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신이 섬세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던 날들이 있었다. 작은 일에도 고민하고, 걱정하며 힘겨워하는 자신이 지겨워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싶은 적도 있었다. 너는 왜 그렇게 소심하니라는 말에 한 마디 반박도 못하고, 내 자신을 또 한 번 스스로 공격하던 모진 순간도 있었다.
그때 나는 나를 지키지 못했다. 나를 지킬만큼 강하지 못했다.
류시화의 에세이에는 두 번째 화살을 조심하라는 말이 나온다. 남이 쏜 첫 번째 화살을 피했다 하더라도 내가 나에게 쏘는 두 번째 화살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이다. 나 또한 그 두 번째 화살의 명사수여서 얼마나 고득점을 날리며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두 번째 화살을 맞기 전에 그 사람에게 재치있는 한 마디를 날려줘야 했다. 세련된 상호 기술, 냉소적인 유머 감각이 절실히 필요했다.
요즘 읽고 있는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시력 장애인인 교수가 학생들의 반응을 파악하기 어려우니 가끔 '짝'하고 박수 한 번만 쳐달라고 부탁한다. 누군가 박수를 치면 잠시 그 사람을 향해 서서 강의를 한다. 이 분은 박수 쳐달란 부탁을 하며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저는 눈에 뵈는 게 없어요. 아시죠?"
이 분의 이 노련함은 수많은 상처 속에서 생긴 열매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부러웠다. 나 또한 상황을 지혜롭게 전환시킬 이런 노련함을 가지게 되면 참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육아를 한다는 건 생각할 시간을 많이 갖는다는 장점이 있다. 그것도 나와 성격이 매우 비슷한 존재를 하루종일 대하다보니 내 자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나의 성격, 나의 취향, 그 외의 나의 모든 것. 유전이란 건 어쩜 이리 무서울까. 아기는 정말 나를 많이 닮았다. 말도 못하는 녀석의 행동이 이해가 갈 때가 많다. 나도 잘 아는 마음이라.
나 자신에 대해서, 날 닮은 아기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다보니 나란 사람에 대해서 조금은 더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조건은 다독, 다작, 다상량인데, 이중 다상량은 타고났기에 다독, 다작만 노력해도 된다는 사실이 기쁘다. 고민이 많고, 생각이 너무 많은게 흠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내 성격이 도움이 되는 때가 올줄이야!
일상 속의 작은 변화도 빠르게 발견하는 편이고, 작은 일에도 쉬이 행복해하는 편이다. 특히 행복의 준비물은 나 자신만 있으면 될 때가 많다. 아무 것도 없어도 나 혼자만으로도 행복한 적이 많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유유상종이라 섬세한 사람들이 친구로 몇몇 있다보니 섬세한 배려와 재치를 서로에게 발휘할 때가 있다. 그때 정말 삶의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오늘이 그렇다.
친구가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 뒤 내용이 좋다고 나에게 추천해주었다. 친구가 반납한 뒤 내가 연이어 대출을 하게 되었다. 내가 대출해갈 것을 예견한 친구가 작은 표식을 책에 남겨두었다. 처음에는 왠 책갈피일까 넘어갔지만, 보면 볼수록 친구의 취향이 담뿍 묻어 있다. 궁금해서 카톡으로 물어봤더니 내 예감은 맞았다.
고민이 많아서 고민에 대한 책을 빌린 내 친구. 섬세하고 사랑스러운 친구의 성격이 나는 참 좋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의 모습을 친구도 좋아하면 좋겠다. 너는 섬세하기에 나에게 더 감동이고, 사랑스럽다고. 자신이 애용하는 독립서점의 책갈피를 슬며시 껴둔 그런 센스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세상은 섬세한 자들이 있기에 더 사랑스러워질 수 있다. 당신이 오늘 어떤 배려에 감동 받았다면 그건 아마도 섬세한 사람으로 인한 행동이지 않을까.
소중한 내 자신을 자신과 타인이 쉬이 무례하게 상처주지 않도록 나는 더 노련해지고 싶다. 화내지 않으면서도 부드럽게 상대방의 무례함을 밀어내는 느낌으로. 이는 내 자신을 위한 변론이자 나의 아이,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한 변론일 것이다.
* 이 제목은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