고, 정신없는 때이지만, 결국 우리 둘이서 이 시간들을 채워가야 하는 시간이 올 것이다. 아직 아이가 많이 어리지만, 지금부터 조금씩 그때의 우리를 위해 준비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남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남편에게 다시금 다정다감하게 말하도록 노력하며, 함께 할만한 취미 생활을 만들어 가고, 다른 부부를 부러워하기보다 우리가 가진 색깔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깔이 잘 나올 수 있도록 주어진 조건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생각한다. 그런 노력이 있어야 다시금 찾아 올 부부의 시간이 다가와도 우리는 여전히 즐거울 수 있을 테니까.
내 자신을 위한 삶, 부부를 위한 삶이 육아로 인해 매몰되지 않기를 바란다. 육아라는 이 거대한 숙제가 내 삶을 압도하지 않길 바란다. 결국 육아는 언젠가는 끝날 시작과 끝이 분명한 과제이며(물론 평생 동안 아이를 돌봐줘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없지만, 그래도 성인이 되면 좀 역할이 덜어질 테니), 내 자신으로서의 삶과 부부로서의 삶은 죽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며 제2의 삶을 작가로서 살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 매일 하루만큼씩 남편과의 사이에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노력하는 것.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잘게 쪼개 실천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